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에 대처하는 법 [편집인의 원픽]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벌어진 조선 사건은 평범한 시민들 일상이 이뤄지는 대낮에 자행됐다는 점에서, 한 남성을 공격하고도 멈추지 않고 다른 희생자를 찾아다녔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들에게, 그래서 피해자는 이유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묻지마 범죄’는 왜 빈번하게 벌어지는가. 다른 나라에서 종종 보도되는 ‘외로운 늑대’와 같은 과격한 개인의 극단적 범죄 현상의 전조인가. 이런 무책임한 범죄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나. ‘또 터진 ‘묻지마 범죄’ 시민들 불안’(7월24일자·조희연·이종민 기자) ‘성장 과정 강한 열등의식 누적, ‘또래 남성’ 범행 대상 삼았다’(7월25일자·조희연·박유빈·윤준호 기자) 기사는 이번 사건이 던진 사회적 의미를 짚었다.
“예전부터 너무 안 좋은 상황이었던 것 같다. 저는 그냥 쓸모없는 사람이다.”
조선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기자들 질문에 답한 말이다. ‘쓸모없는 사람’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우리 사회에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고, 자포자기 심정이 묻어난다. 경찰에서 진술했다는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범행 동기를 뒷받침한다. 세계일보 기자들이 취재한 전문가들이 또래 남성들에 대한 열등의식을 범죄의 주요 동인으로 분석한 배경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장 과정 중에서 자기와 같은 남성에 대해 강한 열등의식을 갖게 됐고, 열등의식을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조씨가 말했듯 ‘나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었는데 왜 난 안되지’라는 마음으로 자기와 비슷한 젊은 남성을 공격해서 자신과 똑같이 불행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회적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조씨처럼 흉기를 준비하고, 범행을 저지를 지역과 동선을 정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묻지마 범죄’라는 유형에 뭉뚱그려 포함시켜서는 실질적인 대책을 찾기 어렵다. “왜 또래 남성에 대한 분노가 발생했는 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그 트리거(총의 방아쇠를 뜻하는 사격 용어. 어떤 사건을 유발한 계기)를 찾아야”(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하는 이유다.
이런 유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범죄 형량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온다.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높은 형량으로 일벌백계하는 게 해법일까. 대부분 가해자들이 처벌을 염두에 두지않고 자신의 분노, 욕구를 폭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형량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이번 범죄를 저지른 조선의 경우 전과 17범이라는 점에서 교화 시스템의 문제를 들여다봐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본지 칼럼을 통해 소년사법체계의 부실과 교육 부재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조선처럼)소년 사건을 반복하는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특단의 개입을 해야하는데 현재 소년사법체계 예산은 법무부 예산중 가장 적다. 법원도 소년부를 따로 설치한 곳이 많지 않고, 경찰도 별다른 선도프로그램 없이 (사건을)종결 처리하는 게 태반이다. 그러다보니 십대를 전부 비행을 저지르고 경한 처분을 반복하면서 점점 반사회적인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고 썼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대개 어린 시절 가정해체로 인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착 실패를 겪는다는 점에서 가정 교육의 부재, 또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사회화 과정을 밟지 못하는 사회 교육의 부재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하늘에서 마음 편히 지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그대를 위해 기도할께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부디 천국에서 웃어요.” “안전한 대한민국을 꿈꾸겠습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는 포스트잇이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 무수히 붙었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국화 꽃다발과 음료수, 술병과 음식들. 이번 사건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 지, 국민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나도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와 공감이 깔려 있다. 사회적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정부가, 사회가, 언론이 찾아야할 해법은 아직 모호하고 원론적이다. 조선 사건이 그 답을 찾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희생된 청춘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사건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전문가들을 취재해보니 모든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주목한 점이 피해자들이 건장한 2030 남성들이었다는 점이다. 기존 ‘묻지마 범죄’는 여성이나 노인 등 가해자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젊은 남성을 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례적으로 젊은 남성들도 공포를 느낀 것 같다. 네이버 쇼핑에서 20~40대 남성 트렌드차트 1위에 호신용품이 올랐다. 다만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가 비뚤어진 형태로 굴절되는 모습도 발견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림역에서 한녀(한국여성) 20명 죽일 것이다’ ‘신림역 일대에서 여성을 강간·살인하겠다’ 같은 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왔다. ‘남성이 사망했으니 여성을 살인하겠다’ 식의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접하면서 (이들의)뿌리 깊은 여성 혐오를 느낄 수 있었고, 이번 사건 피해자가 젊은 ‘남성’이었다는 점이 얼마나 이례적이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만으로 ‘묻지마 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던데.
“저도 그 의견에 공감한다. 안상원 광운대 범죄학 박사의 말이 가장 설득력 있었는데 “묻지마 범죄자는 처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이번 사건을 묻지마 범죄 중에서도 ‘화풀이형 범죄’로 분류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조선 역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고, 범행을 은폐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길거리에 앉아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높은 형량으로 경고해봤자 범행을 막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차별적인 ‘묻지마 범죄’에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동기가 없는 범죄는 없다’는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묻지마 범죄’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범죄를 덮지 말고, 구체적인 범행동기를 파악해서 그 동기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법·제도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만큼 개인적 원인만 찾는다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하게 된다. 이번 사건도 조선 개인의 가정 환경, 인간관계 등에서 원인을 찾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과 전력을 감안할 때 교화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우리 사회가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는 어떤 건지 함께 진단하고 그에 맞춰 대책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림동 흉기 살해범 “나는 불행…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723508086
성장 과정 강한 열등의식 누적… ‘또래 남성’ 범행 대상 삼았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724514701
[이수정의사람연구] 근본으로 돌아가자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72451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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