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이 빚은 세기말 파리의 문학 세계[PADO]
[편집자주] 향정신성 물질의 활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그 역사와 폭이 매우 깊고 넓습니다. 신령과 소통을 꾀하던 고대의 샤먼부터 보다 깊은 영감을 찾는 예술가와 철학자, 심지어 새로운 영감을 모색하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도 이용할 정도니까요. (조만간 실리콘밸리의 향정신성 물질 사용에 대한 기사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소크라테스, 이백 등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즐겨왔던 술도 낮은 차원의 향정신성 물질로 볼 수 있죠. 소크라테스는 노년에 음주를 권했고, 이백은 술을 찬미하며 시를 남겼습니다. 과학, 의료의 문화사에 대해 많은 책을 쓴 마이크 제이는 최근 저서에서 19세기의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인간 정신의 탐구를 위해 이런 물질을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그 중 19세기 말 파리 문학의 거장 모파상과 장 로랭을 다룬 부분을 소개합니다. 향정신성 물질의 남용은 두 문호 모두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들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840년대에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되던 디에틸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은 19세기 말이 되자 수술실 밖에서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용해성 물질인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당시 사람들은 증기로 흡입하여 흉부 및 폐 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완화하는 데 썼고 공황 발작과 신경증에 빠르게 작용하는 진정제로도 활용했다. 의사와 저널리스트들은 티룸에서 클로로포름을 "방탕하게" 사용하는 행태와 젊은 여성 무리가 클로로포름에 취해 피식피식 웃고 졸도하는 모습이 공공연히 목격되는 작태를 비판하는 글을 쓰곤 했다. 한편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 기간 중 클로로포름을 이용하여 무수한 사람들을 살해했던 헨리 하워드 홈즈 사건처럼 충격적인 범죄사건이 다수 발생하면서 클로로포름의 오명은 더욱 커져갔다. 1890년대 후반에는 황색 저널리즘과 약물중독, 자살, 강간, 살인에 대한 대중의 상상이 결합했고, 피해자의 얼굴 위에 클로로포름을 적신 천을 덮으면 즉시 의식을 잃는다는 뿌리깊은 오해를 낳았다 (실제로 의식을 잃으려면 지속적으로 깊이 클로로포름을 들이쉬어야 한다).
약물치료와 의식의 확장, 약물중독, 의존증, 범죄가 밀접하게 얽혀 있던 19세기 말 파리에서는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이 모르핀, 아편, 코카인, 해시시, 웜우드를 우린 압생트와 더불어 자유분방한 화류계 여성들 사이에 유통되었다. 종종 천식, 결핵, 신경쇠약 환자들은 이 용액을 작은 유리병이나 약병에 넣어 다니다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강장제와 시럽에 섞었다. 가끔은 칵테일에 넣기도 했는데 샴페인에 에테르를 적신 딸기를 띄우면 강한 쾌감을 자아냈다. 이때 딸기는 휘발성 액체인 에테르가 너무 빠르게 증발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시대에는 에테르를 데카당스의 상징으로 그리거나 사실적인 서사를 꿈과 상징이 가득한 풍경으로 바꾸는 문학적 소도구로 사용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복용하면 정신 상태를 흐트러뜨리는 에테르의 특성은 이 작품들 속에서 낯선 정신적 상태, 정신적 망상, 기이한 자기 복제, 공간과 시간의 벗어남을 경험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에테르는 기 드 모파상의 1882년 단편 '꿈'의 주제이기도 했다. '꿈'은 삶이 따분하고 신경쇠약에 걸린 다섯 친구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갉아먹는 권태, 밤잠을 설치게 하는 불면증과 악몽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그 중 의사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경험인 진정한 몽상"은 현대의학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의사가 언급한 것이 자기들도 이미 해 본 아편이나 해시시라고 생각한다. 한 명이 식상하다는 듯 말한다. "내가 보들레르도 읽어봤고 그 유명한 약도 해 봤는데 하고나니 몸이 너무 아팠다니까." 그러나 의사가 말한 약은 에테르였다. 그는 처음에 에테르를 자신의 신경통 완화를 위해 쓰다가 "이후에는 약간 과하게 사용해 온 것"이었다. 그는 에테르 병을 손에 들고 누워 천천히 들이마셨던 경험을 회상한다.
"(내 몸이) 살아 있는 것과 이 행복감에 푹 빠진 달콤함을 자각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피부만 남기고 뼈와 살이 녹아내린 것처럼 가벼워졌어. 그때 내 고통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네. 고통이 없어지고, 녹아버리고, 증발해 버렸지. 그때 목소리가 들렸어. 목소리 네 개가 둘로 나뉘어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더군."
해시시나 "다소 역겨운"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아편을 사용했을 때와 달리, 에테르를 흡입한 다음에는 고도로 정신이 맑아졌다.
"나는 엄청난 힘과 지적인 즐거움을 느끼면서 내 정신적 능력과 분리되는 순간에 크게 도취한 상태로, 극도로 선명하고 깊이 있게 사유했지… 선악과(善惡果)를 맛본 듯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것 같았고, 새롭고 낯설지만 거부할 수 없는 논리에 지배되었네. 논증과 추론, 증거가 한덩어리로 떠올랐다가 즉각적으로 더 강력한 증거와 추론, 논증에 자리를 내주었다네. 실제로 내 머릿속은 온갖 관념의 전쟁터가 되었지. 나는 불굴의 지성으로 무장한 우월한 존재가 되어 내 힘이 현현하는 것을 보면서 큰 기쁨을 누렸다네."
의사는 오랫동안 병 안에 든 에테르를 계속 들이마셨고 머릿속 몽상에 빠져 있다가 병을 들여다보니 비어 있었다. 모파상 자신도 '꿈'의 의사처럼 의료적, 감각적, 철학적 목적으로 에테르를 사용했다. 모파상도 처음에는 끊임없이 지속되던 편두통, 류머티즘, 부분 실명, 내출혈, 열병을 포함한 일련의 질병과 신경증을 치료하려고 에테르를 썼다. 그를 담당한 의사들은 병의 원인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냈고 그 원인을 소급해 보면 대부분 말년의 병세 악화와 매독으로 인한 사망과 연관이 있었다. 습관적인 에테르 복용은 모파상에게 기이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친구들에게 안락의자에 앉은 붉은 난쟁이들을 본 적이 있고 자신의 영혼이 몸에서 분리돼 집으로 걸어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을 몇 번 했다고 말했다.
(계속)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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