“교권도 아닌 ‘인권’이 바닥에 있었죠” 한 교사의 고백 [박유영의 취재백블]
“그 아이에겐 1년 동안 가위질을 한 번도 못 하게 했어요. 가위를 쓸 때에는 매번 제가 다 해줬어요. 혹시나 가위를 들고 순간 화가 나면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올해 교직 3년차인 김가은(가명)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첫 발령 받은 A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교실에서 만난 착하고 귀여운 다수의 아이들, 그리고 분노 조절이 안 되고 통제가 어려운 몇몇 아이들.
선생님은 한 공간에 있는 이 아이들에게 집단생활 속 규율을 알려주고 때로는 참고 양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만, 수시로 소리 지르고 책상에 머리를 박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아이들을 자리에 똑바로 앉혀서 수업을 진행하는 지도법?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부모에게 호소하거나 그 아이에게 호소하는 것밖에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선생님이 했던 건, 부탁하고 달래는 것뿐이었습니다.
선생님 시선의 한쪽은 늘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는 정훈이(가명)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정훈이 가위질도 선생님 몫이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분노를 터뜨릴지 몰라서, 특히 그 분노가 반 친구들을 향할까봐, 선생님은 ‘나도 한 대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렵고 공포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이 곁에 섰습니다.
- 김가은(가명) 선생님 인터뷰 중 -
1년 간 교실 풍경은 이랬습니다.
수업 도중 정훈이가 돌발 행동을 하면 선생님은 정훈이를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화를 잠재웁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실은 점차 소란해 지고 아이들은 뒤죽박죽, 수업은 끊긴 채 엉망이 됩니다.
선생님 지도를 잘 따르는 보통의 다수 학생들은 그렇게 거의 매일 학습권을 침해 받았던 겁니다.
몇몇 아이들 시선에선 정훈이에게 전전긍긍하는 선생님, 내가 봐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데 혼내거나 따끔하게 훈육하지 못하는 선생님, 그렇게 본 다른 아이들은 또 도발을 합니다.
- 김가은(가명) 선생님 인터뷰 중 -
선생님은 정훈이 부모님을 설득하고 상담센터와 연계해 아이가 심리치료를 받게 도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연락이 잦아지자 부모님은 점차 비협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전화를 계속 안 받으시길래 장문의 문자를 써서 ‘이런 부분 도와달라’ 말씀을 드렸는데 ‘저도 힘들어요 선생님’ 이렇게만 왔더라고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지? 생각이 들었죠.”
학생의 문제 행동과 관련해 학부모와 상담을 하면 이런 반응이 많았다고 합니다.
"늘 아이를 이해해 달라는 식의, '무엇 때문에 아이가 그랬을 거예요.' 하고 마시는 거예요. 가정에서 어떻게 조치를 하겠다는 게 없어요. 저도 학생을 이해해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개선되는 건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당장 교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할 수 있는 게 없고, 앞으로도 학교 현장과 교권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거란 무력감과 우울감 때문에 지난해 10차례 심리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출을 신청해 올해 B 초등학교로 옮겼습니다.
선생님은 최근 A초등학교 5학년이 된 정훈이가 교사를 폭행해 결국 해당 교사가 병가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국초등교사노조가 서울 서이초등학교 사건 이후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2천390명 중 '교권 침해를 당한 적 있다'는 답은 99.2%(2천370명)에 달했습니다.
교사들이 직접 겪은 사례를 적은 걸 보면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학부모가 늦은 시각과 주말에 계속 전화하여 반말로 몇 살이냐, 경력이 없어 그런 식으로 몰라서 지도하는 거냐 물음. 또 학원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해 달라, 왜 몰랐느냐 윽박. 교실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시간을 내달라 하고 하대함.
▶어머니가 자리 배치에 불만을 가지고 저녁에 개인 전화로 항의함. 아버지는 뒤에서 다 들리게 큰 소리로 "교사가 미친X이다, 쓰레기다" 외침. 다음날 아침 찾아와서 사과 요구함.
-현직 교사들이 적어낸 '교권 침해' 사례 중-
서이초 사건 초기, 해당 교사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원인을 두고 때 아닌 '진실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교사 개인 문제라는 취지의 보도를 내자 교사노조 측에서 학부모 민원 등이 있었다는 제보를 알려 일종의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서이초 교사 사건의 조사 결과가 설사 어떻게 나오더라도, 사건 직후부터 왜 전국에 있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대규모 추모에 나서고 폭염 속에 수만 명이 거리 집회를 이어가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나 역시 그랬다'는 동질감과 유대감 때문일 것입니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이유는, 저 '교권 침해' 설문조사 속 사례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 현장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는 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잘 어우러지는 반듯한 성인으로 자라나길 '진정으로' 바란다면 말입니다.
[ 박유영 기자 / shine@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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