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명품 공예의 고장 통영을 탐해볼까 [ESC]

한겨레 2023. 7. 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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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 예술이 꽃피는 통영
400여년 문화·예술 뿌리내려
자개 등 12공방, 중·일까지 명성
‘전통의 현대적 해석’ 공예 풍성
정숙희 작가와 김주일 디자이너가 협업해 만든 누비 화병. 일반 화병에 커버로 씌우거나 마른 꽃은 그대로 꽂아서 사용할 수 있다. 김잔듸 제공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30여 년 전에는 몰랐다. 통영이 공예의 고장이라는 것을. 나전 작업을 하셨던 친구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반짝이는 전복 껍질 조각으로 소꿉놀이를 했고, 초등학교 교문 옆 건물에는 이순신 장군이 전술 지시용으로 사용했다는 통영 연이 늘 창문에 붙어 있었는데 통영 연을 제작하고 연구하는 곳이 있었다. 매일 깔고 자던 요는 색채 대비가 강렬하고 견고했던 통영 누비로 만든 것이었음에도 통영만의 공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나 어른들이 가르쳐준 적 없고 너무 가까운 일상이어서 오히려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이다. 외국에서 살다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통영을 떠나 서울에서 잡지 기자로 일하며 내 고향이 공예의 고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괜시리 뿌듯했으며 공예라는 ‘쓰임의 예술’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박경리 “고운 바닷빛, 청명한 기후”

많이 알려져 있듯 통영에 공예가 자리잡고 명품으로 대접받게 된 것은 4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이 생기면서부터다. 두룡포라 불리던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곳에 오늘날 도지사에 해당하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다스리는 통제영이 되면서 이곳의 문화와 예술적 뿌리가 뻗기 시작했다. 많은 병력을 유지하고 전투선을 제작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했고 조선 조정은 통제영이 직접 세금을 거둘 수 있게 했으며 직접 화폐를 찍을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물자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해야 했기에 전국에서 솜씨 좋은 장인들을 데려와 소목, 장석, 부채, 소반, 갓, 자개 등의 공예품을 ‘12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제작해왔고 조선을 넘어 중국과 일본까지 소문난 명품으로 대접받았다.

게다가 통영의 아름다운 풍광과 온화한 기후는 명품 공예가 수 백년을 이어져 올 수 있는 예술적 자양분이 되었음이 자명하다. 이 작은 고을에서 무려 12가지 공예가 피어나 만발한 연유에 대해 통영 출신인 박경리 작가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 서문에서 이렇게 짐작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 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바닷빛이 고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롭던 통영의 전통 공예는 이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마음에도 한 점 깃들지 못할 정도로 그 찬란했던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갓, 소목, 장석, 소반, 연 등 오늘날 쓰임이 적은 전통 공예에 해당한다. 찾는 이가 드물어 애써 보존해야 하는 분야에 대해 투자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여전히 통영 땅에서 스스로 공예가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분들에 대한 응원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고리타분하게 박제된 전통이 아닌 오늘의 공예를 꽃피우고 있는 예술가들 말이다. 이번 지면을 통해서는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온 세 분의 작가를 소개하지만 사실 통영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았을 때 경상도식 과장을 보태 ‘천지빼까리’(너무 많아서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는 의미)라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그 작은 고장에서 공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먼저 통영 누비에서 예스러움을 걷어내고 모던한 색상 조합과 현대의 쓰임에 맞는 누비 제품을 소개하는 정숙희 작가를 만났다. ‘누비혼’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며 통영 누비에 다양한 아이디어와 디자인를 접목하고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는 활기가 넘쳤다. 누비 클러치와 안대, 여권 지갑 등으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스타상품개발작가로 2016년 선정된 이후 국내외 고객에게 통영 누비를 알리는 역할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올해는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인테리어 소품 전시인 ‘메종&오브제’에 단독 전시로 참가하는데 김주일 디자이너와 협업한 누비화병과 더불어 색 조합이 경쾌한 명주누비조각가방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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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구, 누비 클러치, 나전 베갯모

전통 목가구의 짜맞춤 기법으로 제작한 강동석 작가의 옷장과 서랍장. 박효성 제공

조선 선비들의 로망이었던 사랑방 가구를 만들었던 통영 소목장의 후예라 할 수 있는 강동석 작가는 바닷가 사람 특유의 고집과 대범함을 바탕으로 남쪽 바다의 온화함까지 담은 목가구를 느긋하고도 치열하게 만든다. 한국 전통 짜맞춤 가구 제작법을 익힌 뒤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가볍지만 견고하게 완성하기 위해 느긋하게 공들여 매만진다. 특히 사방탁자 같은 조선 시대의 사랑방 가구가 가진 비례의 심미를 자신의 작업에 오롯이 담기 위해 바른 인간이 되는 공부, 인문학을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다고 말하는 그이기에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여전히 젊은 목수다.

명실공히 통영 공예의 상징인 나전을 빼놓을 수 없어 신미선 작가를 만났다. 11년 전 취미삼아 시작한 통영나전칠기교실의 첫 수업부터 가슴이 두근댈 정도로 나전과 옻칠에 푹 빠져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적인 감성과 남다른 감각을 더해 옻칠과 나전의 쓰임을 넓혀가는 작품들을 선보였고, 각종 공모전에서 꾸준히 좋은 상을 수상하며 전통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가고 있다. 통영 바다를 한 평생 곁에 둔 덕분에 바다와 섬, 배를 옻칠로 표현한 향꽂이가 만들어졌고, 나전 베갯모를 더한 낮잠용 메밀 베개도 참신하고 아름답다.

베갯모를 옻칠과 나전으로 장식한 신미선 작가의 메밀 베개 ‘잠’. 박효성 제공

이 글은 일종의 반성문이다. 공예에 열광했지만 고향의 공예에 무심하고 무지했으니 말이다. 참회의 마음으로 여름 휴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통영 공예 여행을 추천할 셈이다. 케이블카, 루지, 동피랑 같은 유명한 관광지 대신 통영 사람들이 빚어낸 삶의 예술을 향유하는 여행이다.

소목과 소반, 발, 나전 등 통영 공예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통영시립박물관 2층 공예실 전경. 통영시립박물관 제공

먼저 통영시립박물관 2층에 위치한 공예실을 한 바퀴 돌며 통영 공예를 한 눈에 파악한 뒤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 예술 기행>, <대한민국 도슨트, 통영> 이 두 권의 책을 참고 삼아 ‘느릇느릇’ 거닐면 충분하다. 짙푸른 물빛과 올망졸망한 섬들, 맛있고 싱싱하기로 유명한 통영의 제철 해산물은 그저 덤이다.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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