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협정을 “위대한 승리”라 주장하는 중국, 그 근거는?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회>
정전 70년, 한국 전쟁이 안 끝나는 이유
1953년 7월 27일 ‘한국 정전 협정(Korean Armistice Agreement,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 후 70년이 지났건만 한국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 전쟁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그동안 미국 안팎의 수정론자들은 미국 책임을 물어가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설명해보려 부단히 애썼지만, 그들의 해석은 요령부득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최근 정전 70주년을 맞아 다시 종전 선언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한국 지난 정권의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반 그들은 “북한은 핵 개발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서 국제 사회를 향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평화 의지’를 홍보하고 다녔다. 결국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그들은 황급히 “북핵은 공격용이 아니다”라며 김정일을 변호했다. 북한의 비핵화 사기극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그들은 다시 ‘종전 선언’이 이뤄져야만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수 있다며 북한을 피해국처럼 감싸고 돌았다. 심지어 북한의 김정은이 “절대로 핵만은 포기할 수 없다”며 “불가역적 핵보유국 선언”을 하는데도 그들은 북한이 비핵화를 원한다고 우겨대고 있다. 현실이 바뀌어도 낡은 신념을 붙들고 있는 광신자의 행태다.
매사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는 복잡한 이론보단 간단한 설명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 철학에서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 불리는 ‘검약의 원리(lex parsimoniae)’는 사회과학이나 역사학에도 적용된다. 한국 전쟁이 지금도 계속되는 가장 간단명료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러시아, 중국,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들이 무도하게 권력 유지를 위해서 주변국을 위협하는 군사 도박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구소련이 해체되었고, 중국은 40년 넘게 개혁개방을 외쳐 왔지만, 오늘날의 러시아, 중국, 북한을 지배하는 전체주의 정권은 본질상 크게 변하지 않았다.
광적인 고립주의 노선을 고집하다가 결국 우크라이나 침략을 감행한 러시아의 푸틴은 오래전에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부활시켰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며 대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시진핑도 마오쩌둥의 권위를 되살려 일인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북한은 오로지 김씨 왕조의 절대권력을 연장하기 위해서 핵무장에 성공한 후 더욱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세 나라는 모두 인권도, 자유도, 민주도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로서 반미(反美) 선전에 혈안이 되어있다. 겉으로는 반제국주의 선동이지만, 실은 자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인류의 보편 가치를 파괴하고, 문명의 기본 전제를 부정하는 독재의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그 프로파간다의 핵심에 바로 한국 전쟁의 기억이 놓여 있다.
한국 전쟁을 둘러싼 중국공산당의 선전전
2021년 중국 중앙선전부가 2억 달러를 써서 제작한 한국 전쟁 관련 영화 ‘장진호’는 중국 사상 최대 흥행작으로 기록됐다. 이 영화에 따르면, 한국 전쟁은 의분에 떤 중국의 청년들이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지원했던’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었다. 그 밑바탕엔 미국은 ‘악의 제국’이고,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중국은 ‘선의 국가’라는 중국공산당의 마니교적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반미 의식을 고취하여 내부 결속을 꾀하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의도가 읽힌다.
정전 70년을 맞아 중국공산당 기관지들의 반미 선전은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현재 중국이 직면한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선 더더욱 반미 선동을 증폭시켜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은 ‘항미원조 전쟁’이 “시공을 초월하여 세월이 갈수록 새로워지는” 중국의 “위대한 승리”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 7월 26일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의 참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 정부는 전 지구 전략과 냉전적 사유에서 출발하여 조선 내전에의 무장간섭을 결정했으며, 아울러 제7함대를 파견하여 대만 해협을 침입했다. 1950년 10월 초 미군은 중국 정부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서슴없이 38선을 넘어서 중·조 변경에 전쟁의 불길을 질렀다. 조선을 침략한 미군의 비행기는 여러 차례 중국 동북 변경 지구를 폭격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에 엄중한 손실을 끼쳤으며, 우리나라의 안전은 엄중한 위협에 놓였다.···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을 파괴하는 침략자를 물리친 신중국의 입국(立國) 전쟁이다.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는 중국 인민이 일어나 세계의 동방에 세운 선언서이며, 중화민족이 가는 위대한 부흥의 길에 놓인 이정표다.”
이 짧은 문구엔 역사 왜곡과 허위 선전이 가득하다. 이미 구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어 백일하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6·25전쟁은 단순 내전이 아니라 스탈린의 공산화 전략에 따라 마오쩌둥의 참전 밀약을 받고서 김일성이 저지른 대남 침략 전쟁이었다. 1950년 1월 말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남한의 무력 침략을 허락했고, 같은 해 3월 마오쩌둥 역시 김일성의 무력 남침을 옹호했다. 요컨대 김일성의 625 대남 침략은 공산권의 사전 계략에 따른 국제전의 시작이었다.
미 공군이 중국의 동북 변경 지대를 폭격했기 때문에 중국이 부득이 국토방위를 위해서 미국에 저항하는 전쟁을 벌였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전쟁 발발 직후부터 소련의 참전을 우려한 미국은 ‘제한된 전쟁(limited war)’의 원칙에 따라 공격 대상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신중한 전략을 추구했다. 트루먼 미 대통령은 직접 미 공군 극동 사령부에 북·중, 북·소 국경 지대의 폭격을 금지하는 특별 명령까지 하달했다. 맥아더 장군이 미 공군에 소이탄 사용을 허용한 시점은 1950년 11월 5일이었다. 중공군은 그보다 보름 앞선 10월 19일 이미 북·중 국경을 넘어왔고, 11월 3일에는 평안북도 동부의 운산(雲山)에서 국군 1사단과 미군 제8기병연대를 격파하는 전과까지 올렸다. 미군의 공습 강화는 중공군 개입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Taewoo Kim, “Limited War, Unlimited Targets: U.S. Air Force Bombing of North Korea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Critical Asian Studies 44: 3 (2012): 467-492).
