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18) 피란민 상처 보듬은 서전병원

차근호 2023. 7.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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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하자 스웨덴은 우리나라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기로 최초로 결정한 나라다.

서전 병원에서는 전쟁 초기 총상과 화상, 생명이 위독한 부상병에게 응급처치와 수술 등의 의료를 제공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서전 병원에는 150명으로 구성된 1차 의료진을 시작으로 6년이 넘는 기간 1천124명의 의료진이 파견돼 200만명의 환자에게 무상진료를 펼쳤다"면서 "6·25로 인해 생긴 상처를 보듬은 곳이 바로 서전 병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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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서 1천124명의 의료진 파명, 200만명의 환자 무상진료해
1950년대 스웨덴 적십자 병원 모습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6·25전쟁이 발발하자 스웨덴은 우리나라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기로 최초로 결정한 나라다.

29일 부산연구원 등에 따르면 스웨덴 적십자 의료지원단 선발대는 1950년 8월 24일 스톡홀롬에서 출발해 미국과 일본을 경유해 같은 해 9월 23일 부산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틀 후 현재 서면 롯데백화점이 있는 옛 부산상고 부지에 야전병원을 세우고 진료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스웨덴의 한자식 표기에 따라 '서전 병원'이라고 불렀다.

서전 병원에서는 전쟁 초기 총상과 화상, 생명이 위독한 부상병에게 응급처치와 수술 등의 의료를 제공했다.

그러다가 1951년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부상병 숫자가 감소하자, 민간인 구호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들은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를 찾아 환자들을 돌봤고, 당시 나환자촌이 있었던 용호동 용호농장 등을 방문해 구호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는 1955년 부산수산대학교로 병원을 이전해 1957년 4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계속 환자를 돌봤다.

의료부대가 떠나고도 일부 의료진은 국내에 잔류하면서 한국 의사와 함께 결핵 퇴치사업을 펼쳤다. 덴마크·노르웨이 등과 협조해 서울에 국립의료원을 설립하는 등 한국 의학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유엔평화기념관, 의료참전국 스웨덴·노르웨이 참전용사 촬영 사진 공개 (부산=연합뉴스) 유엔평화기념관이 6·25 전쟁 소장품 모으기 캠페인에서 수집한 의료참전국 스웨덴·노르웨이 참전용사가 촬영한 사진을 정전 7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에 26일 일부 공개했다. 사진은 수술 중인 스웨덴 의료진 모습. 2023.7.26 [잉바르 스벤손(Ingvar Svensson)·유엔평화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피란민들은 이 서전 병원에 대한 특별한 고마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부산시가 발간한 구술 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에는 피란민 류모씨의 서전 병원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다.

류씨는 어린 시절 버려지다시피 서전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고 한다.

이때 류씨의 곁에서 어머니 같은 사랑을 준 사람이 스웨덴 병원에서 일하던 '에바'였다고 한다.

류씨는 "에바가 출근할 때 품에 안겨 입원실로 가서 치료받고, 퇴근할 때 품에 안겨 관사로 돌아왔다"면서 "나에게 에바는 '엄마'의 의미였고, 그래서인지 아프거나 힘들 때면 엄마라는 말보다 '에바'라는 말을 먼저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3살 때 저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스웨덴에서 온 의료진을 만나서 지금까지 부여받은 생명으로 60년을 더 살았다"면서 "태어나서 3년을 부여받은 한국보다는 스웨덴의 배려로 살게 된 세월이 더 커 스웨덴은 나의 두 번째 조국"이라고 말했다.

서전 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피란민 김모씨도 당시 자신을 "베이베, 베이베"라고 부르며 예뻐하던 예순이 넘는 스웨덴 출신 간호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김씨는 "우리가 '마마'라고 부르면서 가지 말라고 같이 있자고 이야기했다"면서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뵀으면 좋겠다"고 추억하기도 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서전 병원에는 150명으로 구성된 1차 의료진을 시작으로 6년이 넘는 기간 1천124명의 의료진이 파견돼 200만명의 환자에게 무상진료를 펼쳤다"면서 "6·25로 인해 생긴 상처를 보듬은 곳이 바로 서전 병원"이라고 말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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