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축성장 노하우 나눠주고 끌어주고… “해외 수요 폭발” [심층기획-정책수출 최일선의 사람들]
4월까지 35개국 83개 프로젝트 참여
사업 디자인부터 재원조달까지 관여
참여 민간기업 수익만 8200억원 달해
최근 7년간 수주 사업 절반 교통 분야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 뉴욕·도쿄 제쳐
韓 ODA 재원비율 30개국 중 최하위권
지원 규모·참여 기업 확대 등 숙제로
협력단 인원은 단 8명이다. 해외사업 전문가 5명에 일반직 3명이 전부다. ‘미니 조직’이지만 업무 범위는 전 세계를 아우른다. 정책 수출의 최일선에 선 이들을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서울에서 검증된 인프라와 서비스를 배우려는 외국 도시들의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얻는 경제적 효과도 크다”고 입을 모았다.
정책 수출은 중앙·지방정부의 오랜 꿈이다. 서울국제개발협력단은 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서울의 도시정책을 공적개발원조(ODA) 발주사업을 통해 해외 도시에 공급하고 있다.
김건우 협력단 부장(단장 직무대행)은 “(우리 조직은) 서울시의 도시 운영 노하우와 우수 정책을 해외로 확산시키고, 확산 과정에서 사업을 추진하며 국내 민간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대상은 교통·도시철도, 상하수도, 스마트시티, 폐기물 처리, 전자정부 등 광범위하다.
그는 협력단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글로벌 도시문제 해결에 기여해 서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상적 효과만 있는 건 아니다. 정책 수출 과정에서 국내 민간기업의 해외 진출도 함께 이뤄진다. 지난 4월까지 컨설팅을 통해 35개국, 83개 프로젝트에 참여한 민간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8166억원에 달한다.
정책 수출은 물품 교역과 달리 바로 손에 잡히는 개념은 아니다. 그만큼 협력단의 역할도 광범위하다. 단순한 정책 공유로 끝나지 않는다. 수원국(受援國) 또는 수원도시와 함께 개발사업을 디자인하고, 재원을 조달하고, 정책이 현지 사정에 맞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과정이 협력단의 몫이다.
스마트시티 전문가인 박채화 책임은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나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국제기구의 재원을 활용해 사업을 추진한다”며 “사실 재원을 받는 쪽이 사업제안서(PCP)를 써야 하지만 이조차 어려운 일이기에 협력단 전문가들이 제안서 작업을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협력단은 2015년 서울시와 위탁계약을 맺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산하 조직으로 출범했다. 처음 이름은 서울시정책수출사업단이었으나 28일 열린 SH공사 이사회에서 서울국제개발협력단으로 국문 명칭을 변경했다.
협력단에 들어오는 ‘러브콜’은 끊이지 않는다. 초청 프로그램이나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개도국 공무원들이 서울의 삶을 체험한 후 정책 공유를 요청하기도 하고, ODA 재원을 가진 국제기구에서 수원국과 서울을 연결해 사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직원들의 정책 홍보 활동이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원세형 수석은 “서울은 압축성장을 일궜기에 1970∼80년대 도시개발 정책자료가 많이 남아있다”며 “정책을 추진하면서 단계별 난관을 어떻게 뛰어넘었는지, 그 과정에서 잘한 점과 못한 점이 무엇인지가 분명한 편”이라고 말했다. “후발 주자인 개도국 도시들은 서울이 잘한 점은 수용하되, 부정적 결과를 낳은 선택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책임은 “서울시 정책 중 상당 부분이 해마다 업데이트된다”며 “혁신적인 정책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홍보하기 좋고, 듣는 이들도 흥미롭게 수용한다”고 덧붙였다.
