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신림역 흉기난동, '묻지마 범죄'는 최근 갑자기 늘어난 걸까?

조재영 jojae@mbc.co.kr 2023. 7. 3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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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방범죄까지 잇따르는 '묻지마 범죄', 최근 갑자기 늘어난 걸까?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33살 남성, 조선이 전혀 알지 못하는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 이후, 이를 모방한 듯한 '살인예고' 글이 온라인에 여러 개 올라왔습니다.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신림역에서는 "흉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출처불명의 이야기가 떠돌아 오인 신고까지 이어졌고, 수원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마구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울산에서는 그저 "누구 하나를 해치고 싶다"면서 둔기를 구입한 뒤 스스로 112에 신고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최근, 이런 유형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 자체가 언론을 통해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 아직까지 이에 대한 법적 정의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범죄를 소위 '묻지마 범죄'라고 규정할 지도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통계 자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형사사법기관 중 유일하게 대검찰청이 "한 해 약 50건 정도의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긴 한데, 이마저도 6년 전 기준의 통계입니다. 그 뒤론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네요.

학계의 선행 연구들을 살펴봤지만, 어떤 범죄를 '묻지마 범죄'라고 부를지 학술적 개념 역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실정입니다.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다며 연구자들마다 '무차별 범죄', '이상동기 범죄', '무동기 범죄', '증오 범죄'라고 달리 부르기도 하고, 기준도 각양각색입니다. 다만, 가장 최근의 연구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묻지마 범죄'의 개념적 실체에 관한 소고(2022년, 문혜민·조은경)>에 따르면, 어떤 범죄를 소위 '묻지마 범죄'나 '무차별 범죄' 등으로 부를 때는 '범행의 이유가 불명확하거나 상식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범죄'인 동시에, '범죄자와 피해자가 관련이 없는 사이거나 서로 간의 상호작용 없이 급작스럽게 피해를 당하는 범죄'라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의 살인 범죄, 늘어났을까? ‥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

이번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의 경우 충격을 더했던 건, 여성이나 노약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일반적인 '묻지마 범죄'와 달리 성인 남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불안 심리가 높아진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살인 범죄 자체가 증가하고 있느냐 본다면, 그건 아닙니다. 경찰청의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오히려 살인 사건 발생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살인 범죄 발생 건수는 2017년 905건에서 2018년 782건, 2019년 780건, 2020년 705건, 2021년 641건으로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강도와 성폭력을 포함한 '강력범죄' 전체로 통계를 뽑아봐도 2017년 27,274건에서 2021년 22,476건으로 줄었고, '폭력범죄'도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이수정[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살인 사건 발생 자체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바닥권입니다. 인구 10만 명 당 2건이 안 돼요. 발생률은 아주 낮습니다. 요즘은 사방에 CCTV가 있는데 살인을 저지를 수가 있나요.

지금은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게 제일 큰 문제로 보여요. 이게 실제로는 살인 사건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다 보니까. 그리고 이건 형사정책적인 무력함이 입증되는 그런 사건이잖아요. 전과가 많은, 지난번 '부산 돌려차기남'처럼 그런 위험한 사람들을 막을 방법이 현행 법체계에서는 전혀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아무런 대책이 없구나' 이런 것들을 인지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더욱더 불안해 하죠."

■ "'묻지마 범죄' 가해자의 75%는 전과자"‥그런데 왜 관리하지 않을까?

'위험한 사람들', 대체적으로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이유없이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걸까요? 관련해 살펴볼 만한 연구가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2014년, 윤정숙 외 3인)>, <동기 없는 범죄 수용자 재범방지를 위한 치료적 개입 및 제도화 방안 연구(2018년, 윤정숙 외 2인)>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 가해자 중 전과가 있는 경우가 무려 75%를 차지했습니다. 신림동 사건의 범인인 조선 역시 전과 3범에, 법원 소년부로 14차례나 송치된 전력이 있었습니다.

윤정숙[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

"30대에 이미 3번의 범죄 경력이 있는 이런 사람을 형 집행이 다 끝나서 교도소에서 출소하면 그냥 지역사회에 돌아다니는 이 시스템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아요. 출소할 때 재범의 위험 요인이 남아 있다고 하면 지역 사회 내에서 관리할 수 있는 별도의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전혀 발동이 되고 있지 않거든요."

