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생계형 교사만 남아"···폭염에도 3만명 모여 생존권 외친 교사들

정유민 기자 2023. 7. 2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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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도에도 전국에서 교사 3만명 모여
특정 정치색 없는 자발적 집회
"이러다간 생계형 교사만 남아"
"설리번 선생님도 아동학대되는 나라"
교대생·교대 교수들도 집회 참여
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서 교사들이 고인이 된 서이초 담임교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나는 어제의 당신이고, 나는 오늘의 당신이고, 나는 내일의 당신입니다. 나는 당신입니다.”

체감 온도가 35도가 넘는 29일 오후 2시, 전국 교사 3만 명(주최 추산)이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 일대에 모여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지난 22일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에 이어 교사 20명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집회로 오후 2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다. 주최 측 자원봉사자들은 인근 지하철 역사 내에서부터 집회 장소로 향하는 길목마다 서서 집회 참여자들에게 검은 리본 배지와 얼음물을 나눠주며 질서 유지를 위해 나섰다. 비수도권 교사들도 버스 45대를 대절해 경기, 강원, 경남 등에서 서울정부청사 일대로 모였다. 주최 측은 이번 집회가 특정 정치색이 없는 자발적 집회임을 집회 내내 강조했다.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 차림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은 지난 22일에 이어 묵념과 추모 영상으로 집회를 시작했다. 현장에는 숙연함과 분노가 공존했다. 서이초 교사 추모 영상이 상영되자 곳곳에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 극단적 선택이 남 일 같지 않다며 눈물을 훔쳤다. 연단에 올라 시 낭독에 나선 한 교사는 “올해만 넘기자는 무사 안일주의가 만든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며 “이러다간 생계형 교사만 남게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모인 교사들은 한 목소리로 교육 환경 개선과 교사들의 교육권 보장을 촉구했다. “아동학대 처벌법을 개정하라!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라! 정상적인 교육환경 조성하라!”는 구호를 목이 쉴 정도로 수차례 외쳤다. 모두 발언에 나선 A 교사는 “교권을 확립하겠다는 것은 교사,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벽을 세우겠다는 말이 아니다”라며 “아수라장이 돼버린 지금의 교육 현장을 바로잡기 위해선 교육의 3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소리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교사들은 아동학대 처벌법이 정당한 교육과 지도를 위축시킨다며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육계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교육계가 내놓은 △교원 연수 △고학년 중심의 협의회 등을 포함한 교권 확립 대책이 소개되자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연단에 선 7년차 교사는 “어느 공문에나 다 들어가는 뻔한 내용을 ctrl c, ctrl v 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29일 오후 광화문 일대에서 교사들이 ‘교사의 교육권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유민 기자

자유 발언에 나선 교사들은 눈물과 땀을 동시에 흘리며 교육 현장 일선에서 겪는 고충을 생생히 전했다. MBC PD 수첩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편의 광주광역시 21년 차 최 모 교사는 연단에 올라 “정당한 지도가 아동 학대로 몰려 민형사 소송에 얽혀 급기야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민형사 소송이 기각되고 축하받던 그날, 20년 후배 교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공론화시키고 맞서 싸워온 저의 일 년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황망함,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허무함에 사로잡혔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9년차 특수교사 B 씨는 “맞는 것이 특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이어 “설리번 선생님이 요즘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아동학대로 검찰에 넘어가 헬렌켈러라는 위인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며 “아동학대법 앞에 특수교사는 예비 범법자가 된다”고 호소했다. 최근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 발달장애 아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지난해 9월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 온라인 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예비 교사와 예비 교사를 지도하는 교수들도 이날 집회에 참여해 지금의 교육 현장이 비정상적이라며 교사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경인교대 재학생 이도현씨는 “예비교사로서 추모현장에 다녀와서 수많은 곳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며 “지금의 교실은 임용을 준비하며 꿈꾸던 교실이 아닌 악성민원에 시달려 생존을 위협받는 교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교수 102인 성명서를 발표한 서울교대 교수들도 함께 연단에 올라 △서이초 교사 죽음 진상 규명 △비정상적 민원을 교육 활동 침해 행위로 규정 △교육정상화를 위한 법안 제·개정을 요구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을 가득 메웠다. 연합뉴스

집회 말미 교사들은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는 구호를 연달아 외쳤다. 집회 진행자는 “아주 당연하지만 외치고 싶었던 문장”이라며 먹먹히 말하며 구호 제창을 독려했다. 이어 교사들은 어린이 동요 '꿈꾸지 않으면'을 함께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동요가 흘러나오자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노랫말과 좌우로 흔들리는 피켓이 정부청사 앞 도로를 가득 메웠다.

한편, 이날 집회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여하면서 집회 종료 시에는 인근 경복궁역이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

/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 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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