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1600만원’ 호캉스 성지서 나는 이 냄새, 정체가 뭐야?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강신재 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은 한국 소설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줄로 회자된다. 발표된 지 60년도 더 된 이 소설이 아직도 싱그럽게 느껴지는 건,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비누 냄새’라는 모두가 아는 한 단어로 소환했기 때문 아닐까?
후각은 기억이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 한번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서 고향집을 생각하기도 한다. 5성급 럭셔리 호텔들 역시 후각의 강력한 힘을 믿는다. 100㎖에 40만원까지 치솟는 값비싼 니치향수(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 제품들로 객실을 채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1600만원을 내고 묵는 롯데 시그니엘 객실에선 어떤 향기가 날까. 1등 항공사 퍼스트 클래스 탑승경험을 기억 속에 각인시켜줄 특별한 향기는 뭘까. 성별 불문, 나이 불문, 국적 불문, 호불호 없는 향기를 찾는다면 일류 호텔의 선구안에 답이 있을 지도 모른다.
국내 호캉스 성지로 성지로 꼽히는 5성급 호텔에선 특별히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값비싼 숙박료를 지불하고 투숙하는 고객들의 하루를 특별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일류 호텔들이 기념품처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어메니티(amenity)가 대표적 사례다. 어메니티란 손님들을 위해 객실 등 호텔에 무료로 준비해 놓은 샴푸, 바디워시 등 욕실용품과 각종 서비스용품을 뜻한다.
1박 1600만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비싼 호텔로 꼽히는 시그니엘 서울은 프랑스 니치향수 대명사로 불리는 딥티크(Diptyque)를 제공한다. 2017년 4월 문을 열면서 국내 최초로 딥티크 어메니티를 도입한 사례다. 시그니엘 딥티크 어메니티는 같은 브랜드의 ‘오데썽’과 비슷하다는 반응이 많지만 국내에서 소매로 구할 방법은 없는 제품이다.
롯데호텔 측은 “한번 사용해 본 투숙객들이 구입을 문의하기도 하지만 시중에서 소매로 사기는 어렵다”며 “딥티크 어메니티 전용 제품은 아무 호텔이나 공급하지 않고 있어 롯데호텔의 특별한 공간을 구성하는 시그니처라 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딥티크와 손잡은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업계는 더 있다. ‘세계 1위 항공사(스카이트랙스 발표)’ 타이틀을 7번이나 차지한 카타르 항공은 2021년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딥티크와 독점 파트너십을 맺었다. 비행기 안과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HIA)의 프리미엄 라운지 등에서 제공하는 어메니티가 딥티크 제품이다. 어메니티로 제공하는 향수는 ‘오 로즈’ 오드 뚜왈렛이다. 장미향에 앰버, 패출리, 시나몬이 가미된 포근한 꽃향기가 자줏빛 로고의 카타르 항공과 그럴싸하게 어우러진다.
세계 최고 호텔 리스트로 거론되는 리츠 칼튼(The Ritz-Carlton)의 선택 역시 딥티크였다. 리츠 칼튼 호텔은 지난해 연말부터 딥티크 ‘필로시코스’(Philosykos) 라인을 콕 집어 어메니티로 제공한다. 무화과 향기를 베이스로 한 이 향수는 특별히 이국적이거나, 강렬하지 않아 호불호가 적은 향으로 유명하다.
딥티크와 더불어 대표적인 니치향수 브랜드로 꼽히는 미국 뉴욕 기반 르 라보(Le Labo)는 파크 하얏트 부산의 선택을 받았다. 파크 햐앗트는 르 라보 향수 가운데서도 베르가못22(Bergamote22)를 선택했다. 이밖에 신라호텔은 몰튼브라운(영국),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는 펜할리곤스(영국) 등 니치 향수 브랜드로 객실 공간을 풍성하게 연출했다.
한때 고급 호텔 호캉스 전리품으로 챙겨올 수 있었던 어메니티는 최근 몇년새 국내에선 자취를 감췄다. ESG 경영을 모토로 한 국내 간판 호텔 대다수가 투숙객에 증정하던 일회용 어메니티를 없앴기 때문이다. 투숙객에게 개별 증정품으로 나눠줬던 어메니티는 욕실에 비치하는 다회용 제품으로 변경됐다.
고객들을 오프라인 공간에 붙잡아 두기 위해 애쓰는 건 서점·백화점 등도 마찬가지다. 다만, 럭셔리한 공간을 위해 니치 향수 브랜드와 손잡은 호텔과 달리, 자체적인 향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교보문고는 지난 2015년부터 ‘책 향(The Scent of Page)’을 개발해 서점 매장에 활용했다. 본래 매장에서만 사용하려던 이 향기는 교보문고 냄새를 집과 일상의 공간으로 가져오고 싶다는 고객들의 요청 끝에 2017년부터 ‘책 향’ 프래그런스 제품으로 출시됐다. 이후 5년여간 누적 판매량 1200만병을 돌파하며 불티나게 팔렸다.
롯데백화점이 전국 롯데백화점과 프리미엄 아울렛 등의 매장에 활용한 시그니처 향 ‘플리트비체’ 역시 향기 마케팅의 일환이다. 처음엔 문화센터에만 비치했던 플리트바체 디퓨저 등은 최근 전 계열사 매장으로 발을 넓혀 매장 1층 등 백화점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공간에 비치됐다.
업계는 이같은 향기 마케팅을 관통하는 원리로 ‘프루스트 현상’을 꼽는다. 프루스트 현상이란,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를 통해 특정한 시공간과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 냄새를 매개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 호텔·서점·백화점을 방문해 맡은 향기가 기억 속에 각인돼 또 한번 발걸음하고 싶어진다는 얘기다.
최근 몇년새 잘나가는 향수 브랜드 공통점은 ‘젠더리스(genderless) 코드’다. 특히 남성들의 향수 선택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여성복의 ‘남성복화’가 두드러진 패션업계와 비교하면 남성들의 기호가 ‘여성화’된 대표적 부문인 셈이다.
글로벌 니치 향수 브랜드인 아쿠아디파르마(이탈리아), 펜할리곤스, 딥티크 등도 여성용과 남성용 향수를 명시하지 않는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니치 향수 브랜드가 각광받으면서, 여성들과 함께 써도 어색하지 않을 포근하고 따뜻한 향기를 선호하는 남성 소비층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형성된 ‘니치 향수 거리’는 국내 니치 향수 소비층의 영향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세계 최대 규모의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가 지난해 오픈했고, 르라보, 이솝(호주), 에르메스(프랑스) 매장 등이 줄지어 운영 중이다. 최근엔 ‘바이레도(스웨덴) 가로수길 뷰티스토어’도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눈에 띄는 점은 100㎖에 40만원까지 치솟는 고가의 향수를 판매하면서도, 다른 명품숍과 달리 매장 외관이 비교적 단촐하고 단순하다는 점이다. 이같은 전략은 니치 향수 시장이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품)를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몇 백, 몇 천만원짜리 가방과 쥬얼리를 판매하는 명품 하우스와 달리, 니치 향수 시장의 타깃은 광범위하다”며 “남성들도 거부감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 잠재 소비층인 2030세대가 위압감을 느끼지 않는 공간으로 연출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몰 럭셔리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니치향수 업계는 아시아 명품 큰손인 중국과 한국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니치 향수와 핸드케어, 립스틱 제품 등이 포함된 한국의 뷰티 분야 스몰 럭셔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5억6700만달러(약 7326억원)로, 중국(20억4200만달러)에 이어 아시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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