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선언·북-미 관계 정상화…대반전 ‘희망의 상상’
미, ‘적대적 진영화’ 정책서 선회
전작권 환수·군사적 신뢰 구축도
‘정전 100주년’ 기념식 없기를
2023년 7월27일은 정전협정 70돌이 되는 날이었다. 2053년이면 100년이다. 정녕 한국전쟁은 또 하나의 ‘100년 전쟁’으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인가. 그해 7월, 여전히 남한은 ‘정전 100주년’을 기념하고 북한은 폭염 속에서 ‘전승절’ 열병식을 벌이고 있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선선한 날 판문점에 남북이 함께 모여 ‘종전 평화의 날’을 경축하느라 북새통을 이뤘으면 좋겠다. 그즈음에 ‘지난 30년의 대반전’을 돌아보는 상상을 해본다.
뒤늦은 ‘제네바 합의’ 이행만으로도
핵전쟁 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한반도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마저 흔들릴 때, 문제의 본질은 핵무기 자체에 있지 않다는 집단적 인식이 형성됐다. 핵무기는 정전체제와 강대국 정치와 남북 대결의 결과이지, 그것들을 유지·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이어 세번째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적 깨달음은 점진적이었지만 정책의 변화는 ‘문득’이라 할 만했다. 옛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평화’의 길로 그렇게 들어섰다. 비핵화를 평화의 전제로 삼는 정책이 평화가 비핵화를 이끄는 정책으로 반전된 것이다. 물론 궁극적인 비핵화 목표는 유지된다. 서두른다면 그것은 평화의 ‘부수적 이득’을 좀 일찍 실현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평화체제 수립의 첫 단추인 종전 선언은 남북한 정상들이 만나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종전 선언의 주체, 기존 남북 합의를 통한 사실상의 종전 선언 실효성 등의 논란을 일거에 잠재웠다. 북한과 미국은 여전히 ‘전쟁 중’이지만 일단 남북한 동족 간의 전쟁은 끝낸 것이다.
다음 단계인 평화협정은 한국의 헌법까지 손대야 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지만, 역시 단순하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됐다. 전쟁에 참여한 4개국 관계를 보니 유일하게 남은 과제가 북한과 미국 간의 적대 관계 청산이었다. 양자 간의 수교는 당연히 종전과 평화에 관한 합의를 전제하므로 공식적인 평화협정을 대체할 수 있었다. 정식 수교를 위한 협상은 마무리 단계이고, 평양과 워싱턴에는 이미 연락사무소가 설치돼 사실상의 대사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이미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됐다. 북-미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 노력 역시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이었다.
‘대반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대북 정책이 유연해진 것이다. 세계를 두 쪽으로 갈라놓을 듯했던 미국의 소위 ‘디커플링 정책’은 중국을 세계경제에서 고립시키는 것뿐 아니라 적대적 진영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초기 단계부터 미국의 군수자본 이외 다른 거대 자본의 적극적 지지를 받지 못했고, 진영화의 반작용은 중국을 오히려 더 키워줬다. 이후 ‘디리스킹’으로 개명한 것은 내용적으로도 과거에 잘했던 경쟁과 협력의 배합 전략을 복원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이었다.
한국의 외교관들은 이 지점에서 미국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얻어냈다. 변화는 남북이 ‘자주적으로’ 평화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능동적으로 북한과 수교함으로써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더 큰 외교적·경제적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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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뒤에 쓰고픈 ‘새로운 과거’
한-미 동맹은 유지되고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가겠지만, 한국이 자신감을 자각하고 남북한 간 평화협력 관계가 공고해지면서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한국은 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본래 ‘합의’의 대상이 아닌 주권 문제였기에, 한국이 미국에 ‘통보’하고 시행했어야 할 일이다. 작통권 환수와 함께 연합사령부는 한국군 ‘합동사령부’로 대체됐다. 연합사의 미군은 소규모 연락단을 남기고 주한미군사령부로 복귀했다.
유엔군사령부 역시 잠시 일본으로 옮겼다가 주일미군사령부로 통합됐다. 본래 유엔과 공식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미군’ 사령부였기에 자연스럽게 ‘정상화’한 것이다. 비무장지대의 관할권은 남북한이 각각 남쪽과 북쪽에 대해 행사한다. 정전협정에 의거한 군대의 권한보다 국가의 주권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원칙이 적용된 결과다.
이렇게 한반도의 남쪽에는 한국군 합동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라는 두개의 ‘전구급’ 사령부가 상호 협조를 통해 평화 유지와 위기관리 임무를 수행하는 군사지휘체계가 만들어졌다. 대규모 연합 기동훈련과 미군 전략자산 전개는 없어졌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각각 필요한 최소한의 훈련을 공개적으로 실시하고, 사후 평가만 함께 한다. 요컨대 한-미 동맹의 중심축이 전쟁에서 평화로, 군사에서 경제로, 한반도에서 범지구적 문제에 대한 협력으로 이동한 것이다. 미국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고 군사 대비 태세를 흩트리지 않으면서, 이 모든 과정을 빠르고 부드럽게 추진하기 위해 기울인 한국 정부와 군과 외교관들의 노력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대반전은 남북 군사 관계가 ‘협력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군사적 접촉과 교류를 넘어 협력까지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남북 정상이 종전 선언을 발표하기 전에 이미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되어 군사적 신뢰가 형성되고 있었다. 1992년 ‘기본합의서’와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가 실행된 것이다. 남북이 각각 자신의 동맹국들과 군사 대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관한 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가장 중요한 협의체로 ‘등극’했다.
상시적 군사 교류와 협력을 위한 ‘무관연락실’도 서울과 평양에 설치됐다. 남한 국방대학교와 북한 김일성종합군사대학 간의 학생 교류, 남북 군사훈련 교차 참관, 남북 육해공군 공동정찰 지원 업무 등으로 바쁘다. 제도화된 작전적 협력은 탐색과 구조, 재해·재난 지원, 국외 인도적·평화적 지원을 위한 파병 등 제한적인 군사 임무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남북군사협력본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향후 통일 과정에서 남북연합 단계에 들어선다면 각자의 지휘 체계를 유지하면서 별도의 ‘남북연합작전사령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정전 70주년’으로 돌아오자. ‘소망적 상상’은 공상이고 망상인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오랫동안 꿈꿔온 미래였다. 30년 후에 쓰고 싶은 새로운 과거이기도 하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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