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용기에 살아있는 토끼를 넣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김영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동물권소위 위원]
지난 5월 키우던 토끼를 10시간 동안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가둬 질식사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인에게 항소심법원은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하였다. 1심 재판부는 무죄선고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고인이 토끼를 플라스틱통 안에 넣은 목적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토끼와 분리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령 죽이기 위해 통 안에 넣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행동이 동물보호법상 학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어진 항소심 재판부 또한 "피고인의 행위가 동물에 대해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해당되지는 않는다"라고 판단함으로써 1심의 판결을 정당화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넣어 10시간을 가둔 것이 잔인한 방법이 아니라는 판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반찬을 넣어둔 것과 살아있는 토끼를 넣어둔 것은 법적으로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인가? 토끼의 법적 지위는 무엇이기에 밀폐용기에 넣어도 동물학대가 아닌 것으로 평가되었을까?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개정안의 배경
민법 제98조는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물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물은 민법 제98조의 유체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 법적 지위가 물건이 된다. 이런 이유로 개와 개 모양 인형은 같은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주인이 심각하게 동물을 학대한 것이 적발되더라도 그 물건의 소유권을 가진 주인에게 돌려보내야 한다. 학대를 받은 동물이 공적으로 구제받지 못하고 학대한 주인에게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규범적으로는 동물 학대 또한 물건을 학대한 것이어서 동물 학대의 형량이 제대로 선고되지 않았다. 동물을 다치게 한 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수가 턱없이 낮은 문제점도 이와 연결돼 있다.
이러한 민법의 조항이 상식과 동물에 대한 시민 일반의 감수성과 부합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21년 10월 정부는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동물 학대·유기 방지,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 개선 및 동물권 보호 강화 등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에 부합하는 동물의 법적 지위 개선을 위하여,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이 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다.
'2022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사단법인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2022)'에 따르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를 민법에 명시하는 데 국민 94.3%가 찬성하고 있어 대부분의 국민 의식에 부합하는 개정안이라 할 수 있다. 또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입법예고, 규제심사, 법제처심사, 국무회의 심의 등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쟁점, 문제점, 부작용을 논의하여 발의하여야 하고, 결론적으로 정부안으로 발의되었다는 사실로 판단해 볼 때 '이 개정법률안대로 개정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이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우리나라의 현행법 같은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법적 태도'를 이미 극복한 바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법제를 도입하여 학대 행위자의 동물 소유권을 제한하는 등 동물을 단순히 물건으로 보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과 같은 나라들은 '동물을 감응력 있는 존재로 규정'하며, '동물의 이익을 고려하는 적극적인 입법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미 국가들의 헌법에는 자연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고, 특히 칠레는 '동물은 지각 있는 존재'라는 내용으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심사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정부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규정이 동물의 법적 지위를 제고하는 기본조항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동물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환영하였고,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국회는 발의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별다른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가, 2023년 4월 4일에야 합의문을 통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4월 임시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하기로 발표하였고, 이는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 요란한 합의 이후 2달이 넘도록 이 개정법률안은 여전히 법안심사조차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환경, 동물, 기후, 생태 등을 고민해온 20여 개 단체들이 모여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를 구성하고, 지난 5월 30일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는 더 이상 국회가 자발적으로 법을 개정한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국회 양당이 지난 4월 합의하여 대국민 발표까지 하였던 만큼 국회가 신속히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출범 이후 양당 국회의원실을 방문하여 박주민, 이탄희 의원과의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개정법률안의 조속한 법안 통과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시민들과 만나 개정법률안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현장 액션도 기획하고 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의 활동에 대해 일각에서는 단순히 선언적 의미에 불과한 이 개정법률안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심대한 의미가 있다. 근본적으로 동물을 물건으로 평가하는 한, 동물 관련 법제들은 현재의 '동물보호법'과 같이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규범력, 가치평가, 적용범위, 판단수준을 가지게 된다.
송기헌 의원실이 법무부와 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 4249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122명(3%)에 불과하고, 절반 가까이가 불기소되었으며(46.4%), 1372건(32.5%)은 약식명령처분을 받았다. 5년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입건된 피의자 4221명 중 구속기소된 피의자가 단 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 법체계에서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규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통계적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고양이 식용금지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동물보호법'처럼 무기력한 수준으로 기능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라는 합리적인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개정법률안은 법체계 내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를 정립하게 되며, 다른 동물보호 관련 법령들을 제대로 기능하게 만드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시민의 생명인식 수준과 동떨어진 법을 수선하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당신에게 묻는다. 밀폐용기에 살아있는 토끼를 넣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신은 질문에 답변하기보다 질문자를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직한 분노가 섞인 말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이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신은 살아있는 생명과 반찬도 구별 못하나?"
이 반문이 향해야 할 곳은 우리 법이다. 황당하게도 현재의 우리 법은 '살아있는 토끼도 물건이기에 넣어도 된다.'고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법체계가 우리를 규율하고 우리를 지배하는 현실을 바로잡고자, 우리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는 이 개정법률안 통과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시민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법이 현실, 시민의 생명인식 수준을 따르게 해야 한다.
[김영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동물권소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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