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면서도 귀한 조기·명태·멸치의 기억

한겨레 2023. 7. 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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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진짜 생선 그득한 시장좌판에
어부·경매사 목소리로 시끌벅적
50년 전 풍성했던 바다 이야기
기후위기 탓 유물로 남을 역사
서울시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전시된 실제 조기와 생멸치. 좌판 사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큐레이터가 생선들을 설명하고 있다. 신지은 제공

올여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8월15일까지)은 ‘조명치’라는 알쏭달쏭한 세 글자 제목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제목만 들어서는 어떤 주제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이 제목의 정체는 조기·명태·멸치의 줄임말이다.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인 나라답게 바다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도 풍부하지만, 생선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전시는 이색적이다. 드라마 ‘악귀’나 웹툰 ‘신과 함께’, ‘쌍갑포차’ 등 신화나 무속을 다룬 미디어를 먼저 접한 이들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새로 탄생하는 ‘컨템퍼러리 민속’을 만나 볼 기회이기도 하다.

바다에서 식탁까지

전시는 생선맛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멸치국물과 조기구이, 명태찌개 같은 익숙한 음식 이야기를 펼치는 1부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먼저 맞이하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다. 요리연구가, 학자, 반찬가게와 칼국숫집 사장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짤막짤막하게 교차되는 영상이 생선 요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다.

이 전시는 형식 면에서도 특별하다. 팬데믹 이후 대부분의 전시는 사전예약제를 도입하거나, 입장 인원을 통제해 ‘조용한 고퀄리티 몰입’을 강조했다. 공공의 공간을 나 홀로 누리는 듯한 쾌감이 곧 만족의 기준이 된 이런 흐름을 ‘조명치’는 분명하게 역행한다. 상인, 경매사, 어부들의 노동요, 심지어 산란철을 맞은 조기의 울음까지 살아 있는 존재들이 살고자 내는 소리로 전시실 곳곳은 제각기 치열하다. 어느 지점에서는 이쪽저쪽의 소리가 겹쳐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을 계속 감각하는 것이 피로하지 않은 이유는 우선 그 내용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며 조기·명태·멸치를 먹어본 이들이라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90% 익숙한데 10% 새로워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다. 조기가 잘 잡히던 시절엔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연평도 ‘니나니 타령’의 가사를 읽으면, 어른이든 아이든 웃음을 터뜨린다. 웃고 난 뒤엔 그 당시 연평도에서 얼마나 많은 조기가 유통됐으면 그런 노래까지 만들어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인다. ‘아는 얼굴’ 같은 친숙함 덕에 전시실 안은 고요한 관조 대신 분주한 소통이 이어지는 공간이 된다.

소리로만 시끌벅적한 것이 아니다. 어시장과 항구 등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장소를 재현한 2부는 좌판 위에 진짜 생선이 그득그득 쌓여 있다. 약품 처리를 해 실제론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지만, 눈으로 보이는 생선살의 질감과 비늘 빛은 실제 그대로다. 좌판 사이에는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빨간 방수 앞치마를 입고 나와 생선들을 설명하는 영상이 나온다. 생선을 나르는 나무 궤짝을 쌓아 만든 문을 지나면 등허리를 줄줄이 묶은 굴비 두름과, 강원도 덕장을 옮겨다놓은 것처럼 코를 꿰어 주렁주렁 매단 명태 수십마리가 외국인 관람객들의 발을 묶는다. 그리고 바다 밑처럼 푸른빛으로 채워진 3부 전시실에서는 어업과 바다,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렇게 생선을 먹는 사람들부터, 가공하고 판매하는 사람들, 잡는 사람들, 그리고 그 생선이 온 바다로 전개되는 구성은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려온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도착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생생한 것이 있다. 흑백사진 속,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명태 그물을 따는 여성처럼 더 좋은 삶을 누려보고 싶었던 마음과 노력의 기억들이다. 옛 사람들의 삶, 그리고 같은 터전에서 이어지는 지금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전시는 ‘사람 사는 모양을 기억하는 것이 민속인가 보다’ 하는 부드러운 이해로 사람들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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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 재현된 강원도 명태 덕장. 신지은 제공

조기·명태는 수입산이 현실

19세기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남긴 이규경은 명태를 가리켜 ‘흔한 것이면서 귀하게 쓰인다’고 했다. 북어포는 육포나 굴비를 장만하기 어려운 이들도 제사상의 격을 갖추게 해주는 저렴한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평민들은 북어포를 제사와 굿, 고사에 두루 올리는가 하면, 공간에 들어오는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으로도 썼다. 유교식 의례나 무속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전시 1부에서 바싹 마른 몸통에 명주실타래를 감은 액막이 북어를 바라보면 이걸 마련해 놓고 편안해졌을 사람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전시에선 고기잡이 모습을 담은 김홍도의 풍속화와 근현대 자료가 같은 반열로 소개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화재이고 무엇이 그냥 오래된 물건일까? 우리 바다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마지막 공간을 둘러보면 질문은 어느새 조금 다른 예감으로 바뀐다. 시간이 아주 조금만 더 흘러도 이 전시에 나온 자료 전부가 유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해에 조기가 북상하면 연평도에 수백척의 어선이, 또 수백척의 상선이 뒤따르며 장관을 연출하던 2부의 풍경은 50년 전의 것이다. 그 풍요가 사라진 지금, 다시 50년 뒤의 우리 바다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조기와 명태는 식탁 위에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우리 바다에선 잡히지 않아 수입에 의존한 지 오래다. 멸치는 아직 조업이 이어지지만, 비늘과 기름이 튀는 고된 작업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여유가 있다면 전시를 다시 거꾸로 돌아 나오며 한번 더 한식 속의 ‘조명치’를 마주하는 것도 좋다. 외국산 식재료와 외국인 노동력에 깊숙이 기대어 있으면서도, 기댄 줄도 모른 채로 유지하고 있는 ‘한국인의 밥상’을 과연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우리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땅에서도, 삶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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