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의 값비싼 청구서…반복되는 비극 막을 대책은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안녕하십니까. 이광빈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이 풀어갈 이슈,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이번 장마. 잇따른 비극적인 소식에 많은 분들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을 겁니다.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됐는데요.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 지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인류가 초래한 지구온난화로 인상 기상 이변은 계속될 텐데요. 기상이변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재난 대응망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극단적인 기상 현실의 원인을 임하경 기자가 살펴보겠습니다.
['극한 호우' 일상 된 한반도…"기후변화 적응할 때" / 임하경 기자]
[기자]
마을 진입로가 불어난 물로 가득 찼습니다.
나무는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곳곳에 쓰러졌습니다.
하천 수위가 오르며 제방은 손쓸 새도 없이 무너졌고, 흙더미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올여름 장마는 강력했습니다.
지난달 25일부터 한 달간 전국에서 내린 비는 640mm를 넘어섰습니다.
같은 기간으로는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가장 많은 장맛비입니다.
남부지방도 690mm로 역대 1위, 중부지방은 570mm를 넘으며 역대 세 번째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충청과 호남, 영남 등에서는 강수량이 평년의 3배에 달했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의 원인으로는 '지구온난화'가 꼽힙니다.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비구름의 연료가 되는 수증기를 대기로 뿜어냈습니다.
<김해동 / 계명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뜨거운 바다에서 증발된 수증기가 중국 연안 쪽을 따라서 장마전선에서 끝부분으로 매우 맹렬하게 유입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가 우리나라 쪽에 아주 좁은 지역에 걸쳐서 응결돼서 집중적으로 내렸기 때문에 비가 상당히 많이 오고..."
올해는 성질이 다른 기단이 강하게 부딪치며 좁은 비구름 통로가 만들어졌는데, 그 사이로 수증기가 강처럼 들어와 좁은 지역에 강한 비를 집중적으로 뿌렸습니다.
이른바 '대기의 강'이 열린 건데, 과거보다 더 뜨거운 수증기가 정체전선으로 끝없이 밀려왔습니다.
집중호우를 만들기 좋은 조건이 갖춰진 겁니다.
<변영화 /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 "(대기 중) 수증기의 양이 지구온난화에 따라서 많이 증가하면서 비를 내릴 수 있는 환경들이 조성되는 것이고, 강수를 내리게 하는 대기의 흐름이 온난화에 따라서 바뀌고 있기 때문에 결국 집중호우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6월 15일부터 수도권에 극단적인 호우가 내리면 직접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에 72mm 이상이라는 '극한 호우'의 개념이 처음 사용된 건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서울 신대방동 일대에 첫 재난문자가 발송됐습니다.
이미 극한 호우는 우리의 일상이 된 겁니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변영화 /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 "우리가 적응의 수단이라는 건 조기경보 체계를 좀 더 확립하고 널리 활용하는 것이라든가, 홍수와 관련된 제방, 시설과 관련된 재난관리 기준이 강화되고 활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빠르게 진행 중인 기후변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선 선제적인 재난관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합뉴스TV 임하경입니다.
#극한호우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장마 #폭우
[이광빈 기자]
일주일 가까이 무섭게 쏟아진 비에 전국 곳곳에서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
폭우가 퍼부을 거란 예보에도 대응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재난 관리 체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화영 기자가 피해 상황을 다시 돌아보고, 재난 관리의 현주소를 짚어봤습니다.
[극한호우에 드러난 재난관리 허점…"실전 훈련 부족" / 이화영 기자]
[기자]
마을이 있던 자리는 원래 형태가 사라진 주택 잔해만 남았습니다.
한순간에 많은 비가 쏟아져 물을 가득 머금은 토양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천군 벌방리 주민(17일)> "창문으로 내다보니까 이게 난리고 이게 죽는 거구나 싶어가지고. 흙이 밀리고 문이 안 열리니까…"
이번 극한 호우로 곳곳에서 산사태가 벌어진 경북에선 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폭우가 예고됐지만 그에 따른 위험 상황을 앞서서 살피지 못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창삼 /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 "인명 피해의 원인은 대피를 못한 거예요. 기상청에선 과다할 만큼 예보를 했고요. 상황판단회의를 해서 우리 지자체의 취약 지구는 어디이고 어디가 가장 위험한지를 사전에 인지하고 대피를 했었어야 되는데…"
토양이 물을 머금고 있는 함수율은 포화 상태였고, 이런 최악의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단 겁니다.
