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춤·노래에 반한 10개국 수강생 “K팝은 영감의 원천” [세계는 지금]

박영준 2023. 7. 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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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K팝 아카데미' 가보니
1971년생에서 2011년생까지 40년 터울
보컬·댄스 강좌에 50명 3주 수강 신청
미국인에 동남아·유럽·남미 등 국적도 다양
'25% 코리언' 도어 "K팝은 긍정의 에너지"
미국인 크리스필드 "아시아인 이미지도 바꿔"
2022년 수강생 엔비, 한국 걸그룹 멤버 데뷔도

“안녕하세요. 한국어를 잘 못 해서 미안해요. 저는 샤이니의 팬이고, 샤이니 노래를 부를게요. ‘누난 너무 예뻐∼.’”

미국 워싱턴의 대사관 거리 매사추세츠애비뉴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24일(현지시간) ‘2023 K팝 아카데미’ 첫 수업이 열렸다. 보컬 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하고, 좋아하는 노래 몇 소절을 불렀다. 대부분이 이날 처음 만난 사이라 목소리는 떨렸고, 서로 박수를 쳐주고,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문화원 지하 1층 댄스 강좌에서는 앞으로 3주 동안 배울 안무곡을 선정하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트와이스, 뉴진스, 르세라핌 등 K팝 가수들의 이름과 노래 제목이 나올 때마다 수강생들이 손뼉을 치고 호들갑을 떨었다. K팝 그룹 이름을 듣고는 눈을 맞추고, 춤동작을 따라 했다.
강좌를 맡은 고영원 안무가가 “이 가수는 최근에 데뷔해 여러분이 모를 수도 있는데 춤이 정말 좋다”며 ‘키스오브라이프’라는 K팝 그룹 이름을 말하자 가장 큰 환호성이 나왔다. 고 안무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샤이니의 노래를 부른 리디아 그루버(32)는 메릴랜드주 한 초등학교에서 현악기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루버는 “샤이니가 도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제가 꿈을 추구하고 인생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강좌를 통해 한국 문화를 더 많이 알고 싶다”면서 “방학이 끝나면 학교에 한국인 학생들에게 제가 여름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해줄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 한국문화원이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K팝아카데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강좌와 온·오프라인 강좌를 병행하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오프라인 강좌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전에는 수강 신청자가 많아 경쟁률이 4대 1에 가까웠던 것이 사태를 겪으며 신청자 수가 줄었다. 이번 강좌에는 약 90명이 신청했고, 보컬 강좌에 21명, 댄스 강좌에 29명이 선정됐다.
50명의 국적은 미국, 인도, 베트남, 베네수엘라, 싱가포르, 엘살바도르, 몰도바, 이란, 온두라스, 한국까지 10개국. 나이가 가장 많은 학생은 1971년생 미국인 테레사 해리스로 이날은 가수 태연의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고, 최연소 참가자는 2011년생 한국계 미국인 아이린 박으로 K팝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참가 신청을 했다고 소개했다.
K팝 아카데미에 모인 학생들은 국적과 인종, 나이, 생김새, 각자 좋아하는 K팝 가수 종류만큼 사연이 다양했다.

내년에 명문 조지타운대에 입학할 예정이라는 소피아 도어(18)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며 자신을 ‘25% 코리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플라토닉 사랑에 대한 노랫말과 멋진 춤, 무엇보다 K팝이 가진 긍정적 에너지에 반했다”면서 “조지타운대 K팝 댄스 동아리 오디션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일본인 아버지와 싱가포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한 리오 오니시(14)는 발레를 전공하다 K팝 댄스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리오는 “백인 위주의 학교에서 커뮤니티를 찾기가 어려웠다”면서 “K팝 댄스 동아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유대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4살 때 미국에 이민 온 한국계 미국인 수영 크리스필드(47)는 메릴랜드주 초등학교 음악 교사로 코로나19 당시 학생들에게 K팝을 소개했다고 했다. 그는 “2021년 대면 수업이 시작됐지만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고, 악기도 연주할 수 없었다”면서 “BTS의 ‘Permission to Dance’라는 노래로 율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필드는 “6피트(약 183㎝) 사회적 거리를 두고 할 수 있는 단순한 동작에 노래는 평화와 기쁨 등을 담은 긍정적인 내용이었다”면서 “11년간의 교사 생활 동안 아이들이 그보다 더 좋아한 순간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는 아시아인들이 코로나19를 퍼뜨렸다고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되던 시기였다”면서 “K팝을 소개하는 일은 아시아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었고 정말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지난 24일(현지시간) 열린 ‘2023 K팝 아카데미’ 댄스 강좌에서 학생들이 춤 연습을 하고 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K팝 아카데미는 최근 깜짝 놀랄 성과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아카데미에 참가했던 플로렌스 알레나 스미스가 최근 한국 걸그룹 블랙스완의 멤버 엔비로 데뷔했다. 이날 엔비가 걸그룹으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알리자 수강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지난해 엔비를 지도하고 올해 다시 보컬 강좌를 맡은 윤지예(지킹)씨(싱어송라이터)는 “이곳 수강생들이 K팝을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고 강조했다.

세계적 스타 BTS가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K팝에도 공백기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세계의 K팝 팬들이 그 인기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하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매니지먼트사 ‘밀크앤허니’의 설립자 루카스 켈러는 최근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K팝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에 대해 “K팝은 음악 역사상 가장 열성적인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순위 차트뿐 아니라 투어, 굿즈(기념상품), 관객을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정훈 워싱턴 한국문화원장은 “K팝 아카데미는 K팝이 세계와 소통하고 K팝 팬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성과를 내고 있다”며 “K팝과 관련한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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