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에 주민 구하고 중고 거래로 시 예산도 아껴...‘젊은 피’ MZ 공무원 활약상
최근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로 일터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MZ 세대’ 공무원들의 활약상이 공직 사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업무 매뉴얼을 꼼꼼히 살펴 낭비되는 예산을 아끼거나 발로 뛰어 주민의 생명을 구하고, 새로운 행정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최근 저연차 공무원의 퇴사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들 ‘젊은 피’의 활약은 더욱 눈에 띈다. 본지가 서울시와 각 자치구 등에서 종횡무진 일하고 있는 MZ 공무원 4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북구청 세무2과의 윤승모(28) 주무관은 주민 224명을 일일이 찾아가 돈 1억2400만원을 돌려줬다.
윤 주무관이 돌려준 돈은 주민들이 냈던 지방세의 과·오납금이다. 이 돈은 납세자가 5년 안에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자동으로 지자체에 회수된다. 하지만 세금에 대한 정보에 어두운 고령자나 취약 계층은 환급금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환급 절차를 모르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윤 주무관은 작년 10~11월에 걸쳐 총 224명의 주민을 찾아가 환급 방법을 안내했다. 그는 “처음엔 전화 등으로 ‘돈을 돌려드리겠다’고 안내했지만, 오히려 ‘보이스피싱이 아니냐’며 의심하고 끊어버리는 주민이 많았다”며 “이런 경우 직접 찾아가 공무원증을 보여주며 안심시킨 뒤 설득하며 환급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윤 주무관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한 70대 주민 앞으로 환급금이 총 200만원이나 있었는데, 거주지가 명확치 않아 고심하다가 동네 통장에게까지 수소문해서 소재를 찾아내 돈을 돌려준 일도 있었다”며 “누군가에게는 적은 금액으로 보이는 액수를 환급받은 주민들도 많지만 ‘어렵게 사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감사해하는 주민들에게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종로구 창신2동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여태운(29) 주무관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던 주민의 전화를 받고 거주지로 달려가 목숨을 살렸다. 작년 8월 신규 임용된 여 주무관은 이곳 주민 센터에서 복지 상담 업무를 맡아 왔다.
한창 업무 중이던 지난 4월의 어느 날 오후 6시쯤 50대 남성 주민 A씨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여러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 고맙다. 하지만 긴급생활비 62만원은 이제 필요 없으니 나 대신 다른 어려운 이웃에게 주는 게 낫겠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여 주무관이 라면 같은 생필품 지원을 챙겨 주며 인연을 맺어 왔던 주민이다. 생계가 곤란한데다 홀로 거주하고 있어, 여 주무관의 도움을 받아 긴급생활비 신청 절차를 밟고 있던 중이었다. 여 주무관은 “긴급생활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던 A씨가 갑자기 돈이 필요 없다고 해 이상함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물으려 했지만 그대로 전화는 끊겼다. 업무를 미처 끝내지 못한 터라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곧장 언덕길을 20여분 내달려 A씨가 사는 쪽방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채 의식이 없는 A씨를 발견했다. 즉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119를 불러 구조에 나섰다.
이후 다행히 의식을 회복한 A씨는 구청의 지원을 받아 입원 치료 중으로, 다음달 퇴원을 앞두고 있다. 입원 중인 A씨는 전화로 여 주무관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퇴원하면 여 주무관과 함께 긴급생활비 지원 절차를 다시 밟기로 했다.
여 주무관은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순간 당황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달려갔던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음을 바꾸고 다시 살아보겠다고 결심해 준 A씨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올해 2월에 입사한 뒤 시보 기간도 채 끝나지 않은 서울시 자치행정과 강상훈(27) 주무관은 중고 거래를 통해 시 예산을 크게 절감시켰다. 시에서 보관 중인 중고 가전들을 공매 사이트 ‘온비드’에 올려 판매해 557만원의 수입을 올린 것이다. 이 돈은 다시 서울시 예산으로 편입해 활용될 예정이다.
강 주무관이 내놓은 물건들은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등 민간위탁 사업장에서 사용하던 공기청정기와 전자레인지, 디지털카메라 등이다. 사업이 종료되고 이 물건들은 시청 내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일반적으로 시는 이런 물건들을 보관하다가 조달청에 전달하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다른 공공기관에 넘긴다. 강 주무관처럼 재판매해 시 예산에 보태는 경우는 드물다.
강 주무관은 “사용 연한이 많이 남아 멀쩡한데다, 시민 세금으로 산 물건들인데 무상으로 다른 기관에 넘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물품들을 일일이 사이트에 등록해 판매하는 게 품이 많이 들긴 하지만 관련 업무 매뉴얼을 찾아보니 문제가 없어 진행했는데 보탬이 되어 다행이다”라고 했다.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서울 지하철 ‘10분 내 환승시 무료 재탑승’ 역시 서울시 MZ 공무원이 고안한 아이디어다.
서울시 도시철도과에서 도시철도총괄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임국현(42) 사무관이 그 주인공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부터 직원들 및 시민들을 대상으로 ‘창의 행정’ 아이디어 공모를 실시했다. 임 사무관은 서울교통공사 소속으로 지하철 사당역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고안해 제출했다.
10분 내에 같은 역에서 다시 승차하면 환승 할인을 적용하자는 제안이었다. 화장실을 방문하거나 교통카드를 반대 노선 개찰구에 잘못 태그하는 등 이유로 요금을 두 번 결제하고 재승차하는 승객들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서울시는 이 아이디어를 ‘창의 행정’ 1호 사례로 선정하고, 지난 7월 1일부터 서울 지하철역 1~9호선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시는 하루 3만명 이상, 연간 1500만명에 달하는 승객들이 교통비 180억원 상당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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