여러 정책 분야 가운데 서울이 가장 큰 비교우위를 점하는 분야는 교통이다. 서울교통정보시스템 토피스(TOPIS)와 BRT, 교통카드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2016∼2022년 SUSA가 수주한 사업의 48.5%, 금액 기준으로는 84.6%가 교통 관련 사업이었다. 교통 전문가인 김수진 수석은 “뉴욕·도쿄 등 대중교통이 발달한 해외 도시들조차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이 60% 미만인 반면, 서울은 약 70%”라며 “서울처럼 지하철과 버스가 모두 발달한 도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김 수석은 올해에만 아일랜드·세르비아·모로코·엘살바도르를 한 번씩, 필리핀은 두 차례 다녀왔다. 사업 발굴이나 현장 조사를 가거나 이미 사업화한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많아 동료들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을 정도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며 해외사업 절차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바뀌었지만 협력단의 해외사업 전문가들은 여전히 분기에 두 번 이상은 짐을 싸야 한다.
해외사업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다. 수원국 도시에서 장차관급 등 내빈 100여명을 초대해 국제 포럼을 개최했는데, 행사 시작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통역사들이 탄 비행기가 폭설로 결항된 아찔한 경험도 있다. 줌(ZOOM) 같은 업무용 화상회의 툴이 퍼지기 전의 일이다. 부랴부랴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다른 통역사들을 섭외해 무사히 포럼을 마쳤던 일화를 전하면서 이들은 “위기 대처 능력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때로는 위험한 상황도 맞닥뜨린다. 박 책임은 “한번은 수원국 도시에서 프로젝트 파트너와 식당 야외 테라스에 앉아 밥을 먹는데 차 한 대가 돌진해 오더라”며 “놀라서 도망쳤는데, 차 양쪽 문에 무장한 군인 열다섯 명이 달라붙어서 간신히 차를 세우더라. 알고 보니 총기를 가득 실은 테러 단체의 차였고, 첩보를 입수한 군이 매복해 있던 것”이라고 전했다.
협력단 해외사업 전문가들은 소위 ‘고스펙’ 인재들이다. 언어 능력, 정책 이해도, 실무 능력 등 어느 조직에 가든 환영받는 자질을 갖췄다. 모두 민간기업이나 연구소 등에서 ODA와 지속가능발전목표(SDG), 해외사업 경력을 쌓았다. 그럼에도 민간보다 낮은 급여를 감수하고 공공기관을 택했다.
네덜란드에서 성장해 SDG와 도시개발 경력을 거쳐 2018년 합류한 신동훈 책임은 “수익성에 대한 계산 외에도, 협력하고자 하는 도시를 폭넓게 진단하고 분석해 해당 도시에 진짜로 필요한 걸 고민하고 이에 맞는 기술·정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늦게나마 ODA에 힘 싣는 정부
지방정부 차원에서 ODA를 추진하며 겪는 어려움도 만만찮다. 중앙정부와 국제기구 등 외부 ODA 재원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한국의 ODA 규모 자체가 턱없이 작아서다. 국가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재원 비율을 따지면 지난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속한 31개국 중 28위로 최하위권이다. 협력단이 수주한 프로젝트로 해외에 진출할 민간기업 풀이 충분치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다행히 정부는 점차 ODA에 힘을 싣는 추세다. 지난달 정부는 내년 ODA 예산안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6조8421억원을 의결했다. 올해보다 2조650억원 는 액수다.
정부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경제적 지원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우크라이나 국회로부터 도시 인프라 재건사업 협력을 제안받았다. 이 콘퍼런스에서 신 책임은 인프라 구축과 우크라이나 시민의 삶 회복,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산업 클러스터 개발 등 통합적 재건 방안을 담은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시도 올해 상반기 국제개발개선계획 방침을 수립하고, 지난 1일부터 국제개발협력추진반을 신설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개발협력추진반이 정책적으로 ODA 사업을 기획하고, 협력단은 이를 이행한다. 나형선 시 국제개발협력추진반장은 “ODA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것 또한 시정 슬로건인 ‘약자와의 동행’ 기조에 맞춰 ‘글로벌 약자’와 동행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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