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축제] 물안개 둘러도 빛나네 연못에 별처럼 핀 꽃
숲길 지나 정원 이르면 어느새 ‘백련지·홍련지’
하얗고 붉은 꽃잎들 못 위에서 존재감 드러내
기품 있는 맵시 뽐내는 수련도 또다른 볼거리
더위에 단 몸 차분해지고 입가엔 미소 저절로
여름에 피는 꽃은 작열하는 태양 빛을 받아 샛노랗고 새빨간 색감이 선명해 더욱 아름답다. 해바라기·수국을 비롯해 연꽃까지 한여름 풍경을 다채롭게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많다. 여름 꽃 축제로 유명한 경기 양평 세미원 ‘연꽃 문화제’를 찾았다. 연꽃과 수련, 각종 수생식물을 감상하다보면 어느 순간 지독한 무더위도 잊을 듯하다. 이 문화제는 8월15일까지 열린다.
“경기도 제1호 지방 정원 세미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세미원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죠. 수질 정화 식물이 다량으로 식재돼 있어 이 근방 자연정화 기능을 오롯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양평군 양서면 세미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해설을 책임질 이호연 문화관광해설사(59)가 인사를 건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강 물에 떠다니는 중금속과 부유 물질을 거르기 위해 연꽃·수련·창포 등 수생식물을 재배한 게 세미원의 시작이다. 전체 20만7500㎡(6만평) 넘는 규모에 6개 연못을 조성했고, 이 연못을 거쳐 깨끗해진 물은 팔당댐으로 흘러간다. 여름마다 연못을 빼곡히 채우는 울긋불긋한 연꽃이 장관이라고 입소문이 나 주말에만 하루 3000여명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 문화제에서 본격적으로 정원을 감상하려면 ‘불이문’을 통과하는 게 먼저다. 문 중앙엔 장엄한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고 하늘 높이 치솟은 기와지붕 너머로 높이 자란 꽃나무가 언뜻언뜻 보인다. 이 해설사는 “‘불이문(不二門)’이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란 뜻으로, 벽이 두개인데 각기 다른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문을 구성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라며 “하늘과 땅, 자연과 사람, 너와 내가 결코 다르지 않고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고 설명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지나 정원 깊숙이 들어가면 이곳의 상징 백련지·홍련지에 다다른다. 백련지는 하얀 연꽃이 연못 위를 빼곡히 채우고, 홍련지는 붉은 연꽃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두 연못 사잇길을 걸으면 양옆에 무수한 연꽃이 광활하게 펼쳐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해설사는 “연꽃은 더러운 펄에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낸다는 점에서 추에서 미를 드러내는 불교의 미묘법과 일맥상통한다”고 귀띔했다.
백련지 맞은편엔 저 멀리 잔잔하게 흐르는 남한강 줄기가 보인다. 산 능선에 조심스럽게 가라앉은 물안개는 연꽃의 수려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연못 가장자리에 피어난 연잎은 거대한 넓이를 감당하지 못해 관광객이 지나는 길가까지 빼꼼히 나와 있다. 잠시 내린 소나기 빗물이 그새 연잎 중간에 고였다. 한참을 바라보다보면 ‘뽀글뽀글’ 물방울이 올라온다. 이 해설사가 화들짝 놀라며 “방금 연잎이 숨 쉬는 거 보셨죠?”라고 묻는다. 그는 “연꽃 줄기와 이어진 미세한 구멍이 있는데, 저기가 막히면 금세 연꽃이 죽는다”며 “연꽃 줄기 역시 미세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고 알려줬다.
페리기념연못은 세미원이 전국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 박사가 기증한 연꽃이 이맘때쯤 만발해 이색적인 경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세미원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연꽃을 두루 볼 수 있단 점에서 독보적이다. 개원 이후 꾸준히 자체 연구를 하고, 태국 왕립 라차망칼라 대학교와 양해 각서를 체결해 희귀 수생식물 품종을 확보하기도 했다.
연꽃을 다 봤다고 미련 없이 세미원을 떠나면 안된다. 연꽃 못지않게 기품 있는 맵시를 가진 수련도 대표 볼거리 중 하나다. 수련은 긴 줄기 끝에 꽃이 달리는 연꽃과 달리 수면 위에 꽃이 동동 떠 있다. 꽃잎도 더 뾰족해서 바로 옆에 두면 생김새가 확연히 차이 난다. 이 해설사에 따르면 수련은 낮에 활짝 피었다가도 해가 지면 확 오므라들어 꽃을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를 보고 잠자는 연꽃, 수련(睡蓮)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홍련지 오른편엔 아마존에서 온 빅토리아 수련(Victoria Amazonica)이 사는 빅토리아 연못이 있다. 이 식물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잎과 꽃 크기를 자랑한다. 잎은 지름이 1∼2m에 달하고 끝부분이 직각으로 구부러져 얕은 냄비를 연상시켜 물쟁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은 딱 3일 피는데 날마다 색이 바뀐다. 첫날은 하얀색, 둘째날은 빨간색, 마지막 날은 더 짙은 빨간색을 띠며 활짝 폈다가 시든다. 이 수련을 보려고 멀리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어떻게 꽃잎 색이 달라지는지 듣기만 해도 신기하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미원은 주변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의미 있는 시간들을 일궈왔다. 2004년 조성 초기에만 잠시 무료 개방을 했고, 2007년부터는 입장료를 받았다. 다만 이때는 관광객이 낸 입장료만큼 지역농산물을 제공해 지역농민들과 상생할 방안을 마련했다.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2012년부턴 농산물 제공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한 관광객 덕분에 지역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 이미 연 누적관람객 30만명을 돌파하며 전국을 대표하는 여름 꽃 축제로 부상했다.
구석구석 돌며 세미원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더위에 달았던 온몸이 차분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무성하게 피어난 연잎 사이로 여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잉어를 우연히 발견하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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