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회용품 대폭 줄이겠다"던 야구장…직접 가보니

이지현 기자 2023. 7. 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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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일회용 응원용품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지현 기자〉
#"환경부와 KBO(한국야구위원회) 10개 구단이 야구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4월)

지난 26일 찾은 서울 잠실야구장.

근처 지하철역에서 올라오자마자 눈에 띈 건 비닐로 만든 일회용 막대풍선이었습니다.

이날 야구장 근처에서 일회용 막대풍선을 판매하는 노점상만 10여 곳이 있었습니다. 막대풍선을 사 가는 관람객도 종종 보였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잠실야구장 밖 노점상에서 일회용 응원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막대풍선을 야구장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노점상인은 “안 될 리가 있냐”면서 “가지고 들어갈 수 있으니까 다들 팔고 손님들도 사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체육시설에서 합성수지로 된 일회용 응원용품은 사용이 금지된다고 홍보했습니다. 지난 4월에는 환경부와 KBO(한국야구위원회) 10개 구단이 야구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야구장 안에서 비닐로 만든 막대풍선은 쓸 수 없다고 했던 건데, 왜 아직도 일회용 응원용품을 야구장 근처에서 팔고 있는 걸까요.

“경기장 밖에서 파는 건 막을 근거 없어”


지난 26일 서울 잠실야구장 밖 노점상에서 일회용 응원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답은 '규정이 애매해서'입니다. 지난해 개정된 시행규칙을 보면, 정부가 규제하고 있는 건 정확하게는 체육시설이 일회용 응원용품을 무료로 나눠주거나 판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체육시설이 아닌 외부 노점상들이 일회용 응원용품을 파는 것까지는 규제할 근거가 없는 겁니다. 또 규제 대상이 체육시설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일회용 응원용품을 사서 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실제 이날 야구장에서는 막대풍선을 구매하고 구장 안에서 사용하는 시민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야구장에선 일회용 응원용품을 사용하고 있다. 〈영상=이지현 기자〉

규정이 모호하다 보니 정부도, 구장도 이를 단속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당수 관람객들은 일회용 응원용품 규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죠.

이날 야구장 근처에서 막대풍선을 산 20대 여성 A씨는 “야구장 응원 하면 막대풍선부터 생각나서 구매했다”면서 “사용이 제한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야구를 보러 온 고등학생 B 씨도 “일회용 응원용품을 쓰면 안 된다는 기사를 보기는 했다”면서도 “그래도 잠실야구장은 괜찮다는 얘기를 들어서 (막대풍선을) 구매했다”고 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야구장 관련) 규정 자체가 외부에서 일회용 응원용품을사 가지고 와 쓰는 것을 막을 근거가 없다”면서 “일종의 규제 사각지대인데, 정부에서도 이를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점상의 일회용 응원용품 판매나 관람객들의 사용을 금지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일단은 최대한 홍보를 강화해 관람객들이 스스로 다회용응원용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야구장 폐기물 3444톤…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는 156톤뿐



환경부의 제6차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야구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총 3444톤이었습니다.

그중 일회용품을 포함해 종량제봉투에 버려지는 폐기물은 3278톤에 달했습니다. 분리 배출돼 재활용이 가능한 건 156톤에 불과했죠.

또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 시즌(720경기) 중 사용된 일회용 컵은 400만 개에 달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기장 내 맥주캔 반입이 불가능해 맥주를 사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나눠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회용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자 정부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보자며 응원용품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잠실야구장의 경우는 지난 5월부터 다회용컵을 도입해 일부 매장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면 다회용컵에 음료를 담아 제공하고, 소비자는 이를 야구장 곳곳에 배치된 반납함에 반납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전문업체가 이를 수거해 가 깨끗하게 세척한 뒤 다시 매장에 가져다주는 구조입니다.

지난 26일 서울 잠실야구장 내 다회용컵 반납함. 〈사진=이지현 기자〉

“일회용품 줄이겠다”했지만 여전히 많아



하지만 여전히 야구장에서 일회용품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날 취재진이 잠실 야구장 안 음식을 파는 매장들을 돌아다녀 보니 대부분 매장에서 일회용품을 쓰고 있었습니다.
서울 잠실야구장 내 음식점에 대부분은 여전히 일회용품을 쓰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일부 매장은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아 내어줬고, 닭강정 등은 종이 그릇에 플라스틱 뚜껑을 덮어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맥주도 일회용 종이컵에 담아 주는데, 플라스틱 뚜껑과 빨대도 같이 제공하고 있었죠. 캔맥주를 구매하면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제공하는 매장도 여전히 있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아직 일부에 그치고 있는 겁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잠실야구장 내 63개 매장 중 다회용기를 제공하는 곳은 17곳뿐이었습니다.

또 다회용기 사용 여부를 소비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사용률도 높지는 않은 편입니다. 잠실야구장을 관리하는 두산베어스 구단에 따르면 관람객들의 다회용컵 사용률은 13% 정도입니다.

두산베어스 측은 “지속적으로 관련 내용을 홍보해 보다 많은 관중이 다회용컵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다회용기의 경우 음식 종류와 양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만큼 어떤 형태의 용기를 만들어야 하는지, 몇 가지 종류를 만들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잠실야구장 내 일회용품 줄이기에 나서고 있는 서울시 역시 “지금은 다회용컵 종류가 한 가지뿐이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매장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컵 종류를 더 늘리고 다회용기에 담을 수 있는 메뉴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 등 적극적인 정책 필요”


서울 잠실야구장 한 매장에서 다회용컵을 사용하는 모습. 〈사진=이지현 기자〉

물론 야구장 안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하루아침에 근절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회용기를 사용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사업자 입장에서는 싼 일회용품을 두고 다회용기를 사용할 유인이 없다”면서 "다회용기를 쓰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사업자들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강한 규제와 구단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품 사용은 캠페인이나 협약 정도의 접근으로는 사용을 줄일 수 없다”면서 “야구장이나 영화관, 전시관처럼 폐쇄된 공간이어서 다회용품 사용이 용이한 곳에서는 일회용품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등 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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