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섹션·함성' 무장한 서포터즈… K리그 흥행 주역으로
응원가·구호 직접 만들고 육성으로 함성
"서포터즈 열정 반해" 신규 팬 끌어들여
코로나 이후 열기 분출… 5000명 회원도
"과격성 자제, 다양한 응원 방식 품어야"
대규모 카드섹션과 형형색색 대형 깃발. K리그 경기장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모습들은 모두 서포터즈 작품이다. 1990년대 한국에 상륙한 서포터즈는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과 화려한 외양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도가 지나친 응원으로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서포터즈와 구단에선 최근 들어 과격한 응원 문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PC통신 계기로 자발적 서포터즈 결성
1990년대 중반 PC통신 보급과 함께 한국에서도 서포터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 중계를 시청한 젊은이들이 유럽의 서포터즈 문화를 접했고, 이들은 PC통신 하이텔 축구게시판에 모여 서포터즈 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축구장 응원은 구단에서 고용한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주도하고 있었다.
1996년부터 프로축구단을 응원하는 서포터즈들이 생겨났다. 이연주 KBS 스포츠예술과학원 스포츠융합과학부 부장교수는 "수원, 부천, 안양 등에서 개별 구단 서포터즈들이 처음 조직됐고, 이후 다른 구단 팬들도 경쟁적으로 서포터즈를 결성했다"고 설명했다. 1997년에는 국가대표팀의 서포터즈인 '붉은악마'가 탄생했다. 서포터즈가 응원을 주도하면서 치어리더는 점차 사라졌다. 서포터즈 규모는 K리그2 구단의 경우 대체로 수백 명 수준이지만, K리그1에선 5,000명 이상 회원을 보유한 구단도 있다.
서포터즈가 다른 스포츠 팬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발적 응원'이다. 구단 개입 없이 서포터즈 가운데 한 명인 '콜리더'가 응원을 이끌고, 90분 내내 일어서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육성으로 응원한다. 응원가나 구호도 서포터즈가 직접 만든다. 이달 22일 찾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도 서포터즈는 북소리만 듣고도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쳤다. FC서울 서포터 유지훈(29)씨는 "콜리더가 선창하는 소리가 안 들려도, 북소리 박자와 경기 상황을 알면 어떤 구호나 선수 이름을 외칠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포터즈는 대체로 홈구장 근처 창고에 악기와 깃발 등 응원용품을 보관하고, 원정 응원을 떠나는 경우 버스를 대절해 물품을 싣고 이동한다.
흥행 도우미 평가 속 폭력적 문화 도마
서포터즈의 화려한 응원은 프로축구 흥행에도 도움이 됐다. 대구FC 서포터 이현진(23)씨는 "서포터즈 모습이 유튜브 숏폼에 뜨면서 지인들이 축구장에 가면 재밌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FC서울 서포터 김주영(27)씨도 "경기장의 대규모 카드섹션을 보면 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축구장을 찾을 것을 권했다.
제주유나이티드 서포터로 활동 중인 '룡삼촌'(닉네임)은 우연히 경기장을 찾았다가 서포터즈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깜짝 놀라 축구단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7년 제주의 준우승이 확정되자,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뭣 때문에 저렇게 행복할까'라는 생각에 2018년 중반부터 축구장을 찾았고, 지금은 홈경기마다 꼬박꼬박 출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포터즈의 선을 넘은 응원전은 종종 '옥의 티'로 지적된다.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수단에게 욕설을 하고 구단 버스를 막거나, 상대 서포터즈에게 위협적인 행위를 표출하기도 한다. 송희경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는 "서포터즈도 12번째 선수인 만큼 예절 교육이 필요하다. 거친 행동은 대체로 성적이 안 좋을 때 나오기 때문에, 구단에서 서포터즈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포터즈도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인식하고 있다. 대전하나시티즌 서포터 김동욱(46)씨는 "일부 과격한 이들의 행동이 신규 팬 유입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원FC 서포터 곽재일(28)씨도 "폭력적 문화에 거부감이 생겨, K리그를 즐겨 본 지 한참 뒤에 서포터즈가 됐다"고 말했다.
"거친 응원 문화 바꿔야" 목소리도
거친 응원 문화를 바꿔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유지훈씨는 2020년 말 '호라이즌 서울'이라는 서포터즈 소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인 행태는 서포터즈 발전을 저해한다"며 "욕설과 폭력을 지양하고 다양한 응원 방식을 포용하기 위해 모임을 결성했다"고 밝혔다.
구단도 응원 강도가 상이한 팬들의 이질감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를 고용한 구단이 많아졌는데, 이들은 서포터즈와 신규 팬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전광판에는 간간히 서포터즈가 외치는 구호가 띄워졌고, 장내 아나운서가 모두 함께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유지훈씨는 "서포터즈는 이미 알고 있는 구호지만, 처음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전광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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