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자의 시선] 지방의회 무용론의 책임은 국회에 있다
[미디어오늘 김명래 경인일보 인천본사 기획취재팀장]
이런저런 자리에서 지역신문 기자라고 소개하면 '지방의회 무용론'을 종종 듣는다.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술자리 추태', '막말 파문' 등과 같은 기사를 접한 이들은 지방의회 수준이 크게 떨어져 있다고 판단하고 지방의회를 싸잡아 비난하곤 한다. 우리 동네 지방의원이 어느 정당 소속의 누구인지는 알지 못해도 지방의회가 형편없다고 말하기에 주저함을 갖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지방의회 이대론 안 된다'와 같은 기획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높은 빈도로 나오는 기사 양상을 보고 있자면 손해보험협회가 매년 연중 진행하는 보험사기 예방 캠페인이 떠오를 정도다.
지방의회는 늘 '사고' 발생 위험을 갖고 있는 집단으로 분류돼 있다. 실제 인천에서는 기초의회 의장의 수행기사 갑질, 기초의회 의원 전원의 외유성 해외 연수, 광역의원의 주민 설전 등이 논란이 됐다. 인천의 한 기초단체장이 최근 지역 법정 단체의 공식 행사장에 나와 “의원 열 명을 모시고 갈래, 돼지 열 마리를 끌고 갈래라고 하면 돼지 열 마리를 끌고 간다는 말이 있다“, “돼지 말고 의원이 돼라 하고 외쳐주십시오”라며 대놓고 비아냥댔다. 이렇게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방의회의 지위는 처참하게 하락했다.
지방의회가 욕 먹을 만하니 그런 게 아닌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고 생각한다. 시민, 유권자 중 지방의회 활동 내용과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태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자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하지만 현 정치 체계에서 주민 밀착형 대의 기구로 지방의회의 역할은 대체 불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동네 민원 처리에 지방의원 만한 적임자가 없다.
특히 홀몸 노인, 장애인, 이주민, 소상공인, 위기 청소년 등 이른바 취약계층에 대한 기초·광역 단체의 지원을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양평고속도로 노선으로 옥신각신하는 와중에도 구도심 빌라촌 골목 주차난을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공방 속 각자 입장은 달라도 당장 어시장 상인과 어민의 생계 걱정부터 해야 하는 게 지방의회다.
현재 지방의회는 이런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가. 이 지점에서 지방의회의 유용과 무용이 갈라지는데 후자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부정 평가의 주된 이유는 인물론에 있다. 지방의원으로서 자질이 떨어지고 역량이 부족한 이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지방의회의 정상화를 바라던 지방자치 전문가 집단 쪽에서조차 '답이 없다'는 부정론으로 기울고 있는데 그 원인은 중앙 정치에 철저하게 얽매인 공천 시스템에 있다.
지방의원이 의회 공식 발언에서 그 문제를 파고든 사례가 최근 경남도의회에서 있었다. 국민의힘 소속 허용복(양산6) 도의원은 지난 5월 제404회 경남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5분 발언에서 풀뿌리 지방자치 정착을 위한 공천혁명을 주장하며 “누구나 말하고 싶었지만, 결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던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간의 잘못된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회의원이 주민 대표인 지방의원을 마치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부하처럼 여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 대표인 지방의원조차도 공공연하게 국회의원 눈치를 보는 것이 바로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정계 입문 36년 경력의 허용복 도의원이 왜 이 시점에 '폭탄 발언'을 하게 됐는지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국회의원이 지방의원 공천권을 쥐고 흔드는 구조는 국내 어느 지역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현실이다.
공천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 밉보이면 공천을 기대조차 하지 못한다. 총선에서 표를 얼마나 몰아줬는지가 공천을 좌지우지한다. 그렇기에 '지방선거 때만 되면 실제 지역주민의 의사와 정책을 반영해야 할 인물보다는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기초·광역의회 선거에 나서게 된다. 주민을 대표할 자질, 역량이 현저하게 낮은 인물이 기초·광역의회에 입성했다면 그래서 지방의회 무용론이 더욱 강화됐다면 그 근본 책임은 국회에 물어야 한다.
내년 4월 22대 총선이 치러진다. 총선의 시계가 빨라질수록 지방의원은 고달프다. 현역 국회의원의 표밭 다지기에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지역구 행사에 유권자를 최대한 많이 끌어와야 인정받을 수 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방의회 의정활동보다 총선 준비가 우선돼야 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지방의회 회기 중 국회의원 지역구 방문이 예정돼 있다고 치자. 지방의원이 의정 활동을 이유로 국회의원 지역구 방문 행사에 불참할 수 있을까? 지역 기자로 일한 경험에 비춰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해 현직 광역의원과 식사 자리에서 정당 시·도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시·도당이 지방의원의 의정활동 지원 기능보다 현역 국회의원 동정을 알리는 일에 치우쳐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의 말처럼 중앙당 시·도당은 여의도 정치의 하부조직으로만 기능한다. 풀뿌리 지방자치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경인일보는 2009년 7월13일 '지방 권력 도구로 전락한 인천시의회'를 짚은 기사에서 “위에서는 아래에 '공천'을 주고 아래는 위에 '표'를 주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지방자치에 미래는 없다”고 썼다. 그 악순환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지방의원의 자질 개선과 역량 강화는 종속성을 버리고 독립성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데서 시작된다. 군·구의원,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은 위아래가 없는 대등한 관계다. 국회의원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서 지방자치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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