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령 운전자 스티커’ 디자인 규격화…실효성은?
‘어르신 운전중’ 문구에 크기·색깔 등도 규정
스티커 부착 자발적 참여가 관건
‘조건부 운전면허제’ 연구용역 진행 중
[주간경향] ‘어르신 운전중’. 고령자가 운전하는 차량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스티커)를 이런 내용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경찰청이 추진하고 있다. 스티커의 크기와 색깔 등도 일정한 규격을 따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65세 이상 고령자 차량을 대상으로 한 인식도를 높여 안전 및 배려 운전을 유도하려는 게 목적이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작·배부하는 고령 운전자 스티커는 정해진 기준이 없어 디자인이 천차만별이다.
동일한 문구와 규격의 스티커 부착이 정착된다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등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으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고령자들이 스티커 부착에 얼마나 동참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이번 방안은 고령 운전자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다. 운전면허를 자진해서 반납한 고령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이다. 정부는 일정한 조건을 달아 면허를 허용하는 ‘조건부 운전면허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시민의 교통안전 확보와 함께 고령자의 운전할 권리나 이동권도 함께 보장한다는 시각에서 대책 마련에 접근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각양각색 디자인 하나로 통일
국회는 2022년 12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고령 운전자의 차량에 부착하는 알림 표지를 정부와 지자체가 제작·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신설한 내용이다. 이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2021년 10월)과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2022년 9월)이 각각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토대로 논의한 끝에 나온 결과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지난 7월 4일부터 시행됐다. 스티커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은 하위 법령에서 규정토록 했다. 이에 따라 주무부처인 경찰청은 지난 7월 11일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규칙 개정안은 고령 운전자를 ‘운전면허를 받은 65세 이상’으로 규정했다. 경찰청은 노인복지법과 도로교통법 등 여러 법령 등에서 노인을 65세 이상으로 정의한 점을 고려했다. 다만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고령자를 65세로 설정하는 게 시대 상황과 부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정우택 의원이 발의했던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고령 운전자를 70세 이상으로 명시했다.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고령 운전자 차량이라는 점을 알리는 스티커의 상세한 규격도 담았다. 문구는 ‘어르신 운전중’이다. 크기는 가로 30㎝, 세로 10㎝로 정했다. 바탕은 파란색, 글자는 흰색으로 제작해야 한다. 글씨체는 ‘HY헤드라인M’을 써야 한다. 경찰청은 “후방 운전자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파란색 바탕을 적용했다”라며 “글씨는 바탕색과 대비될 수 있는 흰색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내용과 크기 등을 변경하지 않는 선에서 문구를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표지를 제작·배부했을 때 해당 지자체명을 작은 글씨로 삽입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스티커를 제작·배부했다면 ‘어르신 운전중’ 문구 아래 ‘서울시’라고 표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티커의 앞면은 반사지로, 뒷면은 탈부착할 수 있는 고무자석으로 제작한다. 부착 위치는 ‘차의 뒷면 중 안전운전에 지장을 주지 않고 시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소’다. 차량 후면 유리는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청은 “고령 운전자의 뒤쪽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차량 운전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게 차량 뒷면 좌측에 부착한다”고 했다.
이런 스티커 디자인은 설문조사 결과도 참고해 결정했다. 입법예고에 앞서 경찰청이 75세 이상 고령자 1190명을 대상으로 디자인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1위가 ‘어르신 운전중’이었다. 2위는 ‘고령자 안전’, 3위는 ‘시니어 운전자’로 집계됐다. 비고령자 1만8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1위가 ‘고령자 운전중’이었다. ‘어르신 운전자’와 ‘시니어 안전’이 뒤를 이었다.
