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N회차’로 산다면?···‘재벌집 막내아들’보다 더 소중한 것[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30대의 시청 공무원인 아사미(안도 사쿠라)는 소꿉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길 그만 트럭에 치여 죽고 맙니다. 눈을 떠보니 세상은 온통 하얀색. 안내 데스크의 남자는 저쪽 문을 가리키며 바로 다음 생을 시작하라고 일러줍니다.
그런데, 다음 생은 ‘과테말라 남동부의 큰개미핥기’랍니다. 젊어서 죽는 것도 억울한데 개미핥기라니···망설이는 아사미에게 남자는 ‘인생 2회차’라는 선택지도 있다며, 덕을 많이 쌓으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개미핥기냐, 다시 살기냐. 그의 선택은?
일본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는 아사미가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 인생을 다시 살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덕을 쌓아 다음 생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2회차 인생의 목표입니다. 과거의 기억과 성인의 지력을 가진 아사미에게 두 번째 유년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저 어른들이 놀라지 않도록 어린 아이 연기를 충실히 할 뿐이죠. 하지만 이전 생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사미의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유치원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 아버지 사이의 묘한 기류 같은 것들이요. 아사미는 주변인에게 닥쳐올 불행을 막아 덕을 쌓아보기로 합니다.
드라마는 아사미가 N회차에 걸쳐 다시 살면서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회귀·타임리프 장르물에 흔히 등장하는 ‘복수’나 ‘부자 되기’는 없습니다. 수백 년을 살면서 아사미가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소소한 행복입니다. 소꿉친구들과의 밤샘 수다나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 같은 것들 말이죠. 몇 번을 살아도 가장 소중한 것은 내 곁의 사람들이라는 조금은 뻔한 메시지를 <브러쉬업 라이프>는 결코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전합니다.
<브러쉬업 라이프>의 매력은 촘촘하고 위트 있는 각본에서 나옵니다. 등장 인물들이 나누던 사소한 대화는 어느 순간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됩니다. 정교하게 짜여진 콩트 같은 인물들 간 대화도 즐겁습니다. 30대 싱글 여성인 이들이 나누는 소소한 대화는 마치 카페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살아있습니다. 각본은 인기 코미디언 바카리즈무가 썼습니다. 2012년부터 각본가로 활동해온 그는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예리하게 포착해냅니다.
주인공 아사미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친숙한 배우입니다. 영화 <어느 가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브러쉬업 라이프>로 처음 드라마 주연에 도전했습니다. 안도는 한 인물이 여러 번 다시 살며 겪는 미묘한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극 전반에 깔린 코믹한 분위기를 어색함 없이 이끄는 것도, 시청자들이 몇 번이고 다시 사는 아사미를 응원하게 만드는 것도 안도의 힘으로 보입니다. 안도 외에 카호, 쿠로키 하루, 마츠자카 토리 등 반가운 얼굴이 등장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1990~2010년대가 반복적으로 그려지다보니 과거 ‘일드 좀 봤다’하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J팝과 드라마도 많이 등장합니다.
지난 1~3월 일본 현지에서 방영된 <브러쉬업 라이프>는 뛰어난 완성도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참, 용두사미로 끝나는 회귀물에 실망하신 분들은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총 10부작으로 한 회당 러닝타임은 45분 안팎입니다. 국내에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용두용미’ 지수 ★★★★★ 회귀·타임리프 장르물은 용두사미 아니냐고? 아닐걸?
사생활 훔쳐보기 지수 ★★★★★ 카페 옆 테이블 대화를 엿듣는 듯 살아있는 대화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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