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놀이터에서 맺은 엄마들의 연대···육아 전투를 버티는 힘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3. 7. 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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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에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보다 일찍 결혼해 아이를 키우던 여고 시절 친구가 ‘동네 언니’ 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꽤나 신기해 했던 일이 생각난다.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며 인사를 하는 시절도 아니고, 나는 윗집 아랫집은 커녕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겠는데 내 친구는 어떻게 온갖 동네 언니들을 다 알고 있을까. 친구 말이 그랬다. “놀이터에 간식 들고 아기랑 나와 있으면 돼.”

친구의 경험담을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듣던 나는 2년 후 그 말을 실천에 옮긴다. 물론 친구의 ‘조언’을 기억해서는 아니다.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고 바깥세상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생후 6개월의 딸을 둔 휴직맘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놀이터로 향했다. 생후 6개월 아이와 놀자고 놀이터에 가는 게 아니었다. 단지 놀이터에 가야 벤치가 있었고, 이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5분 앉아있었을까, 신기하게도 나와 비슷한 모습의 한 아이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공감대 덕에 그날로 우리는 친해졌고, 종종 서로의 집에 놀러가 공동 육아를 했다.

언니는 나보다 반년 일찍 복직했고 지금은 각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 가까이 살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는 좋은 친구로 지낸다. 같은 동네에 살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사이가 멀어진 것은 아니다. 각자의 직장에 복직한 뒤에도 자주 정보를 공유한다. 육아템 ‘핫딜’ 좌표부터 발달 단계에 따른 아이들의 변화, 주말에 가기 좋은 장소,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워킹맘은 사실 상대적으로 동네 친구를 만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친구가 꼭 동네에 있으란 법은 없다. 일 하다 만나는 사이에서도 서로가 ‘워킹맘’ 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관계가 급속도로 뜨거워진 경험이 있지 않은가. 고민을 털어놓고,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워킹맘 친구들은 큰 의지가 된다.

그렇다고 동네 친구를 아예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주말 놀이터에서 만나게 된 아이 엄마들, 등원 길 유치원과 어린이집 문 앞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눈 후에는 용기를 내 먼저 전화번호를 받는 편이다. 다행히도(?) 단 한번도 거절을 당한 적은 없다. 기회가 되면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이해한다. 자주 연락하지 못하더라도 서로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실제 유치원이나 기관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공유하거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대가 생기면 워킹맘들에게는 분명히 큰 힘이 된다.

실제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워킹맘 엄마들과는 뜻을 모아 연장 보육을 제안해 어린이집에서 운영시간을 늘려줘 보육 공백을 해소한 적이 있다. 혼자 제안할 때보다 여러 명이 같은 목소리를 낼 때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지인의 경우도 이른 출근으로 8시 전 이른 등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다른 엄마들의 의견을 수렴해 어린이집에 등원 시간을 당겨달라고 요청한 사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경험은 ‘반찬 나눔’이었다. 한 엄마의 제안으로 약 2년 동안 다섯명의 동네 엄마들이 모여 매주 각자 한 개씩 반찬을 해서 서로에게 나눠주는 모임이 결성됐다. 한 종류의 반찬을 넉넉히 만들어 다섯 친구들에게 나눠주면 총 다섯종류의 반찬이 생겼다. 이사로 인해 더 이상 모임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됐지만 육아도 살림도 서툰 초보 엄마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글을 통해 만나고 있는 우리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전우니까 말이다. 육아 전우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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