산사태 대비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산림청은 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로 산사태 취약지역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1년에 1만8천개소에 대해 기초조사를 하고 있고, 지난 6월 말 기준 지정된 취약지역은 2만8,194곳에 이릅니다.
다만, 경북에서 산사태가 일어난 감천면 벌방리, 효자면 백석리 등 대부분이 취약지역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는 지역 사정을 아는 지자체가 산사태 유발 요인을 더 엄격하게 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창삼 /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 "임야 지역에서 형질 변경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과수원을 만들거나 할 때 대부분 그런 데이터베이스는 지자체가 가지고 있고 관리합니다. 그 지자체에선 산지 지역에서 일어났던 개발 행위들은 다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기본적 요인이 된다라는 걸 인지해야 됩니다."
충북 오송에서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하차도 참사 역시 인재라는 지적이 뒤따릅니다.
<방수용 / 충북 오송읍 주민(16일)> "전날부터 사고 당일까지 하늘에서 물을 퍼붓듯 비가 내렸습니다. 과거에도 화재로 인해서 교통통제를 (했듯) 했으면…"
인근 미호강이 범람해 물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이런 정보를 토대로 지자체와 경찰 등 유관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단 겁니다.
<정종수 / 숭실대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 "재난관리 체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습이 잘 안 된 거예요. 지휘, 통제 그다음에 협력, 그다음에 조정 그다음에 정보 그래서 이 정보가 제대로 들어와서 지휘 통제를 해야 되고…함께 이게 역할들을 해야 재난 관리를 잘할 수가 있는데…"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 사정을 아는 주민을 포함해 위험을 평가하고 무엇보다 책임자인 지자체장은 재난 관리를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종수 / 숭실대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 "위험평가를 각 지자체별로 전문가들이 해야 되는데 그 전문가들이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만 해선 안 된다는 거죠. 지역사회에 있는 분들이 같이 해야 돼요. 단체장이 적어도 당선되자마자 재난 분야를 가장 관심있게 보고 먼저 그 지역에 위험한 곳이 어디 있는지…"
참사를 막을 기회는 수차례 있었던 상황, 재난 관리를 뒤로 미루는 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참사는 계속될 거란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이화영입니다.
#극한_호우 #산사태 #침수 #재난관리
[코너 : 이광빈 기자]
매년 피해가 늘어가는 재난의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상식과 경험 밖의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음은 커져 왔는데, 매뉴얼 정비뿐만 아니라 투자에도 꿈 뜬 모습이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중부지방을 휩쓸고 간 폭우로 인해 발생한 반지하 참사 등을 계기로 극한 집중호우시 긴급재난문자 발송을 추진해왔는데요. 지난달 중순부터 수도권에는 발송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내년 5월에나 실시됩니다. 올해 수도권 외 지역에서도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더라면 호우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올해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 피해가 컸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을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기상이 변화무쌍해지고 극한 호우가 기습적으로 내리는 경우가 많으면서 기상청 예보의 중요성이 더 커졌는데요.
기상청 예보관 증원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기상청 본부와 전국 지방청에 예보관 1개조인 4명씩 늘리려는 계획도 실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예보를 위해서는 기상위성이 필요한데요. 기존 천리안위성 2A호를 대체할 천리안위성 5호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의 문턱도 넘지 못했습니다. 천리안위성 2A호가 수명이상으로 운영돼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다고 해도 2031년에나 발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발사 시점이 기존 계획에서 2년이나 늦춰지는 셈입니다.
폭우와 폭염에 노인층과 저소득층이 세대별, 계층별로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요. 정부가 실시하기로 한 취약계층 실태조사는 내년에 착수해 2025년에나 보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지자체별 실태조사는 2027년까지 진행돼 더 늦는데요. 실태조사 근거를 담은 법안은 제정 절차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극한 홍수에 대응하기 위해 저수지 치수 능력을 늘리기로 했는데요.
