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추모하는 여야 지도부의 이름들…‘교권 보호’ 길은 어느 방향으로 가나
‘애도 물결 거센 이유’ 묻는 한국교총 설문조사도…‘내 일처럼 여겨서’ 등 답변
당정, ‘교권 보호 및 회복 방안 관련 협의회’ 열어…서울시의회 국민의힘도 관련 조례안 발의
일부에서는 교권과 학생의 인권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앞서 지난 28일 오후 1시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 인도는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 A씨 추모 근조 화환으로 빽빽했다. 학교 담장을 따라 둘러서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
같은 날 서이초에서 직선거리로 3㎞가량 떨어져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마당에도 근조 화환 약 300개가 들어섰다. 지원청 정문을 들어서자 오른편에는 분향소가, 왼편에는 추모 글이 적힌 포스트잇 메시지들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부 메시지는 추모객의 눈물로 젖은 듯 잉크가 다소 번졌다. 지원청 건물 출입문 양옆에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보내온 근조바구니 등도 나란히 놓였다.
교육지원청에 지난 20일 마련된 분향소의 공식 운영은 이날 오후 4시에 끝나지만 현장의 한 관계자는 ‘오후 6시가 지나서까지도 운영될 수 있다’는 취지로 전했다. 분향소 정리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계속 추모객을 받는다는 의미로 들렸다.
◆터져 나온 교사들의 울분…‘악성 민원 개선 위해’ ‘내 일 같이 느껴서’
A씨 추모와 더불어 정확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를 위해 교사들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자발적으로 집회를 열었다. 교권 침해 실태 발언이 이어졌고, 29일 오후에도 500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는 추모식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 예정됐다.
터져 나온 교사들의 울분은 교사 단체 등이 개설한 홈페이지에서도 들끓었다.
경기교사노동조합이 최근 개설해 수천 건의 ‘학부모 갑질 민원’ 피해 주장 글이 올라온 홈페이지에는 ‘결혼 계획 있으면 방학 때 하세요’, ‘코로나19로 원격수업해도 월급 나오니 좋으시겠어요’, ‘선생님 전화 안 받으시네요, 제가 교장실로 갈까요’ 등의 말을 학부모에게 들었다는 교사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이 홈페이지는 문을 연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마비돼 결국 문을 닫고 설문조사 답변을 제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만든 ‘교권 보호, With you’ 홈페이지에도 ‘학교 어디 나왔냐’는 말을 학부모에게 들었다는 글부터 ‘학부모 공개 참관 수업을 없애 달라’는 등 갖가지 호소가 올라왔다. 학부모 공개 참관 수업을 없애고 싶다는 이는 ‘학부모들이 교사의 외모를 평가했다’며 이유를 댔다.
교사들의 애도 물결이 거센 이유를 물은 현직 교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한국교총이 지난 25~26일 전국 유·초·중·고 교원 등 총 3만29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 교권 침해 인식 및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교원 설문조사’에서 ‘전국 교원의 조의와 애도 물결이 거센 이유’ 관련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27.0%가 ‘악성 민원과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생활지도권 부여 등 제도 개선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어 ‘내 일 같이 느껴서(25.5%)’, ‘교육현실을 정확히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12.7%)’, ‘정확한 진상조사를 통한 재발 방지가 필요해서(12.2%)’ 등 순이었다. ‘언젠가 발생할 비극이 실제로 나타나 충격이 커서’라는 답변 비율도 11.4%로 나타나 결코 적지 않았다.
◆당정, 교권 침해 행위 생활기록부 기재 등 법안 개정 적극 추진
윤석열 대통령의 학생인권조례 재정비 지시에 이어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권 보호 및 회복 방안 관련 협의회’를 열었다.
당정은 중대한 교권 침해 행위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안, 교사의 생활 지도에 아동학대 면책권을 부여하는 초·중등교육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등 교권 회복을 위한 법 통과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진보 교육감들 주도로 7개 시·도교육청에서 도입된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추진하겠다면서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도 27일 교권 강화를 위해 ‘서울특별시교육청 공무원의 예우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조례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학생 보호자 등 민원인이 교사에게 직접 민원을 넣을 수 없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안은 학교장이 대신 민원을 온라인으로 통합 관리하며 명예훼손 등 법령위반 소지가 있다면 수사기관에 고발하도록 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린 교사가 심리 상담 받거나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교육청에 비용을 요청할 수 있고, 교육청은 해당 비용을 민원인에게 사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아울러 교육 당국이 꾸린 합동조사단 활동은 내달 초까지 연장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 관계’ 아냐 목소리…‘학부모 책임’ 강조 움직임도
일부에서는 자칫 교권과 학생의 인권이 대립하는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며 정부의 이번 사건에 관해 신중한 움직임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정부의 학생인권조례 개정 움직임을 비판하고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제로섬 게임'을 하는 공간이 아니다"라며 "교권과 학생 인권은 저울추의 반대편에 있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신장되어야 할 가치"라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흔들리는 교육현장에 대한 국민의 공분을 돌리려 교사와 학생을 편 가르고 싸우게 하는 것은 정말 나쁜 어른의 정치"라며,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대한민국 교육현장을 과거로 퇴행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BBS 라디오에 출연해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확립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면서, "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추락했다고 등식을 보는 건 너무 이분법적"이라고 짚었다. 조 의원은 "교권도 확립하고 학생들의 인권도 보호할 것은 보호해야 한다"며 "과도한 체벌 등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므로 이런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맞서는 게 아니며 한쪽 권리를 내세우고 다른 쪽 권리를 깎아내려선 안 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교권과 학생의 권리는 공존 가능하며,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 신뢰를 유지하자는 메시지다.
한편,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SBS 라디오에서 “학생들의 책임도 강화하면서 학부모님들도 그 학생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정신이(제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경기도교육청 기자회견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모든 학생의 학습권 및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방향으로 전면 개정하겠다”고 우선 밝힌 바 있다.
도교육청은 ‘학생 및 보호자는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다른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육활동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포함할 방침이다. 학생 훈육 방식에 ‘학부모 교육’을 포함해 학부모의 교육적 책무도 강화할 예정이다. 제도적 장치보다는 교육적 해결이 우선되어야 하고, 인성교육을 이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 그 과정에서 학부모가 학생의 행동을 함께 책임지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임 교육감의 생각으로 풀이된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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