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인 마켓] 엔씨소프트 '성공 방정식' 무분별하게 답습 각종 리니지라이크 게임의 범람 컨셉트와 장르 다변화만이 살 길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린저씨'는 한국 대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리니지의 주 수요층인 30~50대의 유저들을 반쯤 비하해 부르는 단어다. 게임을 하지 않거나, 다른 장르의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린저씨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많다. 게임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확실히 과금 성향이 강하고 게임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린저씨들을 잡기 위한 게임을 만들고, 이들을 얼마나 끌어오는지가 게임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다.
리니지의 스타일과 BM(비즈니스모델)을 따라한 소위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대세를 이루면서 한국 게임 시장을 망쳤다는 비판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리니지 개발사인 엔씨소프트 역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과연 한국 게임업계가 천편일률적인 MMORPG 위주로 구성된 게 엔씨소프트와 리니지만의 잘못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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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라이크의 핵심 'PK와 인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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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의 기본은 '무한 경쟁'이다. 필드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저들끼리 서로를 해칠 수 있다. 단순히 개인 간 분쟁에 그치지 않고 혈맹과 혈맹들이 모여 조직한 연합 단위의 '쟁'이 24시간 끊임 없이 벌어진다. 시간대별로 출몰하는 보스 쟁탈전부터 게임 내 세금 징수권을 둘러싼 공성전까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이어진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스펙을 올려야 한다. 여기서 적용되는 게 '확률형 아이템'이다. 기본적인 장비나 스킬은 필드에서 사냥을 하며 얻을 수 있지만, 무기부터 장비까지 스펙업을 위해서는 '강화'(인챈트)를 해야 한다. 어느 수준 이상의 인챈트는 확률에 따라 장비 자체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낮은 확률을 뚫고 고스펙을 완성하기 위해 시행횟수를 늘리고, 여기서 막대한 과금이 발생한다.
리니지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장비만은 아니다. 캐릭터의 변신부터 인형, 스킬과 각종 스탯 수치까지 모두 판매한다. 돈을 주고 시간과 확률을 사는 P2W(페이 투 윈) 게임의 전형인 것이다. 이렇게 스펙을 높인 유저들이 모여서 그룹을 만들고, 일반 유저들의 필드 사냥을 제한하거나 점령군처럼 서버 내 정책을 좌우하는 게 리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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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과 '의외성'이라는 게임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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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에는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BM이 다른 게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이 때문에 리니지를 '사행성 게임'이라거나 심지어 '도박'이라고 부르는 비판도 존재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게임판이 리니지 때문에 '뽑기판'으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런데 게임에서 '확률'이라는 건 원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고스톱과 포커 같은 유구한 전통의 보드게임들도 기본적으로 '확률 싸움'이다. 온라인게임으로 영역을 확장하더라도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지 않는 게임이 드물 정도다. MMORPG 필드 사냥 중 아이템을 획득하는 행위부터 수집형 게임의 카드 뽑기 등이 다 확률을 게임 요소로 도입한 BM이다. '깜깜이 확률'이 문제가 됐던 일부 게임들의 경우 관계당국의 시정명령에 따라 최근에는 모두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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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창출'.. 기업의 본연 목적 추구한 엔씨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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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 리니지가 유독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 확률을 뚫고 스펙업을 하려면 다른 게임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점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추가되는 BM들은 정기적인 과금을 유도하는데, 이러한 신규 BM을 따라가지 않으면 게임 내 경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과금을 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필드 사냥에서 쌓이는 경험치 자체가 달라서 점점 고과금 유저와 저과금 유저 사이의 격차가 커진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은 유저들은 새 BM이 나올 때마다 과금을 해 남들과 발을 맞추거나, 아예 게임을 접는다. 이를 두고 한 유저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게임"이라고 평했다.
