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야망 없는 토트넘, 남겨진 손흥민에 부담만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유럽 축구 여름 이적시장의 최대 화제는 EPL 토트넘 소속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의 이적 여부다. 케인은 3년 연속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이적설이 흘러나왔다. 올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이 토트넘과 치열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케인이 손흥민이 아닌 김민재의 팀 동료가 될 가능성이 대두된 것이다.
케인은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얼굴이다. 토트넘에서는 에이스의 상징인 10번을, 대표팀에서는 골잡이의 상징인 9번을 달고 있다. 2017년부터는 웨인 루니의 뒤를 이어 대표팀 주장까지 맡고 있다. 통산 득점 기록에서 EPL 역대 2위,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이미 1위다. 슈퍼스타의 이적 과정에 스포트라이트가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케인을 향한 언론의 관심은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케인, 獨 바이에른 뮌헨 이적 추진
케인의 이적설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2021년 여름부터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분위기가 다르다. 토트넘이 아닌 케인이 이적의 주도권을 쥔 상태다. 지난 두 번의 시즌이 지나며 이제 케인과 토트넘 사이의 계약은 1년만 남은 상태다. 케인은 재계약 협상을 수차례 거절한 상태다. 이대로면 토트넘은 내년 여름 FA(자유계약) 상태로 세계 최고의 공격수와 작별해야 한다. 보스만 룰까지 감안하면 케인은 2024년 1월 새로운 팀과 계약을 체결하고 6월에 떠날 수 있다.
이제 토트넘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올여름 이적료를 받고 케인을 다른 팀에 보내거나, 1년 더 활용하고 내년 여름 한 푼도 챙기지 못하고 보내는 것이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토트넘의 CEO 다니엘 레비 회장도 사면초가 상태다. 레비 회장은 선수의 이적 협상 때 마감 시한 직전까지 시간을 끄는 등 상대의 피를 말리는 심리전을 통해 원하는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엔 전 유럽에서 악명 높은 레비 회장도 뾰족한 수가 없다. 토트넘은 부랴부랴 EPL 최고 연봉(약 350억원)과 함께 케인에게 재계약을 제안했지만 선수의 의사는 단호한 거절이었다. 토트넘 구단주인 사업가 조 루이스도 레비 회장에게 케인이 재계약을 맺지 않는다면 이번 여름에 팔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수 측도 일찌감치 바이에른 뮌헨과 접촉을 시작했다. 바이에른은 2년 전 FC바르셀로나로 떠난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의 후계자로 케인을 원했다. 올여름 이미 주전 수비수 뤼카 에르난데스를 파리 생제르맹에 팔고 김민재를 데려왔다. 케인을 영입하기 위해 공격수 사디오 마네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나스르로 보내고 이적료를 마련할 계획이다. 케인은 진즉에 토마스 투헬 감독과 미팅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만삭인 그의 아내는 독일 현지로 가 거주할 집을 알아봤다고 독일의 유력지 '빌트'가 보도했다.
토트넘은 바이에른 측에 케인을 데려가려면 이적료 1억 파운드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상태다. 2년 전 맨시티가 케인 영입을 위해 제시했던 금액이 이제는 토트넘이 회수해야 할 목표가 됐다. 이적료의 가치를 결정하는 잔여 계약 기간과 선수의 나이 모두 감가상각이 발생한 탓이다. 바이에른은 6000만 파운드에서 협상을 시작, 최근 8000만 파운드까지 금액을 올렸다. 1억 파운드와 8000만 파운드 사이에서 마지막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년 동안 케인이 이적을 강하게 원한 이유는 토트넘에서는 우승 커리어를 추가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로 기억될 기록은 이미 대부분 수립했다. 이미 EPL 득점왕만 3회를 했고,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월드컵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런데 선수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한 게 한이다. 11세이던 2004년 토트넘 유스팀에 입단한 케인은 임대를 다녀온 10대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토트넘에서만 뛰었다. 토트넘과 재계약하면 팀의 레전드는 되겠지만, 우승이 없는 무관의 제왕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토트넘은 트로피와 거리가 먼 팀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마지막 우승은 2007~08 시즌 차지한 리그컵으로, 21세기에 챙긴 유일한 트로피이기도 하다. 2018~19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아쉬운 준우승에 그친 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우승 기회를 잡지 못했다. 맨시티, 맨유, 리버풀, 첼시, 아스널과 함께 EPL 빅6로 꼽히지만 최근 우승 기록이 가장 오래된 팀이다. 한동안 부진했던 맨유와 아스널도 최근 트로피를 차지, 토트넘 선수들과 팬들의 박탈감은 더 커졌다.
