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지만, 두루치기·부침으로 한 시절 풍미한 맛 [ESC]
‘실내 포차’ 탄생과 함께 한 재료
노랗게 지져 간장만 돕는 소박함
간이 배게 으깨 두루치기 조리
보통 두루치기 하면 제육이라든가 오징어라도 되어야 이름이 붙는 요리다. 하지만 대전에 가면 두부로 두루치기를 한다.
아주 옛날, 대전 시내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한 할머니의 결심이 시작이었다. 일제 단속이 늘 있어서 구청에서 포장마차째 트럭에 싣고 가버렸다. 울고불고 매달려도 소용없었다. 그 후엔 벌금도 날아왔다.
할머니는 결심한다. “내 가게를 하고 말겠다!”
술도 밥도 국수도
그게 구청이 노린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포장마차가 실내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그래서 세금도 내고 길도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사는 게 퍽퍽한 사람들에게는 저승사자였던 일제단속반.
모자를 쓰고 완장을 찬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공포. 그리하여 그만두거나 어떤 이는 보증금이라도 얻어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고서도 옛 이름을 버리지 못했다. 대한민국에만 있는 말, ‘실내 포장마차’의 탄생이다.
실내와 야외를 의미하는 ‘야생’적인 포장마차를 같이 쓰는 이름이라니. 이 이율배반의 용어에서 나온 게 두부두루치기다. 주인 할머니는 실내에 들어가긴 했는데, 여전히 싼 요리와 술을 팔았다. 당시 제일 싼 재료는 두부였다(지금도 얼추 그렇지만).
고기 대신 마른 멸치가 들어갔다. 감칠맛은 뒤지지 않았다. 고춧가루와 고추씨도 넣었다. 고추씨를 넣어야 더 매큼하고 재료비도 덜 들어간다. 참기름 좀 넣고 마늘에 알싸하게 지지고 조려서 냈다.
‘진로집’이란 이름도 별 게 아니다. 소주 이름에서 온 거다. 그렇게 얼기설기, 고단하게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만들고 먹던 음식, 두부 두루치기. 두루치기는 이리저리 뒤집고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있다. 후딱, 대단한 조리없이 완성한다는 뉘앙스도 있다.
서민의 요리다. 비싼 두루치기는 없다. 거기에 술도 마시고 밥도 비비고 국수도 넣는다. 두 명이 먹다가 세 명도 먹는다. 소주 몇 병을 마시든 안주는 두루치기였다. 그렇게 한 시절을 살아온 게 두루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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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고 부치고 끓이고 데쳐서
춘천 풍물시장에 가면 북산집이라는 대폿집이 있다. 구순이 다 된 할머니가 전병을 부쳤다.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굽은 허리로 일했다. 북산은 소양강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곳이다. 댐이 들어서면 나라가 발전한다고,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겨서 매운탕집도 생기고 막국수집도 생겼다.
그 와중에 누구는 고향을 잃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가끔 이 가게에 와서 서로 고개를 수그리고 안부를 묻는다. 막걸리 한 잔에 눈물도 흐른다. 누가 그런다. 이북만 실향민이 아니라고, 빤히 물 속에 있는 내 집에 못가는 마음도 심히 아프다고.
댐이 완공된 것이 1973년이니, 50년이 흘렀다. 할머니는 최근에 은퇴했다. 며느리가 그 자리를 맡았다. 할머니가 허리 아프도록 앉아서 일하던 검은색의 낡은 번철 대신 서서 일할 수 있게 만든 새 작업대가 들어섰다.
한 시대가 또 그렇게 갔다. 할머니가 부치던 건 전병 말고도 두부가 일품이었다. 장에서 팔리는 두부를 가지고 두툼하고 기름지게 부친다. 투박한 번철에 기름을 바르면, 두부가 노랗게 지져진다.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게 밀어넣고 벌컥벌컥 냉막걸리로 식힌다. 두부의 순정이라고 누가 그랬나. 오직 간장만 도울 뿐인 소박한 두부다.
언제부터인가 팩에 예쁘게 담긴 두부가 팔리지만, 예전에는 가게에 가서 주인에게 “두부 주세요” 하면 칼부터 찾았다. 가게 한 구석, 플라스틱 상자 맑은 찬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두부 한 판에 칼로 쓱쓱 금을 그어 한 모를 건져내어 담아주었다.
두부는 조리고 지지고 부치고 끓이고 데쳐서 먹었다. 요새는 두부 덜 먹는 것 같다. 고기도 많은데, 두부는 저기 좀 있다가 오렴.
냉장고를 뒤져보면 유통기한 지난 두부가 간혹 보일 거다. 두부는 포장을 열지 않았다면 대체로 유통기한보다 더 오래 먹을 수 있다. 물론 온갖 세균에 단련된 오래된 내 위장 덕일 수도 있다.
두루치기 조리법
재료
두부 큰 것 한 모(찌개용은 부드럽고 부침용은 좀더 단단하다. 기호에따라. 나는 부드러운 게 좋다.)
국멸치 10마리
멸치액젓 한 큰술
고춧가루 두 큰술
설탕 한 작은술
조미료(다시다류나 미원류) 약간
다진 마늘 두 큰술
양파 길이로 썬 것 반 개
대파 한 줄기 썰어서
진간장(또는 양조간장) 2큰술
식용유 두 큰술
참기름 한 큰술, 후추 한 작은술
물 두 컵
*고추장 한 큰술로 추가로 간을 해도 좋다.
조리 순서
1.두부를 손으로 대충 으깬 후 멸치액젓을 뿌려둔다. 이게 제일 중요한 과정이다.
두부는 의외로 간을 잘 안 먹는다. 오래 조려도 속이 심심하다.
그래서 빨리, 간을 배게 하기 위해 으깨는 게 좋다. 모양은 좀 그렇지만, 그게 진로집의 비결 같다.
2.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를 볶는다. 다 볶아지면 다진 마늘 절반을 넣어 더 볶는다.
물을 붓고 국멸치를 넣어 끓인다.
물이 반 졸아들면 두부를 넣고 설탕, 조미료, 고춧가루, 대파를 넣고 조리듯 끓인다.
간을 보고, 마지막에 참기름과 후추를 넣어 완성한다. 통깨를 뿌려도 된다.
요리사
익명과 혼술의 조합을 실천하며 음주 생활을 한다. 전국 왕대폿집 할매들 얘기를 듣는 중. 사라지는 것들에게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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