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해도 1시간 대기 '기본'…여름 독감에 더 길어진 소아과 대기

장성희 기자 2023. 7.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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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시작 20여분 만에 대기 환자 34명…일상이 된 '기다림'
낮은 수가에 '악성 민원'까지…소아과 기피 현상 더 심화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과 대기자 수가 32명을 가리키고 있다.

(서울=뉴스1) 장성희 기자 = "1시간이면 빨리하는 거예요. 많은 데는 1시간30분, 2시간은 기다려야 해요. 힘드네요"

26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는 아침부터 진료받으려는 아이들과 보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차지혜(41) 씨는 익숙한 일인 듯 덤덤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 의원의 진료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다. 하지만 10분 전부터 아이와 보호자가 의원 문으로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오전 9시쯤엔 앉을 자리가 사라졌다. 이날 오전 9시 16분 기준, 예약 애플리케이션 상 진료 대기자는 29명이었는데, 6분 만에 34명으로 늘었다.

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독감이 유행하면서 소아과에는 진료를 받으려는 아이와 부모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동네 소아과 의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같은 현상은 일상이 되고 있다.

30일 질병청에 따르면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환자는 올해 25주(6.18∼6.24) 15.0명에서 28주(7.9∼7.15) 16.9명으로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28주 환자의 경우 7~12세(43.0명)에서 가장 높았고 13~18세(25.2명), 1~6세(18.5명) 순이었다.

다른 의원의 사정 역시 비슷했다. 옹기종기 모여 TV 만화를 보는 아이들과 보호자로 병원에 비치된 소파는 이미 꽉 찬 상태였다. 예약 앱에 나타난 대기 인원은 이전 병원과 마찬가지로 30여명이었다.

아이 손을 잡고 온 허 씨(38)는 당장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그는 "대기가 너무 길어서 11시 반 정도에 오래요"라며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민원을 제기하는 보호자들도 종종 발견됐다. 이날 모 환아의 보호자는 '언제쯤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냐' '대기 줄이 왜 이렇게 긴 것이냐'며 업무를 보던 간호사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간호사가 "기다려달라"고 진정시켰음에도 화를 식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 소아과 의사 20% '다른 과목' 진료…신입 전공의 지원 미달 일쑤

이처럼 소아과가 북새통을 이루는 것은 아동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소아청소년과'의원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침마다 '오픈런' 전쟁을 하지 않으면 제 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소아청소년과 상근 전문의 3338명 중 667명이 다른 과 진료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전체의 20%에 달한다. 5년 전인 2018년 3월과 비교했을 때 6.5%포인트(p) 증가한 수치다.

공급 역시 줄어들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당장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총원 199명 중 33명이 지원하는데 그쳤다.

소아과 품귀 현상의 일차적인 원인으로는 '낮은 진료비'가 꼽힌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등에 미국의 평균 소아청소년과 진료비는 207달러(26만원), 호주는 335달러(28만4500원)인데 비해 국내는 10달러(1만2700원)에 불과하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현재 국내에서 소아과 의원을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적정수가 보상'을 지시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게 의사들의 입장이다. 임 회장은 “2월 이후 실질적인 움직임이 없다"며 "이대로 가다간 지난해 33명보다 적은 지원자가 올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폐업 안내문 / 온라인커뮤니티

◇ "왜 우리 애 진료 안 해줘" 악성 민원에 골머리…충남 모 소아과 '폐업'

낮은 수가와 함께 악성 민원인도 의사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충청남도 홍성의 모 소아과 의원 환아 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해당 의원은 9세 환아가 보호자 대동 없이 홀로 병원에 방문해 진료하지 않았는데, 보호자는 '진료 거부'로 민원을 제기했다.

소아과 의원을 운영중인 의사 A씨는 "여러 민원과 일부 부모의 갑질에 노출된 상황"이라며 "진료에서 얻을 수 없는 보람이 거의 없어, 소아과를 떠나는 선생님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상혁 창원 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도 "민원 때문에 죽어도 소아과 안 하겠다고 하는 의사들이 많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아과 품귀 해결을 위해선 '제대로 된 보상'과 악성 민원을 근절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A씨 "소아과 진료는 성인보다 몇 배의 시간과 체력,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라며 "이런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악성 민원인들이 극성을 부리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grow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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