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주의보 ‘453번’…이번 ‘장마 처방전’ 받아봤더니

김진호 2023. 7. 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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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장마철 호우주의보 453번

'엄청난', '역대급', '심각한', '어마어마한', '굉장히'...

이런 표현, 과학자들이 자주 쓰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말을 '과학적인' 표현으로 쓰기엔 거리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어제(28일) 열린 <2023년 7월 수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라는 토론에서는 전문가들마다 이런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그만큼 전문가들도 이번 장마를 한 가지 표현으로 정리하기엔 쉽지 않았다는 말일 겁니다.

실제로 이번 장마철에는 호우주의보가 453번 내려졌습니다. 호우경보는 139번 내려졌습니다. 호우주의보는 3시간 강우량이 60mm이상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우량이 110mm이상 예상될 때, 호우경보는 3시간 강우량이 90mm이상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우량이 180mm이상 예상될 때 발령합니다.

그만큼 이번 장맛비가 심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 먼저 나온 지적은 '경각심'입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호우주의보는 정말 위험할 때 나오는 예보고, 기준이 맞으면 당연히 나오는 그런 주의보로 인식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호우특보가 자주 발령된다고 해서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실제 올 장마기간 동안 특보가 발령됐음에도 물이 불어나는 하천 근처를 서성이거나, 도로에서 차를 모는 등 위험한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손 교수는 "실제로 비가 누적됐을 때 더 피해가 심각한데, 오히려 경각심은 떨어지니 더욱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제(28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 〈2023년 7월 수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지천·지방하천 너무 넘쳤다...지자체 능력 올려야

문제는 지천과 지방하천이었습니다. 무려 하천범람이 1,207건을 기록했습니다. 그 중 소하천 범람은 728건에 이르렀습니다. 소하천은 하천법에 적용받지 않는 수준의 작은 하천입니다. 사실상 이번 기록적 장마에 가장 약한 고리였습니다. 여기에 제방이 유실된 경우는 255건이었습니다.

정창삼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1200건 넘는 하천범람 피해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먼저 지자체 하천관리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정 교수는 "하천 1km 공사하는데 100억 원 가량 드는데, 지자체가 무슨 돈으로 이걸 다 하겠나. 수해를 수습하고 예방하기엔 너무 큰 일이 벌어져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강이 흐르는 여주시에서는 하천 구간 200여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걸 12명 공무원이 처리하고 있는데요. 예산이나 인력이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정 위원의 판단입니다.

환경부 하천홍수위험지도를 최대로 확대한 모습


■'홍수위험지도'만 잘 활용해도...

환경부에서 작성하는 '홍수위험지도'가 대책으로 몇 차례 나왔습니다. 특정 조건에서 얼마나 물이 넘치게 되는지 나타낸 지도입니다. 하천에서 물이 넘치는 경우엔 '하천범람지도'를 확인해야 하고, 강한 비가 내려 배수가 잘 되지 않아 침수되는 경우는 '도시침수지도'를 봐야 합니다.

이상호 한국수자원학회장은 "오송 지하차도 사례도 홍수위험지도로 미리 침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었던 사고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홍수위험지도에는 오송지하차도가 침수 위험 지역에 포함됩니다. 이 회장은 "전국을 대상으로 침수 위험이 있는 지하차도를 모두 식별해내야 하고, 홍수 위험지도는 확장시키고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홍수위험지도만 잘 활용해도 어느 정도 수해를 대비할 수 있었을 거라 설명입니다.

정 위원도 홍수위험지도를 지목했습니다. 정 위원은 "일본에선 부동산 거래시 홍수위험지도상에서 얼마나 침수 위험이 있는지 통보하는 게 의무"라며 홍수위험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홍수위험지도 정보가 일상적으로 접근 가능해지면, 그만큼 수해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란 분석입니다.


■사고 나면 '문책'만...사고 예방도 보상 해야

또 한 가지 내용은 '재난' 분야 전체에 통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장마에서도 국무조정실 등이 36명을 수사의뢰했습니다. 징계 조치할 공직자도 63명입니다.

최상현 힌국방재학회 회장은 "사고가 난 곳의 관련자가 이번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면서도 "자연재해를 예방했을 경우에 대한 보상은 미흡한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최 회장은 "방재시설이 적절히 설치됐을 때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그 효용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적절히 대비하지 못했을 때 벌을 주는 것과 함께 적절한 대비를 했을 때 상을 주는 것도 재난을 막는 힘을 기르는 포인트라는 소리입니다.

■"결국엔 예산 늘리고, 인력도 끌어와야"...가능하려면

대부분의 재난은 인재라고 합니다. 인재를 막는 건 궁극적으로는 '돈'과 '사람'으로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하천 설계 기준을 기존 200년 빈도에서 500년 빈도로 강화해야한다는 것, 다수 지방하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시켜 관리하고 복구 중심 예산 배정을 예방 중심으로 바꿔가며 대심도터널과 신규댐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 등이 대책으로 제시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안은 홍수저감 효과가 확실한만큼 공사비와 유지관리비는 많이 듭니다. 무엇보다 환경문제가 제기됐을 때 갈등이 커지고 조정되기는 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물 관리'를 맡고 있는 환경부 역할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정 위원은 "환경부가 행안부처럼 지자체와 밀접하게 소통하며 갈등을 조정할 수 있을지, 국토부와는 얼마나 협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8일 기준으로 1369명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만이라도 '중구난방식' 대책 없었으면"

마지막으로 이번만이라도 '중구난방식' 대책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학계에서 의견을 내왔지만 실제로 해결책으로 적용되지는 못했던 과거를 수차례 봐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토론회 뒤엔 "수많은 분야별 전문가 의견들을 하나로 모아 정책 결정자에게 전달하는 일이 제일 어렵더라"라고 말하던 한 전문가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비로 사망·실종자 50명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전문가들의 '처방전'보다 중요한 건 다시는 '심각한, 엄청난, 어마어마한' 재난을 또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정책 결정자의 의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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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기자 (hi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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