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봐도 핑크인데, 파랑이라고?

2023. 7. 29. 11:5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시작은 전화 한 통.

알고 지내던 한 갤러리의 딜러의 전화였다.

박미나 작가는 다시 한 번 같은 시리즈를 시작한다.

"오렌지 색이라고 불리지만 오렌지라고 동의할 수 없는 오렌지 컬러가 있다. 우리는 컨센서스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대 유통시스템에 따라 인식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인간의 지식체계에도 도전하는 현대사회의 현실을 지적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아뜰리에 에르메스, 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시작은 전화 한 통. 알고 지내던 한 갤러리의 딜러의 전화였다. “선생님, 오렌지색 회화가 있나요?” 박미나 작가는 자신의 그림 중 오렌지색이 많은 작업이 한 점 있음을 떠올리고 “네 있어요”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질문. “가로인가요 세로인가요?” “세로입니다” “가로로 걸 면 안되나요?” “도상이 집인데, 그럼 집이 옆으로 누울텐데요” “아, 안되겠네요 선생님”

작가적 의지도, 작업 철학도, 작품이 탄생한 아이디어도 모두 ‘오렌지색 가로 그림’을 찾는 콜렉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현실세계가 이렇구나 하는 현타가 왔다고나 할까요?” 박미나 작가는 이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9종 색상(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 검정, 회색, 흰색)의 물감을 모두 모은 뒤, 일반적인 아파트의 가구와 천고를 고려해 도안화한 가구 위 색상을 스트라이프 형태로 칠한 작업을 선보였다. 2004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2023년. 박미나 작가는 다시 한 번 같은 시리즈를 시작한다. 방식은 같으나 그 사이 사회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수 백개에 불과하던 9종 색상의 물감은 1134개로 늘었다. 230센치였던 층고도 260센치로 높아져 작품 사이즈도 기존 227센치에서 257센치로 커졌다. 대량생산된 가구를 주로 썼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하이엔드 가구의 비중도 높아진 것도 차이다. 리서치가 기반이 된 그의 작업은 흥미롭게도 현실세계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로 ‘리얼리즘 회화’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이번 전시엔 옐로우 물감 234개와 옷장, 그린 물감 234개와 소파, 블루물감 202개와 침대, 레드물감 154개와 TV유닛, 바이올렛 물감 81개와 체어, 오렌지 물감 72개와 소파, 그레이물감 66개와 테이블, 블랙 물감 46개와 커피 테이블, 화이트 물감 45개와 오토만의 조합이 나왔다.

흥미로운 건, 스트라이프 형태로 배열된 색상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분명 블루 물감 계열인데, 202개 블루물감 중에는 핑크(Fuchsia blue dyna, Iridescent red blue, Iridescent violet blue)가 섞여있다. 그린물감 234개 중엔 옐로우(Dandelion green, Tree frog green), 블루(Bright aqua green, pearl green)도 끼어있다. 블랙 물감에 블루(Iridescent blue black)와 그레이(Iridescent black)마저 포함된 것을 보면 내가 아는 색상이 잘못 된 것인가 하는 의심마저 품게 된다.

“오렌지 색이라고 불리지만 오렌지라고 동의할 수 없는 오렌지 컬러가 있다. 우리는 컨센서스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대 유통시스템에 따라 인식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인간의 지식체계에도 도전하는 현대사회의 현실을 지적한다. 작업은 방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다. 제조사에서 나오는 컬러를 수집하고 레이블링해 정리한 시트는 ‘과잉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닿게 한다. 전시는 10월8일까지.

박미나 작가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