무엇보다 “항미원조 전쟁이 위대한 승리”라는 대목은 역사의 진상을 왜곡하는 거짓 주장이다. 대체 무슨 근거로 중국은 한국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가? 1951년 7월 10일 작성된 미 국무부 산하 역사학자 사무소(Office of the Historian)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6월 16일 당시까지 중공군 사상자는 577,000명에 달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학계에선 중국 측 사상자를 대략 92만 명 정도로 파악해 왔다. 중국학자들은 사망자가 114,000명, 부상자가 383,000명 정도라고 파악한다. 그렇게 많은 인명이 이국의 전쟁에서 희생되었는데, 위대한 승리라 할 수 있는가?
1950년대 마오쩌둥의 어록을 살펴보면 중국공산당의 궤변이 어렵잖게 설명된다. 중국은 초지일관 “조선 전쟁”이 김일성에 의한 침략 전쟁이 아니라 38선 분쟁에서 발생한 내전이라 주장해 왔다. 그런 전제 위에서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의 내전에 부당하게 개입한 후 중국의 동북 지역을 공격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항미원조 전쟁”은 38선이 아니라 북·중 국경에서 시작되었고, 중공군이 유엔군을 다시 38선 이남으로 격퇴한 다음 정전 상태에 이르렀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을 38선 이남으로 내모는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는 주장이다.
정전 협정을 미국에 대한 중국의 위대한 승리라 규정한 인물은 마오쩌둥이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소식을 접하고서 그는 뛸 듯 기뻐하며 군복을 벗어 던지고 경극(京劇) 가요를 한 곡 불렀다고 한다. 그 후 마오쩌둥은 여러 자리에서 “항미원조 전쟁”의 의의를 강조했다. 첫째, 38선 이북을 회수하여 북한 정권을 되살렸다는 점, 둘째, 세계 최강의 군대와 맞붙어 싸우는 과정에서 중국의 전 병력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얻었다는 점, 셋째, 중국 인민의 정치의식이 고양되었다는 점, 넷째,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략을 지연시켰다는 점, 다섯째, 중·소 동맹을 강화하여 경제 지원과 안전 보장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 등이었다. (王穎, “抗美援朝戰爭的五大意義,” ‘北京日報', 2020.09.21.)
역사적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70년째 중앙선전부는 중국이 세계 최강의 미국을 물리쳤다는 정치 선전만을 이어간다. 미·중 갈등에 봉착한 시진핑 정권으로선 한국 전쟁에서 미국과 싸워 이겼다는 주장보다 더 효과적인 대민 선전은 없기 때문이다. 헐벗고 굶주렸던 70여 년 전에도 미국을 38선 이남으로 패퇴시킬 수 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이 대만을 놓고 미국과 싸운다면 승리는 기정사실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환구시보’ 는 7월 27일 사설에서 미국을 향해 70년 전의 한국 전쟁의 교훈을 망각하고 대만 문제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더 큰 고통을 당할 것이라 경고한다.
평화 쇼에 집착하는 한국 친중 세력의 미망
중국의 관점에선 정전 협상은 ‘위대한 승리’의 징표와 같다. 중국으로선 북한이 지금처럼 반미의 철옹성으로 남아 있어야만 항미원조 전쟁의 ‘위업’이 더욱 빛날 수 있다. 중국은 수십만 사상자를 내면서 어렵게 지켜낸 북한 정권이 베트남처럼 문호를 열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사태만큼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중국은 모든 수를 써서 북한을 반미의 전초기지로 남겨두려 한다. 중국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원치 않으며, 고립과 폐쇄로 연명해온 김씨 왕조는 개혁개방의 하중을 견딜 수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중국공산당과 김씨 왕조의 공생 전략이 나온다. 그러한 북·중 관계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비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파멸적 공조의 양상을 보인다.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은 개혁개방 없이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 핵무장임을 잘 알고 있다. 중국 역시 북한이 그대로 존속되기 위해선 핵무장이 불가피함을 알고 있다. 북핵은 체제와 이념이 대동소이한 중국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묵인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70여 년 전처럼 러시아와 중국이 반미 전열을 갖추고 있고, 핵무장에 성공한 북한은 중·러 양국 사이에서 괴뢰(傀儡) 역할을 맡고 있다. 국제정치의 상황이 그렇게 엄중한데, 과연 미국, 중국, 한국, 북한이 모여서 종전 선언을 채택할 수 있는가? 설사 그 비슷한 선언문이 채택되어 잠시 평화의 세리머니(ceremony)가 펼쳐진들 과연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73년 전 침략 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 정권이 전체주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핵무장에 성공한 이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종전이란 있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장은 한국 전쟁이 끝나긴커녕 다시 비등점으로 치솟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의 의중을 읽지 못한 채 무조건 고개를 조아리는 친중 세력의 눈엔 물론 그러한 국제정치의 현실이 보일 리 없겠지만... <계속>
<알림> 지난주까지 연재했던 “대륙의 자유인들”을 82회로 일단 마치고, “변방의 중국몽”이란 제목으로 새로운 “슬픈 중국”의 연재를 이어가려 합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변방의 중국몽”은 전체주의 일당 독재의 국가 중국의 위세에 짓눌려 인류의 보편 가치를 저버리는 국내외 친중 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입니다. 1970년대 이래 한국 지식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이념적 친중주의의 뿌리를 파헤치고, 외교적 친중 노선의 득실을 따져보고, 친중 세력의 사유 구조와 행동 유형을 분석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질정을 기대하며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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