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최애’ 인형인데...노출증 콜걸이 모델이었다?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3. 7. 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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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32] 전 세계 아이들의 롤모델이었습니다. 금발의 파란 눈, 갸름한 얼굴형, 날씬한 몸매가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그녀’를 대놓고 추종했지요. 그녀의 이름은 한때 최고의 칭찬으로 통했습니다.

영화 ‘바비’의 한 장면. <사진 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과거 없는 사람 없다지만, 이 경우는 선을 넘었습니다. 모든 아이의 선망의 대상이 ‘콜걸’로부터 시작됐음이 밝혀지면서입니다. 뭇 남성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어 재끼던 가벼운 성품이었지요. 전 세계를 휩쓴 그 존재, 초통령의 원조 ‘바비’의 이야기입니다. 실화 영화 ‘바비’가 개봉한 지금, 그녀의 충격적(?) 과거를 돌아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2019년 바비 인형. <저작권자=Fake Royalty>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그 인형’
“여보, 우리 딸을 위한 인형 없을까.”

1956년 마텔사를 운영하던 루스 핸들러와 엘리엇 핸들러는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막내인 딸 바바라가 어떤 장난감에도 시큰둥했기 때문입니다. 가끔가다 성인 모양을 한 종이인형에만 흥미를 보였지요. 오빠 케네스는 로봇 장난감을 쥐여 주기만 하면 온종일 뛰어노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프라하 박물관에 소장된 ‘빌트 릴리’. <사진 출처=워드프레스>
가족끼리 스위스로 여행을 떠날 때였습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딸이 보이지를 않았지요. 멀리 뒤편을 보니 한 상점 유리창에 손을 대고는 뚫어질 듯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빛 끝에는 화장을 짙게 한 날라리처럼 보이는 인형이 그네에 앉아 있었지요. 부부는 서로 마주 본 뒤 외쳤습니다. “그래, 이거야.”

오랜 시간 갈망하던 딸의 장난감을 이국땅에서 찾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들처럼 딸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테지요. 부부는 즐거운 마음으로 상점에 들어가 돈을 건넸습니다. 딸의 표정은 어느 떄보다 행복함으로 가득했지요.

바비의 시작은 독일의 콜걸 캐릭터
“이거, 따님 선물로 주는 건가요?”

상점 주인이 이상한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엄마인 루스 핸들러를 잠깐 부르더니 나지막이 말했지요. “저건 성인용 인형이에요, 콜걸 여성이거든요. 아이 교육에 좋을 게 없단 말입니다. 조용히 딴 장난감으로 골라보세요.”

바비의 원조인 릴리를 소재로 한 독일 영화 ‘릴리-어 걸 프롬 빅 시티’ 포스터. <사진 출처=IMDB>
루스가 다시 인형을 바라봅니다. 어쩐지 날라리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콜걸 여성이었다니. 하지만 딸의 표정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지요. 마치 소울메이트를 찾은 얼굴이었습니다. 둘을 떼어놓는다는 건 로미오와 줄리엣을 갈라놓는 것만큼이나 힘들어 보였지요.

“저 인형의 과거만 모르게 하면 될 거야”라고 자신을 설득해봅니다. 상점을 나선 딸 바버라의 손에는 인형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빌트 릴리는 누구인가
인형의 이름은 ‘빌트 릴리’. 독일의 신문인 빌트에 연재되는 만화 속 여성 캐릭터를 구현한 것이었습니다. 만화 속에서 릴리는 금발의 포니테일을 한 콜걸 여성. 아름다웠지만 지성이 부족했고, 더구나 노출증 환자라고 부를 만큼 옷을 자주 벗었지요. 거리에서 비키니 복장으로 활보하기도 했습니다.
빌트 릴리의 원작 만화. 야한 옷을 입고 외설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
성인 만화가 선풍적인 화제를 부르면서 릴리의 인기도 치솟았습니다. 유럽 전역에 ‘빌트 릴리’ 인형이 팔려나갈 정도였지요. 물론 아동용은 아니었고, 짓궂은 성인 남성들이 주 고객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시로 인형의 치마를 들추곤 했었지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순한맛 ‘릴리’를 만들어볼까.”

장난감 회사 마텔사를 운영하던 핸들러 부부는 빌트 릴리로부터 시장성을 엿봤습니다. 비슷한 느낌을 구현하되, 외설성만 빼내면 성공하겠다 생각했던 것이지요.