저수용량 500만t 이상 대규모 저수지 47곳만 2025년까지 사업을 완료하고 중·소규모 저수지 39곳은 올해 하반기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추진한다는 두루뭉술한 계획만 갖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극한 호우로 인한 피해로 사후 복구 중심인 재난관리체계를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홍수·산사태 경보 시스템 구축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인간이 고스란히 받는 상황입니다. 발 빠른 투자로 기후변화도 늦춰야 하는 한편,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대응도 신속히 해나가야 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시스템적 문제가 있는 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국회는 사후약방문식이지만 입법 대응에 나서왔습니다. 아쉬운 형국이지만 이번 재난 사태를 맞아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여야는 먼지만 쌓이던 하천법 개정안을 환노위 소위부터 신속히 논의해 지난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했습니다.
지방 하천 정비에 국가가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법입니다. '뒷북' 입법 논의가 이뤄지는 상황. 차승은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부랴부랴 입법 추진하는 국회…골프·막말 논란도 / 차승은 기자]
[기자]
이번 수해로 국민의힘은 하천법 개정안과 수계 관련법 개정안, 또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처리 등을 시급히 처리하겠다 밝혔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발의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외하면 각각 지난해 9월과 11월 발의된 후 오랜 기간 국회에 계류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중점적으로 추진한 도시침수 방지법과 하천법 개정안, 건축법 개정안도 모두 재작년과 작년 발의됐지만 마찬가지로 신속히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여름 장마철 폭우 직후 수해 방지 법안들을 줄줄이 발의했다가 관심이 떨어지면 법안을 외면하는 상황이 매년 반복돼 온 겁니다.
당시 발의된 법안들만이라도 처리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거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윤재옥 / 국민의힘 원내대표(지난 19일)> "국민의 안전을 위한 법안이 사실상 뒷방 신세였다면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이는 분명 국회의 책임이고 여야 모두의 책임입니다."
여야는 입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수해 방지와 피해 지원을 위해 머리를 맞댄 여야는 8월 임시국회가 끝나기 전까지 가능한 법안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할 계획입니다."
전국적인 집중호우 피해 속에서 정치권의 부적절한 언행은 올해도 수재민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 등지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5일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논란에 대한 홍 시장의 대응도 구설에 올랐습니다.
<홍준표 / 대구시장(지난 17일)> "괜히 그거 쓸 데 없이 트집 하나 잡았다고 벌떼처럼 덤빈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그것에 기죽고 잘못했다 하는 사람입니까."
비판이 커지자 국민의힘은 홍 시장 징계 논의를 시작했고, 홍 시장은 그제서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도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재난을 소재로 이용했다는 지적을 받고 사과했습니다.
<김의겸 / 더불어민주당 의원(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서 한 행동과 말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궁평 지하차도로 밀어넣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같은 당의 박정, 윤준병, 최기상 의원은 수해 중 베트남과 라오스로 해외 출장을 떠났다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조기 귀국했습니다.
특히 박정 의원은 수해 법안을 처리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더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연합뉴스TV 차승은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2년 전 뉴스프리즘 1회 방송부터 지난주 135회까지 방송 중 '이상기후' 주제로 방송한 횟수는 총 여섯차례입니다. 이상기후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기후변화의 시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후문제는 미래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기후문제는 미래가 아닌 현실로 점점 더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4일에 방송한 뉴스프리즘 '기후위기'편에서, 제가 했던 클로징 멘트가 생각납니다. "지구는 병들지 않고 인간에 의해 변화할 뿐이다. 아프게 될 것은 지구가 아니라 바로 인간이다." 지구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인간은 지금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변화된 지구가 폭염과 폭우 등 인간에게 비싼 청구서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지구는 앞으로도 더욱 비싼 청구서를 계속 보낼 것입니다.
내년에는 지구 온도가 더 높아져 지구 기록상 최악의 폭염이 올 수 있다고 최근 NASA 과학자들이 경고했습니다.
최근에는 멕시코 만류가 끊기면서 빠르면 2025년부터 격변이 일어날 거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화 '투모로우'는 해류 흐름이 바뀌면서 상반구에 빙하기가 온다는 재난 영화인데요. '투모로우'가 아니라 '투데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우리는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투자도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지구에 무임승차 해오던 시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재난관리시스템 #극한호우 #이상기후
PD 김선호 AD 허지수 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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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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