이렇듯 리니지는 철저하게 '고래'라고 불리는 고과금 유저들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돈을 쓰고 스펙을 쌓은 유저들은 서버 내에서 '라인'이라 불리는 그룹을 형성해 왕 대접을 받는다. 경쟁 자체가 스트레스 요소이면서도, 이를 극복했을 경우의 달콤한 과실을 내놔 유저들에게 재미를 준다는 게 엔씨소프트의 전략이다. 기업으로서는 매출을 극대화해 수익을 추구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선 리니지식 MMORPG가 성공한다"는 신화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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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저씨 노린 파이 갈라먹기 "우리 애는 리니지랑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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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가 리니지 IP(지식재산권)로 구축한 '성공방정식'을 보여주자 이를 따라하는 다수의 MMORPG가 등장했다. 이들은 신규 게임 고객을 발굴하려는 노력보다, 이미 과금 의지와 능력이 입증된 '린저씨', 그 중에서도 리니지의 경쟁에서 지치거나 밀려난 이들을 주로 노린다. 이러한 게임들은 초창기 마케팅 포인트로 "우리 게임은 리니지식 PK가 없어요" "리니지보다 '착한' 과금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등으로 차별화됐다는 점을 부각하지만, 실제 콘텐츠를 들여다 보면 리니지와 대동소이하다.
리니지에 실망해 새로운 게임에 희망을 품고 찾아갔던 유저들은 새로운 게임에 안착해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새 게임에서도 재미를 못 찾고 또 떠나는 경우도 많다. 여러 MMORPG의 매출이 출시 초기에 반짝 성공을 보이다가 급격하게 하향안정화 되는 것은 이 같은 경향을 반영한다.
이름만 리니지와 다를뿐, 리니지라이크로 불리는 게임들은 결국 리니지가 구체화한 '린저씨' 고객층이라는 파이를 나눠먹는다는 측면에서 리니지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게임들이 우후죽순 나오면서 신규 장르의 게임 개발 빈도가 줄어들고, 유저들의 피로감이 높아졌다. 이 같은 게임 고객들의 불만이 MMORPG의 상징과 같은 리니지에 모두 쏠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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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저씨'의 노화와 시장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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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MMORPG 시장을 떠받치던 린저씨들이 늙어가면서, 게임 개발 트렌드 역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0~50대 린저씨들이 시간 대신 돈을 써서 게임 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수요가 강해 MMORPG 매출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던 것인데, 이들이 노령화하고 경제활동에서 은퇴하는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리니지 신화를 써온 엔씨소프트의 최근 주가 급락은 이 같은 불안감을 반영했다는 평이다.
최근 10~20대는 고과금과 '패거리 문화'로 서버에서 우월적 지위를 뽐내는 MMORPG보다는, 경쟁 요소가 덜 하더라도 인게임 요소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수집형 RPG 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과거 '오타쿠 문화'로만 여겨지던 서브컬처 게임들이 최근 매출과 인기 지표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이에 따라 게임사들은 장르 다변화에도 관심을 두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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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들의 체질개선, 언제쯤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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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전히 게임사들은 리니지라이크를 양산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도 AAA급 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작들은 대부분 MMORPG다. 정작 리니지 원조 엔씨소프트는 위기감을 느끼고 AI(인공지능)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하는데, 리니지라이크를 만들던 업체들은 과거의 성공방정식에 붙잡혀 있다.
최근 넥슨이 서브브랜드로 론칭한 민트로켓의 첫 작품 '데이브 더 다이버'는 체질개선과 장르 다변화의 성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만4000원짜리 타이틀이 지난해 10월 얼리액세스부터 올해 7월까지 누적판매량 100만장을 돌파했다. 경쟁과 대결, 확률형 아이템 없이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게임 콘텐츠가 주는 본연의 재미를 추구한 덕분이다. 넥슨의 기존 한국식 개발 문법에 익숙하던 유저들이 '넥슨의 실수'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MMORPG 외의 게임에서도 다양한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게 린저씨가 아닌 고객들까지 게임으로 끌어들여, 국내 게임업체들이 다시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