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좨송해요” 먹먹한 사과 댓글 단 분식집…직접 가봤습니다 [화제의 현장]

김지호 2023. 7. 2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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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사 메뉴 1만원 이하로 저렴해
노량진 식당 대박분식…아들도 도와
막내아들 “부모님 편찮으셔서 걱정돼”

진심은 마음을 움직인다. ‘별점 1점’을 주며 혹평을 단 여러 후기에 일일이 진정성있게 사과하는 댓글을 단 분식점 노부부 사연이 그렇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면서 많은 누리꾼이 노부부를 응원하는 댓글을 남기고 앞다퉈 음식을 주문했다. 배달앱 댓글에는 혹평 대신 “세상엔 오이냉국수에 오이 빼고 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줏대 있게 김치전에 김치 넣어먹습니다”, “사장님이 친절하고 음식 맛있다고 유명해서 시켜봤는데 오랜만에 집밥같이 잘 먹었습니다. 양 정말 많고 진짜 맛있네요” 등의 만점 후기가 올라왔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을 ‘돈쭐(돈+혼쭐,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신조어)’ 내주기 위해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모두 엄청난 맛과 양에 놀라서 후기를 남겼다. 지난 28일 많은 이들에게 진심의 가치를 보여준 노부부를 만나기 위해 노량진 분식집을 직접 찾아갔다.
진심 어린 배달앱 댓글로 화제가 된  노량진 노부부 분식집 전경.  김지호 인턴기자
◆화제의 오이냉국수…“제가 한 번 먹어봤습니다”

많은이에게 일상의 감동이 된 사건이 시작된 메뉴는 오이냉국수였다. 

“분명 오이 빼달라고 그랬는데 넣을 수 있는 곳은 다 넣어놨네요; 요청사항좀 읽어주세요”

한 손님이 오이냉국수를 주문하며, 오이를 빼달라고 요청했으나 노부부는 요청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이에 손님은 별점 1점과 불만의 후기를 남겼다. 노부부는 “너무 너무 좨송합니다. 너무 좨송해요. 너무큰실수를햇내요”라고 사과하는 댓글을 남겼다.

오전 10시 30분쯤인데도 폭염이 뒤덮은 거리를 지나 노부부의 분식집에 들어서면서 그 오이냉국수를 주문해봤다. 최근 많은 주문으로 홀은 운영하지 않고,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다는 소식을 미리 알고 찾아갔던 터였다. 홀로 있던 여사장님께 “포장할 수 있냐”고 묻자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홀에서 먹어도 된다”며 흔쾌히 자리를 안내해줬다.

식당 내부는 테이블이 3개 있었다. 6인석이 2개, 4인석이 1개인 작은 식당이다. 메뉴를 하나 더 주문하기 위해 가장 인기 많은 메뉴를 물었더니 ‘김치제육볶음밥’이란 답을 들었다. 둘 다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사장님은 만원짜리 한 장을 건네시며 번데기 통조림을 사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재료가 부족한데 주문이 밀리고, 무릎이 아파 거동이 불편하다는 사연과 함께였다. “알겠습니다”하고 얼른 근처 슈퍼마켓을 다녀왔다. 이러는 동안에도 식당 안에는 배달앱 주문음이 쉴 틈 없이 울리고 있었다.

사장님은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요리하면서 번데기가 필요한 이유를 알려줬다. “번데기 볶음밥이라는 메뉴가 있었어. 예전에 호프집을 하다가 식당으로 바꿨을 때 번데기가 많이 남아 만들었는데, 주문이 많지 않다가 요새 많아진 거야. 영양밥이라고 찾는 분들이 계시는데 아직 배달앱에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네.” 특이한 메뉴가 나온 사연을 알려주며 사장님은 활짝 웃었다.

이윽고 기다리던 오이냉국수가 나왔다. 주문한 건 두 가지인데 양이 많을 거라며 김치제육볶음은 내주지 않으셨다. 오이냉국수 그릇을 보면서 사장님께 감사했다. 양이 말도 안 되게 많았기 때문이다. 얼음이 떠 있고, 고춧가루와 오이도 보였다. 국물을 들이켜자 더위에 사라졌던 입맛이 돌아왔다. 새콤 달큰하고 시원한 맛이었다. 가격은 6000원. 식당에서 판매 중인 식사 메뉴는 모두 1만원 이하였다.
오이냉국수는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맛으로 더위에 지쳐 잃어버린 입맛을 단번에 되찾아줬다. 김지호 인턴기자
◆막내아들 “몸이 편찮으신 부모님이 걱정됩니다”

오이냉국수를 먹다 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밀린 주문과 함께 어느샌가 아들이 식당 일을 거들고 있었다. 1남 3녀 중 막내인 20대 아들은 몸이 편찮으신 부모님이 걱정인 듯했다. 노부부는 24년 동안 장사를 하고 있다. 아들은 노량진에서 자랐다고 한다. 평소 식당은 두 어르신이 운영하지만, 이날은 아버지가 병원에 갔다. 오후 4시가 돼야 돌아온다고 한다.

노부부 역시 다른 자영업자처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동안 장사가 잘 안돼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사장님은 “코로나19 때 손님이 없어 홀이 텅텅 비어있었다”며 “손님이 많은 지금과 다르게 손님이 적어 테이블에서 졸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일 때 배달앱 업체가 입점을 권유했다. 업체 직원이 식당을 직접 찾아와 입점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그렇게 배달앱에 입점했다. 노부부는 지금도 앱이 뭔지 잘 모른다. 필요할 때면 손님으로 식당을 찾은 학생들에게 물어보거나 자식들에게 물어본다고 한다.

아들은 “장사가 잘돼서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기분이 좋다”면서 “그럼에도 연세가 많으시고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걱정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또 그는 “화제가 되기 전에 부모님이 배달앱 댓글을 보고 상처를 받으시곤 했다”고 했다.

아들은 “온라인상에서 주문이 밀리는 것을 보고 ‘준비가 안 됐으면 장사를 하지 말아라’고 올라온 댓글이 가장 상처였다”며 “물론 저도 그렇고 소비자 관점에서 생각해봐도 이해는 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아도 부모님께는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며 “부모님께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식사를 마친 후 사장님께 명함을 드리며 식당 모습과 사연을 기사로 소개할 수 있을지 여쭸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자여서 다 말하면 안 된다”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런저런 얘기를 더 해줬다. 한사코 음식값을 받지 않으시려 한 사장님께 떠넘기듯 돈을 드렸다. 가게를 나서자 사장님은 “심부름해줘서 고마웠다”며 밝은 얼굴로 배웅해줬다.

김지호 인턴기자 kimja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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