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악성민원 받는 날, 사직하기로 했다" 16년차 초등 교사의 고백
"ADHD 아이 전학 요청 악성민원 시달려"
학부모 폭언·반말...교육청 신고까지 당해
"아이들로부터 존중받은 기억으로 버텨"
“악성민원 다시 받는 날, 사직하기로 마음 굳혔어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 16년 차 교사 김지우(가명·38)씨. 그는 재작년 한 사이버대학에 편입했다. 언어치료사로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가 오래 몸담은 교단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3년 전이었다.
고성, 반말, 욕설에 교육청 신고까지...악몽 같은 1년
3년 전 김씨는 초등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생활이 제한됐던 1학년을 보낸 2학년이었다. 김씨가 맡은 반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이가 2명 있었다. 새 학기 시작과 동시에 민원이 시작됐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부모들은 하교한 자녀에게 ADHD 학생들의 행동을 전해 듣자마자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그 아이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김씨도 처음엔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ADHD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행동을 기록해 그 부모들에게 조심스레 치료를 권했고,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학부모 4명의 집요한 전화는 두 달 동안 계속됐다. 한 학부모는 교실로 찾아와 “선생님이 해결 못 하면 교육청에 얘기하겠다, 교육청에 아는 사람 많다”며 압박했다. 또 다른 학생의 할아버지는 갑자기 교실로 뛰쳐 와 반말에 욕설을 섞어가며 “걔네 때문에 우리 손주가 방해받는다”며 김씨에게 삿대질을 했다.
1년 가까이 민원을 한 학부모는 김씨를 교육청에 신고했다. 그 아이들을 전학시키라는 요구에 김씨가 “교사 권한 밖의 일이라 할 수 없다”고 답하자 폭언을 퍼붓고는 신고까지 했다. 신고 사유는 “교사가 그 아이들을 너무 친절하게만 대해서 아이들 행동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학부모들에게 오래 시달려온 것을 알고 있던 교장과 교감이 조사를 나온 장학사에게 상황을 잘 설명한 덕분에 신고 건은 잘 해결됐다. 하지만 김씨는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민원에 스스로를 의심...수업도 방어적으로"
이 같은 악성민원은 처음이 아니었다. 5년 전엔 친구 휴대폰을 훔친 후 망가뜨린 학생을 지도하다가 그 아버지로부터 밤낮없이 “내 자식 기죽는 꼴 못 본다”는 고성과 욕설 전화에 시달렸다. 일주일에 두 번은 울고 소리치며 교실을 뛰쳐나가는 학생을 달래 가며 1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는 “이런 일을 안 겪은 교사는 한 명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1년간 이어진 민원은 10년 넘는 경력의 교사마저도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올해는 왜 이렇게 학급 운영이 힘들지’ 자괴감도 많이 들었고요.”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그해 김씨는 교단에 선 후 가장 방어적으로 수업을 했다. “저학년은 놀이 중심 교육이 많은데 ‘혹시 놀이활동 중에 갈등이 생기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한없이 위축됐다.
이직 결심을 굳히고 다음 해 한 사이버대학에 편입학했다. 10여 년 만에 다시 대학생이 된 그가 택한 전공은 언어치료.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지만 치료센터에서 1대 1로 아이를 지도하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는 내년 대학 졸업 후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해 언제라도 교단을 떠날 수 있게 준비를 마칠 예정이다.
"존중받았던 기억으로 버텨...20대는 많이 떠나"
김씨는 2년 차였던 서이초 교사 부고 소식이 남일 같지 않았다. “저는 1년간 악성민원으로 힘들 때 이전 학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존중받고 사랑받았던 기억을 많이 되짚었어요. ‘내가 이상한 건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며 극복했어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러기엔 경력이 너무 짧아서, 부정적인 생각에 한없이 빠져들었을 것 같아요.” 서이초 교사는 스물넷, 2년 차 신규교사였다. 자신이 겪은 일은 담담히 얘기했던 그였지만 후배 교사 이야기엔 눈물을 보였다.
김씨는 최근 어느 때보다 많은 이직을 목격하고 있다. “저처럼 10년 차 넘은 교사가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20대 선생님들은 많이 떠나요. 저도 이직을 고민하는 후배 교사들에게 ‘젊고 능력 있을 때 얼른 하라’고 하고요. 더 부서지고 상처받기 전에 좋은 대우받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지난해 교단을 떠난 국공립 교사는 총 1만2,000여 명으로 6년 전보다 43%나 늘었다. 이 중 근속 5년 미만 교사 589명이 퇴직, 전년(2021년 303명)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5월 교사노조연맹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 내 이직 또는 사직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한 교사도 87%나 됐다.
"저는 교직 생활 계속하고 싶어요"
김씨는 다행히 최근 2년 동안은 악성민원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와 올해는 너무 행복하게 교단에 서고 있어요. 아이들한테 뭐든 많이 주고 싶고, 1년 지나 훌쩍 성장한 아이들 보면서 기분 좋게 헤어지고 싶어요. 저는 교직 생활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이직 준비를 멈추지 않는다. 교사가 열심히, 잘한다고 해서 민원을 안 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저는 늘 똑같은 교사예요. 어떤 아이, 부모를 만나는지에 따라 아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 교사로 평가받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교사 취급을 받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그가 어떤 교사인지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마도 1년간 함께 지낸 아이들일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가 보내온 학생들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 13년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선생님이십니다. 제가 선생님이 되려고 마음먹은 후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항상 공평하시고 친절하시고 따뜻한 선생님이요.”
“졸업식날 저한테 해주셨던 말씀 기억하세요? 선생님께서 절 끌어안으시면서 전 정말 좋은 사람이고 조금 더 자신감 있게 행동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지금까지 만났던 선생님들 중 유일하게 선생님께서만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자신감 없는 행동을 하려고 할 때마다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어요.”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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