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안 할 것 세계가 안다”…성큼 다가온 ‘핵무장 북한’ 실체는 [박수찬의 軍]
이번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북한이 27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한 정전협정 70주년(전승절) 열병식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과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 무인정찰기 등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이 갈고 닦은 핵무력을 과시하는 이벤트였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이 보는 앞에서 한반도와 미 본토를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핵·미사일 개발을 용인하고 있음을 외부에 보여주면서 국제사회가 그동안 노력했던 비핵화 정책은 빛을 잃었다.
오히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체념과 회의적 견해가 확산하는 모양새다.
21차례에 약 40발. 북한이 올해 들어 동해와 서해로 쏜 미사일 규모다. 바다 한가운데에 미사일을 대거 퍼붓는 ‘미사일 퍼레이드’는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2년 이후 북한의 대표적 군사행동으로 자리잡았다.
이같은 행동이 거듭되면서 이젠 김정은 체제에 회의적인 사람조차도 북한 핵·미사일이 대폭 강화된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력정책을 통해 만년대계의 안전담보를 구축하고 국가의 전략적 지위를 세계에 각인했다”고 밝힌 북한은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과 고체연료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양산 및 배치를 강조하고 순항미사일과 수중 드론을 만들었다. 비핵화 논의를 허용할 그 어떤 틈도 주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미 본토에 이르는 북태평양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핵·미사일 전력을 갖추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경제를 희생하면서까지 북한이 핵무력에 올인해서 얻으려는 것은 뭘까.
‘확장억제 강화를 외치는 한·미에 성능이 검증된 전략무기로 맞서서 긴장 국면을 유지한다.’ 북한이 올해 실시한 미사일 발사의 핵심 키워드다.
북한의 억제력은 ICBM과 핵무기다. 미국을 겨냥한 핵전력을 제대로 건설하면, 한반도에서의 억제력이 작동할 수 있다.
전쟁수행능력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전쟁수행능력을 갖추려면 한반도 남부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검증된 무기와 지원체계가 필수다. 상징적 수준을 넘어서 실질적인 위협이 될 전력을 갖춰야 하므로 예산 소요가 크다.
일반적 형태의 재래식 전력증강에 나설 경제적 여력이 없는 북한은 전술핵과 미사일을 앞세웠다.
KN-23·24 단거리탄도미사일과 초대형방사포, 전술지대지유도무기, 순항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시험하면서 실전능력을 축적했다. 전술핵탄두 화산-31형도 공개, 재래식 타격과 핵공격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양적 질적으로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국으로서는 압도적 규모의 핵무기를 가진 자신들의 위력을 보여주기만 해도 북한의 선제 핵공격을 억제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더 많은 핵을 지닌 나라가 확전을 결정한다’는 냉전 시절 인식 때문이다.
워싱턴선언 후속 조치로 지난 18일 열린 한·미 1차 핵협의그룹(NCG) 회의에서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북한의 핵공격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는 북한 정권 종말을 의미한다”고 밝힘으로써 ‘공격을 받으면 훨씬 큰 보복을 한다’고 위협, 상대의 결심을 어렵게 하는 응징억제 개념을 제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북한이 재래식 전쟁에서도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개전 직후 저위력 전술핵을 부산 등 보급로 공격에 사용할 경우 한·미가 평양에 대규모 핵·재래식 공격을 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이 모든 종류의 핵·미사일로 서울과 워싱턴에 반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미가 북한 전역을 샅샅이 정찰하면서 공격을 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핵 시설이 있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미사일방어체계와 킬 체인이 완벽하게 가동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전면적인 반격을 초래할 정도의 핵 보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전술핵으로 반격하거나 대규모 공격에 대한 의사결정 지연으로 공격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북한은 패하더라도 심각한 패배는 피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생존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면서 정부는 확장억제력 강화를 거듭 외치고 있다.
워싱턴선언을 통해 미국 핵전력과 한국군 비핵전력의 결합을 강화, 시너지를 높이는 통합억제를 추구하면서 핵추진잠수함과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유사시 어떻게 핵무기를 운용할 것인지를 모른다면, 확장억제 적용은 한계가 있다. 북한 핵공격에 맞서 반격을 감행해야 하는데, 북한 핵전략을 알지 못하면 반격의 강도 등을 설정하기가 어렵다. 북한이 한·미의 예상대로 움직일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냉전 시절 미국은 옛소련의 핵전략을 확인하기 위해 펜타곤과 랜드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연구와 토론을 거듭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핵 전략을 발전시켰다.
북한은 주요 군 지휘관과 당 간부, 과학자들이 모여서 핵무기와 운용전략을 만들어 왔다. 그 결과 경제나 농업 등에 대한 발전 전략은 엉성하지만, 핵과 관련된 부분은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세밀하면서도 세부 사항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북한의 첫 핵공격 대상이 서울인지 부산인지도 모른다면, 확장억제의 가동 형태나 시기 등도 정하기가 어렵다.
한국과 미국이 통상적 또는 방어적 차원에서 실시한 확장억제 조치를 북한이 공격적 행위로 인식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적대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핵 억제력과 군사대비태세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다면,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북한은 지난 20일 강순남 국방상 명의로 담화를 내고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의 부산 기항에 대해 “전략자산 전개의 가시성 증대가 우리 국가핵무력정책법령에 밝혀진 핵무기 사용 조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북한 지도부의 의중에 대한 정보수집과 연구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평양에 있는 전쟁지도부의 머릿속에 있는 핵무기 사용법을 확인해야 핵·미사일 연구 및 실전배치 상황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7차 핵실험 여부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체제 유지의 선봉은 핵무력이다. 한·미 확장억제와 맞서는 핵무기로 김정은 체제의 영속을 꾀하는 셈이다.
휴전선 북쪽에 있는 북한의 핵무력과 남쪽에 설정된 미국의 확장억제력. 한반도에서 두 개의 핵전력이 대치하는 모양새는 전례를 찾기 힘든 국면이다.
‘공포의 균형’ 속에서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김정은 정권의 의도는 비핵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북한 위협을 억제할 수 있지만, 경감할 방법이 없는 것이 한반도의 우울한 현실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평양이 걸어온 길을 추적하면서 북한의 핵전략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확장억제력도 북핵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기가 어렵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이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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