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CH MAN KILLS THE THING HE LO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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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라고 했다. 거기서 생 로랑의 ‘멘즈 2024 S/S’ 쇼가 열릴 거라고 했다. 살짝 두근거렸다. 개인적으로는 만 20년 만에 방문하는 도시이고, 안토니 바카렐로가 이끄는 생 로랑 무드와도 어딘가 모르게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래식과 모던이 공존하고, 과거와 현대가 뒤섞여 꿈틀거리며, 예술과 문화가 가장 자유롭게 출렁대는 도시, 베를린. 그곳에서 과연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는 무엇을 끄집어내고,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생 로랑 멘즈 2024 S/S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라고 했다. 이름만 들어선 국립 미술관 정도로 흘려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라는 건축가 이름이 곁들여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잘 모를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또 다른 수식어를 붙여보자. 르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세 명은 20세기 건축의 거장이라 불린다. 특히나 미스 반데어로에는 20세기 (우리가 흔히 아는 고층 건물을 칭하는) ‘마천루’의 왕이라 수식되는 위대한 건축가다. 그런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게 바로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다.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와 모던 패션의 정점을 이뤄낸 브랜드가 만났다. 이제 부풀어 오른 기대감은 폭발 직전에 이른다.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의 강인하지만 속내를 다 드러낸 구조물 속으로 발을 들이면, 석양의 노을을 일출의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거대한 라이트가 실내를 비춘다. 여기서부터 생 로랑 멘즈 2024 S/S 쇼의 서사가 시작된다. 마천루의 왕이 디자인한 건축물은 강렬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분출되는 생 로랑의 에너지는 너울거리는 실크 스카프의 그것처럼 부드럽다. 베를린의 태양은 어둠 속으로 함몰되지만, 생 로랑의 태양은 힘차게 솟구쳐 오른다. 낮과 밤의 미묘한 경계가 쇼 내내 지속된다. 그 팽팽한 긴장감이야말로 안토니 바카렐로가 그려낸 서사의 귀결이 아니었을까 싶다.
생 로랑 멘즈 2024 S/S 내러티브의 핵심은 바로 ‘실루엣’이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창조되는, 대부분 이미지의 재현으로서 접해온 실루엣 효과를 그 시각의 타임라인 속에 실재화했다. 그 실루엣 사이로 젠더의 경계는 조심스럽게 사라지고, 극대화된 생 로랑 특유의 컬렉션 피스는 빛과 그림자 속에서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내재한 실루엣을 생성해냈다. 이번 쇼는 이 핵심을 바탕으로 기존의 생 로랑을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안토니 바카렐로의 독창성이 특징이다.
재킷은 여전히 과장되고, 팬츠는 한없이 높아졌다. 그간 친숙했던 폴카 도트와 레오퍼드 프린트에 간간이 뒤섞인 스트라이프는 꽤나 강렬한 느낌마저 준다. 이건 클래식이 진취적 미래를 탐험하려는 일종의 모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탐험을 위해 안토니 바카렐로는 모던의 역사를 간직한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강한 철근 프레임을 뚫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사랑한 것들을 희생시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Art direction Anthony Vaccarello Producer OSMAN ÖZEL Soundtrack Akikor
Editor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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