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힘으로 바꾸는 마을... 희망 꽃 피운다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주민 제안도 전년比 3배 증가 “호혜적 관계, 사회 문제 해결”
주민이 이용할 편의 시설이 부족하고 방치된 공원이 즐비했던 안산시 상록구 일동. 주민들은 행정이 나서지 않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2005년 ‘울타리 너머’라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동네 특성상 초등생 자녀의 돌봄도 주요 문제로 떠오르자 이들은 직접 방과 후 교실을 만들고 안전한 통학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공원에 페인트칠도 새로 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자 마을은 새 옷을 입은 듯 밝아졌다.
주민 김영은씨는 “뜨내기 주민이 많았는데 공동 돌봄과 천연화장품 만들기 등 활동을 이어가면서 동네에 정착하는 주민이 많아졌다”며 “정원을 만들어 마을 외관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의 힘으로 마을을 바꾼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구 청천동·산곡동의 ‘뫼골마을공동체’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마을공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길러오고 있다. 1998년 IMF경제위기로 마을이 피폐해지자 마을 청년들이 경로잔치, 바자회 등을 열면서 마을 복원을 위한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밑반찬 만들기’, ‘홀몸노인 돌봄 사업’, ‘어르신 한글교실’ 등의 활동을 이어가다 사회적기업 법인을 만들어 2013년부터 ‘뫼골문화회관’을 직접 운영 중이다.
이곳에선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마을의 크고 작은 문제를 직접 풀어낸다. 회관 1층엔 저렴한 가격, 편안한 소통공간을 내세운 카페를 운영해 1년에 3만5천여명의 이용자를 모아 지역의 명물로도 자리매김했다.
지역과 마을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생기를 불어넣는 ‘마을공동체’가 지역사회 소멸을 막을 대안이 될지 주목된다. 마을공동체는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주민이 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안을 제시해 마을 특성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지난해 경기도 마을공동체는 663개로, 사업을 시작한 지난 2015년(205개)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관한 주민 제안 역시 지난 2015년 178건에서 지난해 611건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인천시의 마을공동체 사업도 최근 5년간 326곳이 증가했다.
마을공동체는 급격한 도시화·산업화 등으로 생긴 환경파괴, 사회 양극화, 주민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마을 주민이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확산 속도가 빠르고, 정책의 규모도 커졌다.
이호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 외래교수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양극화와 단절, 고립이 만연한 시대에 지역의 특성을 살린 마을공동체는 상호 호혜적인 관계망을 구축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마을공동체 위해… ‘자생력’ 필수
마을공동체가 도시 재생의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공동체의 지속 운영 등 사후관리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지자체별 시행하는 보조사업의 특성 상 단기 사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마을공동체 주민들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모델을 만드는 등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에서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은 1년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와 각 시·군의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하고 있는 ‘마을종합 지원 사업’은 3년 단위의 사업이다. 이들 사업은 동일한 마을공동체가 다시 지원할 수 없다.
인천의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도 대부분 1년 단위로 단체를 모집한다. 마을만들기 유형에 따라 2~3년 단위의 추가적인 사업을 받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단기 사업에 그친다.
이에 단기성 사업이 끝난 뒤엔 주민들이 자체 비용을 투입해 마을공동체와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데, 비용 투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사업에 따른 인프라가 방치되는 등 문제가 불거진다.
지자체의 예산까지 감소하고 있어 마을공동체의 활성화, 지속성은 더욱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경기도 마을공동체 사업비는 총 289억1천만원으로 지난해(302억5천만원) 대비 4.4% 줄었다.
특히 마을공동체가 각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보니, 지방보조금법상 인건비 지급 등을 규정할 수 없어 공동체를 꾸준히 이끌어 갈 활동가를 배치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회비를 걷거나 펀딩을 통해 사업비가 없어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경비를 확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에서 10년 넘게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힘써온 박미정 마을활동가는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경우 일정 기간 이상의 지원이 안 되다 보니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허탈감,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며 “마을별로 호흡에 맞는 지원 사업들이 많아져야 한다. 각 마을공동체 주민들이 자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사업 형태와 예산 규모를 지자체에 역으로 제안하는 방식으로 개선이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공유 공간 등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도내에서 39곳의 공유공간이 있으나, 도내 13개 지자체에 몰려 있고 연천군, 포천시, 동두천시 등 18곳엔 1곳도 없는 상황이다.
인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천시가 지난 2015~2023년까지 지원한 마을공동체는 약 700여곳에 이르지만, 현재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공동체 수는 350곳으로 절반 뿐이다. 나머지 350여곳은 행정의 지원 없이 자생해야 하는 꼴이다.
인천 부평구의 이충현 ㈔우리동네희망마을 대표는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단기적인 사업으로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하현상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형태로 강의 및 교육이 반복되면 주민들이 이 사업이 왜 좋은지, 왜 이 사업이 우리 동네와 어울리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형식적인 참여만 이뤄진다”며 “지역 특성에 맞는 자원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특히 동일한 사업을 매년 반복적으로 지원하진 않더라도 지원의 폭을 점차적으로 줄여가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쿠션 역할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인천시 관계자는 “상위법이 없어 예산과 인력 지원에 어려움이 크다”며 “마을공동체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다른 부서의 보조사업을 연계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관계자는 “현재 중앙 컨트롤타워가 없어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라며 “지자체별 조례에만 의지해 예산을 짜는 등 각 시·군의 자율성에 맡기고 있는 실정인데, 보다 효율적인 지원책을 찾기 위해 내년도 중간지원조직 운영 방안 등에 대한 개선책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박귀빈 기자 pgb028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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