바비 인형의 첫 의상 디자이너인 샬롯 존슨. <저작권자=Nelson Tiffany, Los Angeles Times>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 마텔사는 디자이너 잭 라이언을 고용해 성인 느낌의 인형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독일의 성인용 인형 ‘릴리’의 재탄생이었습니다. 포르노 배우에서 세련된 옆집 언니로의 변신이라고 할까요. 어린이들의 최애 ‘바비’의 탄생 뒤에는 금발의 콜걸 릴리가 있었던 셈입니다.
1959년 3월 9일 바비인형은 금발과 갈색머리로 첫선을 보였다. 원조인 릴리와 닮은 모습으로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959년 3월 9일은 마텔사에서 ‘바비’가 공식적으로 출시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름은 딸 바바라의 애칭인 바비에서 따왔지요. 바비의 남자친구인 켄은 아들 케네스의 애칭이었습니다.
전 세계적 대성공을 거둔 바비
바비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생산 첫해에만 35만개가 팔려나갔습니다. 마텔사가 바비 출시 4년만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지요. 그야말로 ‘바비’의 시대였습니다.
“딸 덕분에 돈 벌었어요.” 1961년 바비 인형과 사진 찍은 마텔 창업자 루스 핸들러.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큰 성공은 사달을 부르는 법입니다. ‘릴리’ 인형의 특허사가 마텔을 고소한 것이었지요. 자신들의 인형을 허가 없이 맘대로 베꼈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였습니다. 지루한 법정 싸움 끝에 마텔이 2만달러를 내고 빌트 릴리의 저작권을 사들였지요.
원조 인형인 릴리와 바비 인형. 성매매 여성을 연상시킬 정도로 자극적인 모습.
바비는 미국 문화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2006년에는 1초당 세 개의 바비가 팔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 해 150개 국가에서 10억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바비와 유사한 ‘미미’가 나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반대 여론도 많았습니다. “성차별을 조장한다”,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이다”는 비판이었습니다.
흑인 바비, 아시안 바비...혁신을 시작한 마텔
마텔사는 참 유연한 조직이었습니다. 올바른 비판이다 싶으면 수용하고 개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흑인 바비를 처음으로 내놓은 게 1980년이었지요. 지금은 모든 피부색의 바비를 만날 수가 있지요. 디즈니에서 흑인 인어공주를 선보인 것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비현실적 몸매로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수긍해 바비 인형의 허리둘레도 더 크게 만들었지요.
“바비가 백인이란 편견은 버려.” 1980년 첫선을 보인 블랙 바비. <저작권자=MSBHAVEN>
마텔은 또 한번의 혁신을 거듭합니다. 지난 4월 발표한 인형을 통해서였습니다. 뼈대가 짧고, 몸통이 길며 얼굴이 둥근 인형이었지요. 작은 귀와 납작한 콧등도 기존의 바비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인형의 이름은 ‘다운증후군 바비’였습니다.
다운증후군 모델로 유명한 영국의 엘리 골드스타인이 다운증후군 바비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 <사진 출처=BBC>
장애인도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걸 표현하고자 한 위대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영국의 다운증후군 모델 엘리 골드스타인은 “이 인형을 보고 압도당했다”면서 감동을 표현했지요.
영화에서도 바비의 혁신이 이어지기를
최근 실화영화 ‘바비’가 개봉했습니다. 할리우드 인기 배우 마고 로비가 주연이지요. 금발의 늘씬한 몸매는 바비의 원형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모두가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진 법이야.”영화 ‘바비’의 한 장면. 마고로비가 바비를, 라이언 고슬링이 남자친구 켄을 연기한다. <사진 출처=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바비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후속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바비 영화의 주인공은 다운증후군 바비면 어떨까요. 다운증후군 바비가 당당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영화를 상상해 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오랜시간 장애인에게 장막을 쳐 왔습니다.

<네줄요약>

ㅇ바비의 원조는 독일의 만화 캐릭터 빌트 릴리였다.

ㅇ릴리는 아무 곳에서나 옷을 벗는 노출증 캐릭터였다. 아이들의 최애 인형이 외설적인 캐릭터로부터 탄생한 셈이다.

ㅇ바비는 흑인, 다운증후군 등 다양성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혁신했다.

ㅇ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메시지다.

<참고문헌>

ㅇ거버 로빈, 바비와 루스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형과 그녀를 만든 여성의 이야기, 하퍼 콜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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