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이를 안 낳는 ‘진짜’ 이유]③“육아 예능은 인기지만 ‘돈 많이 든다’고 안 낳아…부모 인식 변해야”

홍다영 기자 2023. 7. 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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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부모 모습 본 자녀들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생각하기 어려워”
“가족이 물질 때문에 망가지는 경험 해…물질이 전제조건 돼”
“‘아이에게 해주지 못할 것 같아 안 낳는다’ 바람직하지 않아”

한국의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지난 3월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대체로 보조비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비단 경제적 부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들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문화심리적 요인도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선비즈는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저출산의 숨은 이유들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21년 전 세계 17국 성인 1만88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신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응답은 ‘물질적 행복’이 1위(19%)였다. 이어 건강(17%), 가족(16%) 순이었다. 반면 14개 국가는 ‘가족’이 1위였다. ‘물질적 행복’이 1위를 차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저출산 대책을 말할 때에도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라거나 ‘아이를 둘 낳으면 임대료가 공짜’, ‘출산한 부모에게 월 100만원 지급’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정책이 논의된다. 이런 지원책은 매년 늘어나지만, 출산율은 매년 최저를 경신 중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가족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화심리학자인 한민 교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인기를 끌지 않나, ‘랜선 이모’ ‘랜선 삼촌’이란 말도 있다. 아이들을 보고 싶은 욕구는 있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않게 하는 원인으로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인식’을 꼽았다. 한 교수는 “내 아이는 ‘스카이’ 보내고 의사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며 “그렇게 내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못 낳는다. 부모가 조금 놓으실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문화와 사회 현상을 접목해 한국인의 마음을 읽는 연구를 하고 있다. 고려대, 서강대, 우송대 등에서 10여년간 학생을 가르쳤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한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한민 문화심리학자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광화문에서 저출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ㅡ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동아시아가 유독 출산율이 낮지만, 심각하다는 대만(0.98명, 2021년)보다도 크게 낮다. 원인이 경제적인 것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사회를 만든 심리적 원인은.

“저출생에 경제적인 요인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심리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시대가 바뀌며 결혼·출산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추세가 가파르다는 건 한국적인 특징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배경이다. 한국은 굉장히 격동적이고 비극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냉전, 권위주의 정부, 살만하다 싶으니 IMF 외환위기. 부부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던 시기들이 꽤 길었다.

세대가 이전될 때는 전통적인 아빠의 역할, 엄마의 역할도 이전된다. 1950~1960년대 여성들은 ‘여자가 무슨 공부냐’ ‘결혼하면 살림해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등이 많았다. 엄마의 좌절을 그들의 자녀들이 많이 봤다. 그렇다고 아빠가 편했던 것도 아니다. 어떤 집은 전쟁에 끌려가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고, IMF로 사업이 망하는 불행을 경험했다. 그 자녀들은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ㅡ그래도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나.

“인간이라면 가족을 이뤄 나와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없지는 않다. 연인이나 배우자, 자녀를 안으면 몸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 유대감과 사랑, 행복한 감정과 관련이 있다. 출산율이 굉장히 낮아졌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인기를 끈다. ‘랜선 이모’ ‘랜선 삼촌’ 이야기도 한다. 아이들을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본인의 커리어나 사회적 삶만 보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 시기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후회할 수 있다. 한 세대에서 한 세대 반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반대 움직임이 나타날 것 같다. 출산율이 지금처럼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추세는 아닐 것 같다.”

ㅡ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을 가지기 이전에, 일단 결혼을 잘 하지 않는다. 애착관계를 형성할 배우자 자체가 요즘은 잘 없다.

“결혼을 할 조건을 준비할 때까지 미루게 되는 것도 있다. 직장에 들어가 당장 집을 사지는 못해도 둘이 살 집을 마련할 정도까지는 미루는 것이다. 빨리 결혼한다는 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인의 삶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삶이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커리어를 쌓고 삶이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커리어를 놓을 수 없으니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ㅡ한국의 문제점 중 하나로 출산·육아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경력이 단절된다는 점이 지적을 받는다. 일·가정 양립이 안 되니 커리어를 쌓으려 아이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이런 걸 해소해야 하지 않을까.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일을 하면 누군가에게는 아이를 맡겨야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회식하는데 아이를 언제 돌보나. 가족과 저녁에 식사하거나 주말에 손을 잡고 놀러 다니기 힘들다.

보통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부모가 늦게 퇴근하고 어린이집에 가면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아이들끼리 모여 있다가 누군가 자녀를 데리러 오면 우르르 나간다. ‘우리 엄마, 아빠일까?’ 아니면 실망한다. 아이를 조금만 늦게 데리러 가도 표정이 뚱하고 좋지 않은데 그걸 보는 부모의 마음은 편하겠나. 그렇다고 조부모에게 황혼 육아를 부탁하자니 그분들도 힘들다. 가족에게 집중하고 미래를 그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ㅡ어떻게 변해야 하나.

“님을 봐야 뽕을 딴다고… 지금 님을 볼 시간도 없다. 업무 시간을 늘린다는데, 저출생이 문제라고 하면서 모순된 이야기 아닌가. 또 해외에서는 직장에 어린이집이 많아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고 퇴근할 때 데려간다. 한국에선 그게 가능한 직장이 많지 않아 문제인데, 특정 직군이 몰려 있는 산업단지가 있으면 단지별 어린이집을 만들거나, 사무지구 블록마다 하나씩 마련해주면 좋을 것 같다. 리더의 생각이 바뀌면 제도가 바뀌고 문화가 달라진다.”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 성내천 물놀이장을 찾은 어린이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ㅡ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인은 물질적 풍요를 중요한 삶의 가치로 꼽지 않나.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풍요롭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시대가 있었고, 가족이 물질 때문에 망가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물질이 행복한 가정의 전제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안 낳는다는 생각도 한다. 소중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만큼은 못 키울 것 같아서 아예 안 낳는 프로세스가 아닐까. 학원에 몇 백만원, 뭐에 몇 백만원,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건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울 것이냐는 기준을 너무 높게 잡는 측면이 있다. ‘내 아이는 스카이 보내야 한다, 의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러나 아이가 공부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까지 성적이 나올지 부모는 안다. 부모님들도 조금 놓으실 줄 알아야 한다. 부모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ㅡ그런데 요즘 대치동에서는 초등학생이 의대 입시를 준비한다. 부모들은 ‘남들도 하니까’ 같은 논리로 학원을 보내고, 불안해한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아이들도 심리학적으로 걱정이 된다. 초등학생 의대반은 (부모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부작용이 있을 거다.

내가 찾는 내 삶의 이유에는 다른 사람의 이유가 필요 없다. 지금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 해줘야 한다’라고 삶의 이유를 외부에서 많이 찾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몇 백만원짜리 학원에 보내고 아이와 비싼 레스토랑에 가는 것을 보면 ‘그런가보다, 맛있겠네’라고 반응하면 되는데,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미안할 것 같아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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