성범죄자의 경우엔 교도소에서 출소할 때 재범 위험성 평가를 하고, 전자감독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를 제외한 살인·강도·폭행 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그런 사후 관리책이 전혀 없습니다. 조선의 예전 전과 중에 이미 '묻지마'의 양상을 보이는 폭행 사건, 전조가 있었습니다. 조씨가 스무살이던 2010년, 서울 신림동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고, 그 일행 중 한 명에게 "말을 버릇없이 한다"며 뇌진탕 증상이 생길 정도로 소주병으로 머리를 세게 내리쳤던 겁니다. 옆에서 싸움을 말리던 종업원들에게도 술병을 휘둘러 종업원의 팔이 찢어졌습니다. 당시 조선에게 내려진 처분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실형은 살지 않았습니다.

윤정숙[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 "정신감정 등을 통해 좀더 정확하게 드러나야 할 것 같지만, 조선이 피해망상적 사고를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거든요. 망상적 사고를 오랫동안 갖고 있는 사람들은 현실 검증력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에 범죄를 지지하는 사고에 빠지기 쉬워요.

'내가 이렇게 불행하고 직업도 갖지 못하고, 이런 것들은 능력 있는 혹은 주변에 다른 멀쩡한 남성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하다가 '그런 남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정당하다' 이런 식으로 왜곡된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지적 왜곡이나 잘못된 망상은 단기간의 치료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장기간의 심리치료나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폭행 결과가 좀 경미하다고 해서 단기형이나 벌금형으로 끝내 버리면 사실 교도소에 거의 수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교화 프로그램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원에서도 선고 방식을 조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이 사람이 과거에도 불특정한 대상에게 흉기를 휘둘렀거나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다고 하면 선고형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사이코패스라 그래", 섣부른 단정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흔히 "사이코패스 아냐?"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실제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흉기난동 사건이 벌어진 바로 다음날 신림역 현장을 직접 방문해 "명백한 사이코패스 범죄로 보인다. 사이코패스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사이코패스 범죄를 예방하는 법'이 따로 있을까요? 범죄자의 약 25~30% 정도가 사이코패스로 추정됩니다. 바꿔 말하면 적어도 70%의 범죄자는 사이코패스가 아닌데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나는 범죄를 단순히 개인의 성격장애 문제로 환원해 버리면 오히려 놓치는 부분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조은경[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국내 사이코패스 검사 연구]

"사이코패스는 그냥 범죄 형태만 보고 진단할 수 없는 개념이거든요. 그 사람의 생활 습관, 행동, 범죄 특성 이런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진단해야지만 판단이 가능한 그런 개념인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우발적으로 범행한 행동만 보고 '이 사람이 사이코패스다, 아니다'라고 진단하기는 불가능해요. 전문가가 아닌 분이 이렇게 판단을 하시는 건 좀 우려가 되고요.

사람들이 굉장히 두려운 범죄를 봤을 때 그냥 '이건 다 사이코패스니까 한 거야'라고 하면서 우리랑은 상관없는 범죄, 이렇게 거리를 둘 수도 있는데요. 사실은 그게 문제를 축소시키고 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승재현[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는 '묻지마 범죄', '무차별 범죄'라는 게 사실은 없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그 이유를 찾아야 되는데 못 찾으니까 그냥 편하게 '묻지마'라고 이야기하고, 사이코패스 검사(PCL-R)를 해서 '이 범죄의 원인은 사이코패스야' 이렇게 생각하는 거거든요. 사이코패스는 성격장애예요. 현상이죠. 현상은 범죄 원인이 아니에요. 그 성격 장애를 만들어 놓은 개인적·사회적 배경이 범죄 원인인 거죠.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찾아야 됩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잡히는 걸 각오하고도 범죄를 저질렀잖아요. 같은 또래에 대한 분노, 살인을 해야 할 만큼 강력한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동기, 그 열쇠부터 찾아야 이런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의 사이코패스 여부를 넘어, 전 생애사적 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설득력있는 원인을 찾아서 국가가 국민에게 답을 해야죠."

조재영 기자(joja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509064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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