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 고치고 싶어요" 자진 상담자, 전국서 경기도 가장 많아
‘바다이야기’ 사태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지 20여년이 지났다. 단순 개인 일탈로 시작하는 사행성 도박 게임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귀결된다. 최근 정부는 불법도박 척결을 위한 대대적인 전수 조사 등 단속에 나섰다. 이 같은 기조 때문인지 스스로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불법도박 근절을 위해 행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할까, 치유 정책을 확대해야 할까. 경기일보는 불법도박의 뿌리를 뽑기 위해 필요한 정책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 1년. 경기북부지역에 거주하는 학원 강사 박모씨(42)가 2억1천여만 원의 도박 빚을 떠안게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박씨는 8년 전 해외 여행 중, 우연히 찾은 카지노에서 포커와 바카라를 접했다. 귀국 후에도 첫 베팅의 짜릿함을 잊지 못해 강원도 정선의 카지노장을 다시 찾으며 도박에 중독됐다.
그러던 중 지인 추천으로 한 홀덤펍에 가게 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홀덤펍에서 도박하는 데 썼다. 결국 그는 1년 간 약 1억5천만 원의 도박 빚을 얻게 됐고, 2금융권과 지인에게까지 손을 뻗어 각각 4천만원, 2천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일부 채무를 대리 변제 해줬지만, 나머지 채무 변제를 위해 찾은 도박장에서 박씨는 더 큰 빚을 지게 됐다. 결국 그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가족과 함께 경기북부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을 찾았다.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도박 욕구’로 치료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함께하는 가족을 보며 포기할 순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일상을 찾았고, 본업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도박 빚을 차근차근 갚아나갈 계획이다.
■ 날로 증가하는 불법도박 중독자…"뿌리 뽑자" 칼 간 정부
29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제5차 불법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불법도박 규모는 총 102조7천236억원으로 추산됐다. 100조원 이상의 규모를 기록한 것은 역대 최초다.
이와 함께 전국적으로 도박 중독 환자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3년치 ‘연도별 도박중독 환자 현황’을 봐도 2020년 1천633명에서 2021년 2천25명, 2022년 2천280명으로 점차 증가했다. 경기도에만 한정해도 같은 기간 각각 297명, 343명, 305명으로 매년 환자 수가 소폭 늘고 있었다.
이처럼 국내 도박 규모가 커지고, 중독자 수가 증가하면서 정부는 불법도박 근절을 위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전국 지자체는 홀덤펍 업소 등을 상대로 오는 9월까지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경찰청도 불법 도박 집중 단속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관광진흥법’에 카지노업 유사행위 금지 규정을 신설하기도 했다.
■ 시초는 ‘바다이야기 사태’…이후 20년, 그동안의 변화는
국내에서 가장 큰 사회적 파장을 불렀던 사행성 불법도박 관련 사건은 일명 ‘바다이야기 사태’다. 사실상 오늘날 불법 도박 게임장의 시초가 된 일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무렵 바다이야기 게임장 내에서 불법도박이 이뤄지면서 이용자 중 일부가 배팅한 돈을 잃고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폐해가 가득했다.
그 이후 2007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을 근거로 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생겼고, 2013년 8월에는 도박중독 치유 등을 돕는 담당 전문 공공기관인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설립됐다.
국가적으로 불법도박의 뿌리를 뽑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일례로 중독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스스로 상담을 받고자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을 찾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했다는 점이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치유원을 찾아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전국 17개 시·도 중 25%(2천209명)을 차지하며 가장 많았다.
■ ‘자진 상담’ 대부분 20~30대…정부·개인 노력에도 음지선 불법 행위 여전
경기일보는 ‘스스로 도박 문제를 상담한 이용자’들을 별도로 분석해봤다.
치유원을 찾아 도박 중독과 관련해 자진 상담을 한 이용자들은 상당수가 20~30대였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간 중독 치유 서비스를 이용한 10명 중 6명 이상(65%)이 20~30대로 분석됐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20~30대 연령층 안에서 불법도박 행태가 만연해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군 장병의 스마트폰 사용 허용, 홀덤펍과 같은 도박의 놀이 문화 등 요인에 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정부 단속의 초점도 20~3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불법 도박 문화를 척결하는 데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및 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 이뤄지는 불법 행위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5일 이천에서 절도 혐의로 붙잡힌 20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편의점에서 금고 안에 있던 559만원을 훔쳐 도박에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같은 달 7일 수원시에선 호기심에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에 돈을 배팅해 돈을 딴 뒤, 현금을 인출하던 중학생이 도박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 "사법기관, 예방·치유기관 등 긴밀한 협조로 처벌과 치유 병행돼야"
전문가들은 도박 문제가 또 다른 범죄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관계 기관들의 유기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처벌 강화, 치유 정책 확대의 병행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영호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겸 경기북부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도박은 습관성 범죄가 될 수 있고, 사기·폭력 등 또다른 범죄와 연결될 수 있는 만큼 보다 촘촘한 예방책을 마련, 처벌과 병행해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등 도박중독 전문 상담 기관에서 중독자 연령, 중독 수준에 따른 특화된 프로그램을 강화할 것 ▲법무부 등 사법 기관에서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보강해 법적 처분을 받는 이들이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할 것 ▲교육부, 보건복지부, 지자체 등도 도박 방지를 위한 사전 교육 및 중독 치료·재활을 확대할 것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모든 유관 기관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하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사회적 문제를 개선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황아현 기자 1cor103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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