이는 손흥민이 마주한 현실이기도 하다. 2015년 여름부터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손흥민은 2021~22 시즌 EPL 득점왕에 오르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의 경력에도 우승은 없다. 2021년 7월 손흥민이 토트넘과 4년 재계약을 맺었을 때 성급했다는 평이 나온 이유도 그런 배경에서다.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등 자국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모두 우승 확률이 높은 팀들이 관심을 보이는데 단호하게 토트넘 잔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케인 없는 토트넘은 강등권 전력?
토트넘은 이미 야망이 없는 팀으로 분류된다. 지난 3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경질한 후 후임 감독을 찾았지만 루이스 엔리케, 율리안 나겔스만 등 유럽의 특급 지도자들은 토트넘행을 거절했다. 팀을 맡기 위해선 우승을 목표로 할 수 있는 이적 자금을 지원받아야 하는데 토트넘은 레비 회장이 늘 경영 수익을 위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 결국 토트넘은 유럽 리그 10위권인 스코틀랜드에서 셀틱을 이끌고 성과를 낸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영입했다. 타이틀 도전자가 아닌 가성비를 추구하는 팀 이미지를 굳힌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케인이 토트넘을 떠나면 손흥민은 최고의 파트너를 잃는다. '손케 듀오'로 불리는 토트넘의 공격 조합은 지난 8년간 EPL 최고의 콤비 플레이를 보여줬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지만 플레이메이커에 가까운 연계 능력을 지닌 케인, 상대 수비가 따라올 수 없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배후 침투를 맡는 손흥민은 이타적인 플레이로 서로를 도왔다. 2022~23 시즌까지 둘이 합작한 득점만 47골로 EPL 최다 기록이다. 기존에 첼시의 드로그바와 램파드가 기록한 36골을 훌쩍 넘어섰다. 2020~21 시즌에는 단일 시즌에만 14골을 합작해 이 부문도 최다 기록을 보유 중이다.
토트넘이 다른 EPL 빅6와 비교해 최근 선수 영입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에도 그나마 상위권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리그 최강의 원투 펀치를 전방에 세웠기 때문이다. 2020~21 시즌에는 케인이 23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손흥민은 17골로 득점 4위를 기록했다. 2021~22 시즌에는 반대로 손흥민이 23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케인이 17골로 4위가 됐다. 두 선수는 나란히 지난 7시즌 연속(케인은 9시즌 연속)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다. 위력적인 2명의 골잡이로 인해 상대 수비가 집중 마크 전략을 펼치지 못할 정도로 손흥민과 케인은 상호 의존적이었다. 그 막강한 듀오가 해체 위기에 놓인 것이다.
케인이 떠나면 지난 시즌 EPL에서 8위를 기록한 토트넘은 중하위권 전력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자칫 강등권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지난 시즌 케인은 리그에서만 30골을 기록했다. 팀이 기록한 득점(70골)의 43% 수준이다. 케인을 제외하고 두 자릿수 득점을 한 선수는 손흥민(10골)뿐이었다. 케인의 이적료로 선수 보강을 할 수 있지만, 토트넘은 벌어들인 이적료를 그대로 재투자한 사례가 거의 없다. 결국 남은 선수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 언론과 토트넘 팬덤은 주장인 위고 요리스가 기량 하락으로 주장 완장을 내놓아야 한다며, 케인이 우승 트로피를 찾아 작별한다면 팀의 주장을 손흥민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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