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 추진 국보 반구대암각화, 관건은 '침수 방지책'
정부, 댐 수문 설치해 수위 조절 추진…등재 절차 맞춰 속도 내야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치명적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수몰 문제를 드디어 해결할 수 있을까.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됨에 따라 이런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유산급이라고 내세우는 이 위대한 문화유산은, 부끄럽게도 50년 넘는 세월 동안 큰비만 내리면 불어난 하천물에 잠기는 굴욕을 당하고 있다.
이에 세계유산 등재 대상 선정을 계기로 대곡천(반구천) 하류 지점에 있는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 수위 조절을 통해 반구대 암각화 침수와 훼손을 방지하는 정부 사업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유산급' 내세우지만, 많은 비 오면 물에 잠겨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개최한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로써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절차는 모두 마무리됐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현재 국보로 지정된 '울주 천전리 각석'(刻石·글자나 무늬를 새긴 돌)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유산이다.
이 가운데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천변 가로 10m, 세로 4m가량의 반듯하게 선 절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과 바다·육지 동물 등 307점이 표현돼 있다.
약 7천∼3천5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 수렵·어로 모습을 표현한, 세계적으로도 드문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이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남아있는 국제적 절차만 착착 밟으면 될 듯하지만, 실상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많은 비가 내릴 때마다 반구대 암각화가 불어난 하천에 잠겼다가 다시 물 밖으로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문화재 보존은커녕 훼손이 가속하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를 끼고 흐르는 대곡천 하류에 자리 잡은 사연댐 영향으로 비롯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 당시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는데, 그보다 6년 앞선 1965년 12월 대곡천을 따라 4.5㎞ 하류 지점에 생활용수 공급 목적의 사연댐이 건설됐다.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자연 월류형 댐이어서, 많은 비가 내려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상류의 암각화까지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연댐 만수위 표고는 60m인데, 암각화는 53∼57m에 있다.
즉 댐 수위가 53m만 돼도 암각화 부분 침수가 시작되고, 57m가 넘으면 완전히 물에 잠긴다.
30일 울산시에 따르면 이달 중순 집중된 장맛비 영향으로 지난 18일 오후 11시 10분께부터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어서기 시작해 암각화가 부분 침수됐다.
지난해 9월 태풍 '난마돌' 때 쏟아진 비로 20일가량 침수된 이후 10개월 만에 다시 물에 잠긴 것이다.
울산시는 사연댐 물을 최대한 빠르고 많이 빼내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댐 수위 낮추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지난 29일에야 수위가 53m 밑으로 떨어져 암각화가 물 밖으로 완전히 드러났다.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국보급 문화재는 또다시 열흘 넘게 물에 빠져있는 처량한 처지를 감내해야 했다.
'댐 수문 만들어 암각화 수몰 방지' 추진…등재 절차 맞춰 서둘러야
결국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면, 무엇보다 반구대 암각화 수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급선무다.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을 고심한 끝에, 지난해 3월 '사연댐 여수로 47m 지점에 너비 15m, 높이 7.3m의 수문 3개 설치' 방안을 마련했다.
3개 수문을 설치하면 현재 60m인 사연댐 여수로 수위는 52.2m로 낮아지고, 이에 따라 많은 비가 내려도 53m 높이에 있는 암각화는 침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행히 이 방안은 환경부가 추진하는 '사연댐 안전성 강화사업'에 반영됐고, 현재까지는 진행이 순조롭다.
애초 사연댐 안전성 강화사업은 276억원을 들여 노후한 취수탑의 내진 보강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후 여수로 수문 설치가 추가되면서 총사업비는 680억원 규모로 늘었다.
400억원가량 증가한 예산 확보가 관건이었는데,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개최한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해당 사업의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심의'를 완료했다.
이제 기재부의 총사업비 변경, 댐 관리 기본계획 고시, 기본·실시설계, 수문 설치 공사 등의 절차가 남았다.
관계 기관들과 협의 과정도 필요해서 제반 절차의 구체적인 일정을 관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오는 2025년 세계유산 등재를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워둔 터여서, 사연댐 수문 설치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절차와 보조를 맞추도록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 차원의 암각화 보존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는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연댐 수위를 낮춰 식수가 부족해지는 만큼, 대체 수원을 확보하는 대책 마련도 울산으로서는 시급하다.
정부는 지난 2021년 6월 의결한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에 '경북 운문댐을 활용해 반구대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한 물을 울산시에 공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려면 현재 운문댐에서 물을 공급받는 대구시, 대구에 낙동강 물을 공급할 경북 구미시 등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대구시와 구미시가 취수원을 다변화하는 사업을 놓고 갈등을 빚었고, 급기야 대구시는 경북 안동댐과 임하댐 원수를 활용하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운문댐 물 공급을 낙관하기 어려워진 울산시도 자체 상수원 확보를 위한 '맑은 물 확보 종합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 용역을 통해 기존 댐 저수량 확충, 소규모 댐 개발, 해수 담수화 등 상수원 확보를 위한 방안이 폭넓게 검토될 예정이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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