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6천억 HMM 매각…필요한 건 ‘적절한’ 주가 하락?
1조6800억 영구채 향방 관심
산은, 주식전환 가능성 비쳐
전량 전환되면 모두 4억주
주가 떨어져야 매각가도 줄어
에이치엠엠(HMM·옛 현대상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지난 20일 매각 공고를 내면서 에이치엠엠 민영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3월 말 경영권 매각자문사 선정 공고를 낼 때 산은은 올해 안에 매각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는데 당시 공고에서 제시한 자문사 수행 업무 중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주식 관련 채권의 처리 방안을 포함한 여러가지 매각안에 대한 검토 및 최적안 제시”.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경영권 매각은 대주주가 보유한 기존 지분(구주)을 거래하는 것이다. 상장기업이라면 현재 주가에 적절한 경영권 프리미엄만 고려하면 된다. 그러나 에이치엠엠은 사정이 좀 달랐다. 산은과 해진공은 에이치엠엠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2조6800억원어치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매각 자문사에 요구한 것은 이 채권 중 얼마를 주식으로 전환해 구주와 함께 매각하는 게 최적인지 제시하라는 이야기였다. 발행 주식 수가 증가하면 주가는 떨어진다. 매각 주식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 인수대금 부담이 커지면 매각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매각 공고에 시장과 에이치엠엠 주주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단계적 전환 ‘방침’, 주가엔 악재
지난 20일 공개된 매각구조에 따르면 채권 중 1조원어치가 주식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전환가격이 5000원이므로 주식 수로는 2억주에 이른다. 남은 1조6800억원 채권은 어떻게 처리될까. 매각 공고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없지만 산은은 같은 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잔여채권 처리 방향을 언급했다.
“에이치엠엠의 상환권 행사에 따라 단계적으로 전환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전환 주식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인수자와 협의하에 처리할 예정이다.”
주식전환 여부를 아직은 모른다는 의미로 언뜻 해석된다. 그런데 잘 뜯어보면 주식전환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여러 언론매체도 이에 대해 “주식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라거나 “기본적으로는 주식전환 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에이치엠엠 주가는 매각 공고 이후 하락하고 있다. 1조원 주식전환 결정도 영향을 줬겠지만 잔여채권에 대한 언급도 꽤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왜 보도자료에서 구태여 잔여채권 주식전환 의사를 내비쳤을까.
현재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에이치엠엠 채권은 이른바 ‘신종자본증권’이다. 흔히 ‘영구채’라고도 부르는데, 대개 만기가 30년이다. 만기 때 발행 회사의 의사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원금상환 의무가 없다.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영구채는 사실상 만기 2~5년짜리 회사채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구채에는 ‘스텝업 금리’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발행으로부터 5년이 경과한 시점이 되면 금리를 올리는 내용이 계약에 담긴다. 한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후 1~2년 단위로 금리는 조금씩 상향 조정된다. 금리 부담을 피하기 위해 발행 회사는 스텝업이 도래하면 조기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조기상환은 일종의 시장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에이치엠엠 영구채 2조6800억원 가운데 1조원 규모의 조기상환 시점은 오는 10월이다. 문제는 에이치엠엠 채권이 일반 영구채가 아니라 영구 전환사채 또는 영구 신주인수권부사채라는 점이다. 사채권자는 주가 수준을 봐가며 사채 원금을 상환받지 않고 주식전환(신주 발행)을 요구할 수 있다.
매각 공고 시점에 에이치엠엠 주가는 2만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반면 에이치엠엠이 대규모 적자로 유동성 위기를 겪던 2018년 10월~2020년 4월 영구채 발행(192~197회) 때 정해놓은 주식전환 가격은 5000원이다. 산은은 시장에서 2만원에 거래되는 상품을 5000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주주들은 영구채의 대량 주식전환이 주가 급락을 불러온다며 조기 상환을 요구해왔다. 에이치엠엠에 충분한 상환 여력이 있기도 하다. 이 회사 현금은 2020년 말 1조1563억원에 불과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기타유동금융자산’(단기금융상품)을 더한 수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대미문의 해운업 호황을 맞은 뒤인 2022년 말 현금은 11조9400억원,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는 12조2400억원까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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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구주(약 2억주)에 전환신주 2억주를 더하면 매각 물량은 4억주다. 매각 공고 시점 주가(2만원)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단순 매각가치는 8조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한다면(20% 가정) 9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격에 에이치엠엠을 인수할 만한 국내 기업을 찾기는 어렵다. 해운 경기는 이미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타는 중이다. 제값으로 신속하게 매각해야 하는 산은 입장에서 입찰 무산은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영구채 1조원을 주식전환 하지 않으면 2억주에 대한 단순 매각대금은 4조원(주가 2만원 기준)이다. 1조원 조기상환까지 합하면 5조원 회수가 가능하다.
주식전환의 경우 에이치엠엠 주가 하락이 1만5000원선을 방어한다면 4억주 매각대금은 6조원이 된다. 산은은 이 수준을 최적의 시나리오로 봤을까? 산은은 보도자료에서 “잔여 영구채는 에이치엠엠의 상환권 행사에 따라 단계적으로 전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잔여분 1조6800억원 채권에 대한 에이치엠엠의 조기상환권 행사 가능 시점은 내년 5∼10월 9600억원, 2025년 4월 7200억원으로 분산되어 있다. 산은은 에이치엠엠의 상환권 행사를 봐가며 주식전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에이치엠엠은 때가 되면 상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산은이 잔여 영구채에 대해서도 주식전환을 하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으로 해석한다.
2조6800억원 영구채 전량을 주식전환 하면 5억3600만주가 된다. 현재 에이치엠엠 발행 주식 약 4억8900만주보다 많다. 미래의 단계적 전환이라 해도 당장의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매각 공고에 담을 수 없었던 잔여물량 주식전환 의사를 보도자료에 내비친 것은, 주가 유지보다는 ‘적절한’ 하락이 에이치엠엠 신속 매각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 아니겠냐고 시장은 의심한다. 산은은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뿐이라고 말하겠지만.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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