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잇수다] "죽어!" 새벽 덮친 '묻지마 범죄' 공포.. 안전지대가 없다
제주에서도 유사 범죄 반복돼
조현병, 우울증, 불만, 주취 상태
법원서는 참작 요소 반영되기도
묻지마 범죄 정립된 개념 아냐
체계적 대응 한계.. 대응 시급
[법잇수다는 별의별 사건 중 화제가 되거나 의미 있는 판결을 수다 떨 듯 얘기합니다. 언젠가 쏠쏠하게 쓰일 수도 있는 법상식도 전합니다.]
여성의 귀에 “죽어라!”는 목소리가 들린 후 벌어진 일은 순식간이었습니다. 다짜고짜 남성이 길을 걷던 여성을 넘어뜨리고 무차별 폭행했습니다.
이를 말리던 행인에게도 주먹질했습니다. 인근에서는 부서진 차량이 발견됐습니다. 모두 폭행을 휘두른 남성이 저지른 묻지마 범죄였습니다.
■ 새벽시간 일면식 없는 사람 노렸다 ‘공포’
지난해 7월 새벽 제주의 한 길거리. A씨는 술에 취해 아무런 이유없이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길을 걷던 여성에 “죽어라” 소리쳤습니다.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수차례 때렸습니다. 또 여성을 넘어뜨려 폭행을 이어갔습니다. 발로 머리를 차고 짓밟기까지 했습니다.
무고한 피해자는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머리를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상처보다 피해자가 받았을 정신적 공포가 더 깊었을지도 모릅니다.
A씨의 묻지마 범죄를 제지하려던 행인도 폭행을 당했습니다. 또 파이프를 가지고 길거리에 주차돼 있던 차량도 부수고 다녔습니다.
뒤이어 출동한 경찰에 붙잡힌 A씨.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무엇인지 기억을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였습니다. A씨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묻지마 범죄 중대성 강하게 경고한 법원
법정에 선 A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법원은 A씨의 묻지마 범죄를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엄벌이 필요하다 강조했습니다.
법원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범행에 대처하기 어려워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법원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만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과도 합의했다”고 A씨의 사정을 참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음주 습관 등을 개선하고 원만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 묻지마 범죄 ‘도대체 왜’.. 재범률 70% 실화?
묻지마 범죄에 정형화된 유형이나 패턴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다 보니 그 동기를 규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범행 당시 범죄자의 상태도 A씨처럼 술에 취해 저지르거나 현실에 대한 불만,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질환 등으로 가지각색입니다.
지난 1월 제주시청 인근에서 돌로 행인의 얼굴을 아무런 이유 없이 가격해 얼굴뼈를 골절시킨 20대는 외상 후 스트레스같은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열람시스템을 통해 도내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를 확인해 보니 처지를 비관하거나 조현병, 우울증, 술에 취해, 심신미약 등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실시한 묻지마 범죄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가해자의 재범률이 70%를 웃돈다고 합니다.
■ 묻지마 범죄 ‘안전지대는 없다’.. 처벌은?
제주 역시도 묻지마 범죄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셈이죠. 심신이 온전하지 않았다고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심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다는 점은 양형 참작, 감형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됩니다.
A씨만해도 법원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습관을 개선토록 기회를 주는게 합리적이라 판단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한 점도 양형에 반영이 됐습니다.
돌로 행인의 얼굴을 가격한 20대 역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습니다. 법원은 외상 후 스트레스 받아왔던 점, 초범인 점, 만취 상태였던 상황 등을 참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처벌이 너무 약하니, 재범이 발생하는 것” “술에 취했다고, 정신질환이 있다고 참작하면 피해자는 무슨 죄냐”는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생명 앗아간 묻지마 범죄.. 대책 만들기도 어렵다니
여기에 신림역 일대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으로 1명을 사망하게 한 조선(33)의 범죄까지 터지면서 논란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유사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불안감은 커지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어보입니다. 묻지마 범죄는 수사기관이 집계하는 별도의 통계도 없습니다.
대검찰청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준비했던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70건 발생했다는 자료가 전부입니다.
경찰은 지난해 초 범행 동기나 범행 대상에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범죄 사건, 이른바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하고 사례 관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대책은 사실상 없습니다. 묻지마 범죄가 정립된 개념이 아니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생하는 특성상 대비책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경찰의 손에만 맡길 게 아니라 법무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됩니다.
도내 한 변호사와 경찰 관계자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범죄의 유사성이나 특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예방대책이든 재범 방지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JIBS 제주방송 정용기 (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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