경찰청은 입법예고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오는 8월 21일까지 받는다. 이후 중대한 하자가 없으면 오는 10월쯤부터 스티커의 제작·배부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긍정 효과 기대…관건은 참여율
지금도 경찰청과 국토교통부, 도로교통공단 등이 협업해 개발한 고령 운전자 스티커가 존재한다. 또 여러 지자체가 각자 디자인한 스티커를 지역 주민들에게 배부하고 있다. 원형, 사각형 등 형태와 문구 내용, 크기 등이 제각각이다. 배부 대상 나이 기준도 65세, 70세 등 지자체별로 다르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고령 운전자 스티커의 디자인 형태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스티커를 보더라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누구나 쉽게 고령 운전자 차량을 식별할 수 있도록 규격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번 스티커 부착이 확대되면 안전운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석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스티커 부착이 잘 정착된다면 이 디자인만 봐도 고령 운전자라는 점을 인식하고 배려 운전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관건은 참여율이다. 스티커 부착이 강제 규정은 아니다. 지금도 도로에서 ‘초보운전’이나 ‘아이가 타고 있어요’ 등은 자주 보이지만 고령 운전자 스티커를 붙인 차량을 찾기는 쉽지 않다. 고령자들이 스티커 부착에 거부감이 크다는 뜻이다. 이번 스티커 또한 고령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의석 교수는 “고령자들이 스티커를 붙이면 배려나 양보보다는 무시를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는 기우”라고 평가했다. 그는 “고령자 스티커가 있는 차량을 얼마든지 배려할 수 있다는 비고령자들이 10명 중 8명은 될 것”이라며 “도로에서 배려를 받더라도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할 수 있는 반면에 위협이나 무시를 당한 사례는 크게 각인되기 때문에 실제와 다른 걱정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고령자 스티커가 부착된 차량을 상대로 주의 운전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앞서 권칠승 의원과 정우택 의원이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유사한 내용이 포함됐다.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에 위협·위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양보 등 주의 운전을 하도록 규정한 조항이 그렇다. 이런 내용은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외됐다. 경찰청은 고령 운전자 스티커를 운영해본 뒤, 주의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할지 여부도 검토할 계획이다.
참여 저조한 면허 자진반납
고령 운전자의 안전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인구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사망자 등의 지표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2012~2022년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의 증감률은 연평균 8.6%로 오름세를 나타냈다. 2022년은 3만4652건으로 전년보다 8.8% 증가했다.
정부는 여러 방편을 내놓고 있다. 운전면허 자진반납제도가 대표적이다. 지자체가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 운전자에게 10만~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나 교통카드 등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2018년 부산시가 ‘교통안전 증진 조례’를 제정해 시행한 이후 현재 약 190개 지자체가 운영 중이다. 나이 기준은 65세와 70세 등 각기 다르다.
하지만 최근 3년 동안 6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자진반납 비율은 평균 2%대에 그친다. 2022년 65세 이상 면허 소지자 438만7358명 가운데 11만2942명(2.6%)만 면허를 반납했다.
경찰청은 자진반납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내년도 관련 예산을 90억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올해 18억원보다 5배나 많은 액수다. 면허 반납 인센티브는 지자체의 자체 예산과 함께 중앙 정부가 보조금 30%를 지원한다. 내년에는 보조금 비율도 50%로 높이는 방안을 두고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다.
그러나 예산을 늘린다고 해서 자진반납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할지는 미지수다. 기본적으로 신체가 노쇠하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많은 움직임이 필요한 대중교통보다는 자차 이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대중교통이 열악한 시골에 거주하는 고령자는 차량이 없으면 일상생활조차 곤란할 때가 많다. 생업을 위해 반드시 차량이 필요한 고령자도 면허 반납이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
자가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을 지원하는 것도 방법으로 꼽힌다. 정의석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일부 농촌 지역에서 100원만 내면 콜택시를 탈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운용하는 것처럼, 저렴한 가격에 편리한 교통수단을 지원한다면 운전을 그만두는 고령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공간 제한 조건으로 면허 발급
또 다른 대안으로 ‘조건부 운전면허제도’가 떠오르고 있다. 운전능력이 면허 취소 수준이 아니라면, 야간이나 고속도로 운전 금지, 첨단 운전보조장치 부착 등을 지킨다는 조건을 달아 면허를 내주는 방안이다. 정부는 2022년 이 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2024년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제도 설계 작업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제도를 적용할 기준 나이를 설정해야 한다. 더불어 운전능력을 평가할 기준과 방법, 능력에 따라 제한할 시간 등의 요소도 마련해야 한다. 조건을 위반한 차량을 어떻게 단속하고 어떤 처분을 내릴지도 검토해야 한다. 특히 과연 실질적인 단속이 가능할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단속을 통한 사고 예방보다는 조건을 어긴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건부 면허제는 미국, 호주, 독일 등 해외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자택 주변의 병원 등으로 운전 가능한 공간을 제한하거나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면허를 발급하는 방식이다. 또 낮 시간대에만 운전을 허용하는 등 시간 조건을 걸기도 한다.
고령자가 운전대를 놓게 만드는 시각이 아니라 운전할 권리를 보장하면서 안전도 도모하는 쪽으로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화라는 자연스러운 현상 앞에서 고령자 개인에게 화살을 돌려선 안 된다는 취지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고령자 사고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0대 전후에서도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노인만큼 사고를 많이 낸다. 그러면 이들의 운전도 막아야 하는 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며 “‘긴급 제동장치’ 등 안전을 위한 보조 장치를 장착한 고령 운전자를 지원하는 등의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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