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만큼 햇빛이 강한 곳이 지구에 있다

곽노필 2023. 7. 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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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천미터 칠레 아타카마사막 고원
태양에 4천만km 더 가까운 금성과 비슷
고도, 위도, 구름, 에어로졸 등 복합작용
세계에서 햇빛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칠레 아타카마사막 고원지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금성과 지구가 받는 태양 에너지의 차이는 거리 차이보다 훨씬 크다. 금성과 태양의 거리는 1억820만km,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1억4960만km로 28% 차이가 나지만, 두 천체가 받는 태양 에너지의 차이는 약 2배다. 1㎡당 받는 태양 에너지가 금성은 2600와트, 지구는 1360와트다. 이는 천체 표면이 아닌 대기 상단에서 받는 복사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지구에서도 금성과 비슷하게 강한 태양 에너지를 받는 곳이 있다. 최근 ‘미국기상학회 공보’(Bulletin of 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칠레 안데스산맥 인근 고원지대에 있는 아타카마사막의 알티플라노지역 고원의 태양 복사량을 측정한 결과, 1㎡당 최대 2177와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가 태양에서 금성보다 30% 더 먼 거리에 있다는 걸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곳은 그동안 위성 데이터를 통해 태양 복사 에너지가 가장 강한 곳으로 지목돼 왔지만 실제 현장에서 구체적인 일사량을 측정해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칠레 산티아고대 라울 코르데로 교수(기후학)는 ‘워싱턴포스트’에 “이는 금성에 서 있다고 가정할 경우 금성의 여름에 실제로 받는 일사량”이라고 말했다.

(a)는 금성 수준의 일사량을 기록한 칠레 아타카마사막 알티플라노고원 지역의 차이난토르고원, (b)는 위성 데이터로 본 전 세계 연 평균 일사량, (c)는 차이난토르고원의 일일 평균 일사량, (d)는 차이난토르고원의 일일 최대 일사량. 미국기상학회공보

금성 수준의 햇빛을 만드는 다섯가지 조건

연구진은 2016년부터 일사량 측정기를 이용해 이 지역의 태양 복사량을 측정해 왔다. 5년간의 측정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지역의 평균 연간 일사량은 위성에서 관측했던 것과 비슷한 1㎡당 308와트였다. 이는 에베레스트산 정상 부근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2017년 1월엔 평소의 7배가 넘는 1㎡당 최대 2177와트의 복사 에너지가 측정됐다.

이곳이 지구에서 햇빛이 가장 강한 지역이 된 것은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고도가 매우 높다. 이곳의 해발 고도는 5천미터로 에베레스트에 비해선 3천미터 이상 낮지만 다른 지역에 비하면 햇살이 매우 강하다.

둘째 요인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청정지역이어서 빛을 산란시키는 에어로졸 입자들이 적다는 점이다. 아타카마사막의 광학먼지두께(AOD) 측정치는 사하라사막이 있는 북서아프리카의 절반에 불과하다.

셋째 요인은 위도상의 위치다. 이 지역은 남회귀선(남위 23.5도)이 지나는 곳이어서 한여름엔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서 작열한다. 이에 따라 해발고도는 비슷하지만 북회귀선(북위 23.5도)에서 약 5도 떨어져 있는 티베트고원보다 한여름의 일사량이 2% 더 많다.

넷째 요인은 남반구라는 지리적 위치다. 남반구가 여름을 맞는 1월에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더 가까운 근일점을 지난다. 이때 남반구의 태양 복사량은 북반구보다 7%가 더 많다. 또 남반구 하늘엔 북반구보다 오존 분자가 더 적다. 성층권에 주로 분포해 있는 오존 분자는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이곳의 여름 최대 일사량은 1㎡당 1280와트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1250와트)보다 다소 높다.

한 연구원이 일사량 측정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코르데르 교수 제공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구름이 유발하는 햇빛 증폭 효과다. 코르데로 교수에 따르면 구름은 주로 햇빛을 차단하거나 반사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이 지역에서 형성되는 ‘성긴 구름’(Broken-Cloud)은 오히려 돋보기처럼 작용해 햇빛을 지표면으로 산란시킨다. 이를 전방산란(forward scattering)이라고 부른다.

연구진은 권운(새털구름), 권적운(비늘구름) 같은 성긴 구름은 구름이 없을 때와 비교해 지표면에 닿는 태양 복사량을 최대 80% 늘린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름은 남반구 여름인 1~2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구름을 만드는 수분은 남미의 몬순철에 아마존강 유역에서 생성된다. 금성 수준의 폭발적 복사 에너지가 쏟아진 때가 이때였다. 이런 폭발적 현상은 최대 몇시간 지속되는데, 2017년 1월24일엔 약 4시간 계속됐다.

칠레 아타카마사막에 있는 알마 전파망원경. 아타카마사막은 구름이 거의 없어 최적의 천체 관측 장소 가운데 하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물론 햇빛이 가장 강한 곳이 가장 더운 곳은 아니다. ‘미국기상학회보 공보’에 실린 또다른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은 바레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의 도시들이었다.

기온은 태양 복사량 외에도 많은 요인에 좌우된다. 예컨대 알티플라노고원의 대기는 고도가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다. 남극발 해류가 지나가는 태평양 해안지대는 지중해처럼 따뜻한 바다와 접한 해안지대보다 기온이 낮다. 증발산 작용이 활발한 식물이 얼마나 많이 분포해 있는지도 기온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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