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전담반SIU]⑥ 산부인과에서 벌어진 100억원대 사기… 설계사 협박에 넘어간 환자들

진상훈 기자 2023. 7.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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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병원 사무장 공모로 시작
환자에게 보험금 10% 넘기고 ‘공범’ 협박
‘이쁜이 수술’ 후 도수치료로 보험금 청구도
그래픽=손민균
“한 곳의 산부인과에서 며칠 동안 수십 건의 보험금 청구가 들어왔다. 그것도 똑같은 질병 때문에 수술을 받고 도수치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보험금을 청구한 사람은 하나같이 치료비를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했다. 마치 사전에 치밀하게 교육을 받고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패턴이 똑같았다.”

지난해 A손해보험사 보험사기 특별조사팀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의 김모 팀장은 보험금 지급팀으로부터 조사 의뢰를 받았다. 충남 천안시에서 갑자기 다량의 산부인과 치료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보험금 청구가 접수됐는데, 보험사기의 정황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조사에 착수한 김 팀장이 보기에도 수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보험금 지급을 요구한 여성들은 대부분 신용카드 결제 명세서가 아닌 현금 영수증을 첨부해 서류를 제출했다. 게다가 청구인들이 모두 천안시 서북구에 있는 B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왜 신용카드 대신 현금으로만 결제를 했느냐는 질문에 병원 측이 “현금으로 결제하면 할인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 점도 궁색하고 허술하게만 보였다.

보험사기임을 직감한 김 팀장과 A손해보험사 SIU는 직접 B산부인과로 출동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수개월 동안 병원 곳곳에서 잠복해 환자들과 접촉하는 보험설계사, 손해사정인 등을 빠짐없이 관찰했고, 이 중 몇 명의 설계사들이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 직원들과 유독 자주 접촉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SIU는 병원에서 이 설계사들을 접촉한 환자와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이들 중 몇 명은 결국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편취하려는 사기에 가담할 것으로 요구받았다고 털어놨다. 설계사 10명, 병원 사무장과 간호사 3명, 소비자 300여명이 가담해 편취를 시도한 금액 규모가 100억원대에 이르는 대형 보험사기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 “돈 받았으면 공범이죠, 고객님”…보험금 10% 넘겨주고 협박

사기는 지난 2021년 한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 설계사 C씨와 B산부인과 사무장이 공모해 시작됐다. C씨는 사무장의 도움을 받아 허위 진단서와 수술 확인서 등의 서류를 만들어 가입자 몰래 A손해보험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실손보험을 통해 산부인과 수술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들이 보험사기에 주로 활용한 것은 ‘하이푸(HIFU)’라 불리는 자궁근종시술이었다. 하이푸란 초음파를 자궁 내의 제거할 종양에 집중시켜 종양을 태워 괴사시키는 시술로, 자궁적출 수술과 달리 마취와 절개가 필요하지 않은 치료법이다. 이 시술은 과거에는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었지만, 보건복지부가 신(新)의료기술로 등록하면서 실손보험 청구 대상에 포함됐다.

설계사 C씨는 전산을 통해 적게는 5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된 것을 확인한 직후 가입자에게 접근해 통장에 들어온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보험사 착오로 보험금이 다른 계좌로 잘못 입금됐다”라며 “회사에 환입을 해야 하니 돈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C씨는 가입자 계좌에 들어온 보험금 중 90%만 챙겨갔다. 착복한 돈은 사무장과 나눠 가졌다.

SIU 관계자는 “설계사 보험금 10%를 가입자 계좌에 남겨둔 것은 공범을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라며 “가입자가 범죄 사실을 눈치채도 보험사기 공범으로 엮일 것을 두려워해 외부에 알릴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가입자들은 받은 보험금을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C씨는 보험사기로 수사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협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C씨와 사무장은 SIU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보험 가입일과 청구일의 간격을 일부러 멀리 떨어뜨리는 치밀함도 보였다. 보통 보험에 가입한 지 30일이 경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금을 청구하면 ‘근접 사고’로 분류돼 SIU의 조사 대상이 된다. 이들은 이를 고려해 보험 가입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에 허위 서류를 만들어 보험금을 청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오히려 SIU가 보험사기 시도임을 눈치채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B산부인과 한 곳에서 나온 여러 건의 보험금 지급 청구가 대부분 가입일과 청구일 사이 간격이 3개월 정도로 일정해 SIU의 의심을 산 것이다. 완전 범죄를 위해 설계한 시도가 되려 자신들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 ‘이쁜이 수술’ 후 도수치료라 속여 보험금 타내기도

가입자들을 공범으로 엮으면서 보험사기를 통해 제법 큰 돈을 벌어들인 뒤 이들은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다. C씨는 동료 설계사들을 꼬드겨 보험사기에 가담시켰고, 병원 간호사들도 동참했다. 설계사들의 유혹에 협박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가입자도 생겼다.

사기 방식도 점차 대범하고 다양하게 진화했다. 초반에는 대부분 하이푸 시술을 통한 허위 청구에만 집중했지만, 나중에는 도수치료를 주로 이용했다. 여성들이 출산 등으로 늘어난 질의 크기를 줄이는 수술, 이른바 ‘이쁜이 수술’을 받은 뒤 도수치료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보험금을 청구한 것이다.

질 축소 수술 비용을 돌려받으려는 욕심에 이들의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가입자도 많았다. 조사 결과 한 소비자는 영수증을 나눠 무려 100회에 이르는 도수치료 비용을 청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A손해보험 SIU에 의해 보험사기 정황이 포착된 것도 이들이 청구한 도수치료 비용이 전부 현금으로 납부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했기 때문이었다.

SIU는 몇 달에 걸친 조사를 통해 확보한 환자, 가입자들의 진술과 사진, 보험금 지급 청구서 등 모든 자료를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C씨와 사무장의 공모로 시작된 보험사기에 가담한 설계사와 소비자, 병원 관계자를 보험사기특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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