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석의 들춰보기-미키마우스야 지구의 일기장을 부탁해[문화칼럼]
2010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은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 수상했다. MBC 창사 48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아마존의 눈물’이었다. 당시 시청률을 20%를 넘기며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었고 따로 제작된 극장판이 개봉되었으며 책을 물론이거니와 당대 최고의 스타들만 출연했던 MBC ‘무릎팍도사’에도 제작진이 직접 출연했다.
사전 준비 기간만 9개월이었고 제작 기간만 250일이었다. 거대한 아마존의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는 대한민국 최초로 브라질 정부 허가를 받아 조에족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 달을 균일하게 30일로 잡으면 준비기간 9개월은 무려 270일이며 여기에 제작 기간 250일을 더하면 520일이다. 거의 1년 6개월 가깝게 제작진은 아마존에만 매달린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 지역의 자연 환경과 문화를 조명하는데 이 기간은 결코 길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뜬금없이 13년이 지난 다큐멘터리를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소속 기자 전원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바로 1년전, 2022년 9월에는 6명의 편집자를 내보냈고, 2023년 4월에는 편집자 19명을 내보냈다. 정확히는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지구의 일기장이라 불리던 곳은 앞으로 도대체 누가 꾸려갈까 싶은 우려가 들 정도로 대규모 인원 감축을 단행했다. 이제부터 지구의 일기는 누가 써내려갈까?
문제는 디즈니로부터 시작한다. 2019년 21세기 폭스로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인수한 디즈니는 1888년 미국 지리학회가 창간한 135년의 역사를 불과 4년만에 이렇게 위축시켰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고 돈이 되지 않는 회사의 인력을 감축하고 구조조정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그렇다면 인수한 회사인 디즈니의 창업주인 월트 디즈니의 말로 답변하고 싶다.
“You reach a point where you don’t work for money.”
당신이 일하는 목적이 돈이 아닌 때가 옵니다.
— Walt Disney
월트 디즈니는 흔히 말하는 디즈니 왕국을 만들면서 무수히 많은 명언을 남겼다. 한국 포털사이트의 블로그나 기사로도 많이 검색되지만 구글을 통해 영어 원문으로 검색해도 월트 디즈니의 명언이 전세계에서 수없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하는 목적이 돈이 아닌 때가 온다는 것은 돈을 벌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디즈니는 오로지 돈만을 쫓아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돈을 넘어선 무언가를 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단순히 잡지나 기사, 영상 채널을 넘어서는 말 그대로 지구의 일기장이었다. 일기에는 특별한 것이 숨어 있을 수도 있지만 아주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도 하다. 아주 평범한 지구의 일상과 가끔은 아주 특별한 지구의 모습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소속 기자를 모두 해고한 곳에 지구의 일상은 담길 수 있을까? 문제는 해고뿐만 아니다. 사진 작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장면을 담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촬영에 임한다. 심지어는 그 순간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몇 년을 기다릴 수도 있다. 마치 아마존의 눈물 제작진이 1년 6개월을 갈아 넣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누가 몇 년을 기다려줄 것인가.
“We don‘t make movies to make money. We make money to make more movies.”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법니다.
― Walt Disney
이 모든 것을 예상했던 것일까? 월트 디즈니는 위의 말도 남겼다. 더 많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번다는 그의 말은 현재 정면으로 반박되고 있다. 최근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인터뷰를 통해 마블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작 편수와 예산 지출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월트 디즈니가 말한 더 많은 영화는 결국 ‘다양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엉뚱한 다양성을 앞세우느라 주력 산업이었던 디즈니의 영화들이 오히려 다양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꼴이 되어 비판을 받았고 그 결과 잘 나가던 시리즈마저 흥행에 참패했다. 흥행에 참패하니 그 대표 시리즈의 제작도 줄어들고 언뜻보면 그리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손쉽게 정리되는 것이다. 밥 아이거는 그의 입으로도 ‘단기간에 상당한 비용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단기간에 상당한 다양성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의 임기는 2026년까지 연장되었다.
월트 디즈니가 살아 돌아온다면 작금의 디즈니 직원들에게 어떤 말을 남겨줄 수 있을까? ‘고작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 해고한 것 가지고 뭘 그래?’라고 답변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월트 디즈니는 그가 남겼던 이 말부터 되새겨보지 않을까?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Always remember that this whole thing was started with a dream and a mouse.”
꿈을 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생쥐 한마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 Walt Disney
여기서 말하는 생쥐는 당연히 미키 마우스다. 미키 마우스로부터 디즈니 왕국이 시작된 것처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소속 기자 전원 해고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실로 돌아올 수 있다. 적어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인류가 지켜야할 문화 유산에 가깝다. 부디 내가 우려하는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미키 마우스야, 지구의 일기장을 잘 부탁한다.
▲오창석 ▲작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정리: 이선명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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