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사슴도 눕고 싶은 곳에 누웠으면 [반려인의 오후]

김영글 2023. 7. 29. 07:4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안정감을 느낀다.

날카로운 발톱과 점프 능력 덕분에 자연에서 고양이는 나무 타기의 고수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원목으로 만든 캣타워를 들여놓거나 가구의 높은 칸을 비워놓고 고양이가 올라가 쉴 수 있게 한다.

실내에서 지내는 집고양이의 세계는 제한적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굴업도의 명물 중 하나는 언덕과 풀숲을 어슬렁거리는 수십 마리의 사슴이다. ⓒ김영글 제공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안정감을 느낀다. 날카로운 발톱과 점프 능력 덕분에 자연에서 고양이는 나무 타기의 고수다. 하지만 집 안에는 나무가 없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원목으로 만든 캣타워를 들여놓거나 가구의 높은 칸을 비워놓고 고양이가 올라가 쉴 수 있게 한다. 실내에서 지내는 집고양이의 세계는 제한적이다. 그래도 최대한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것이 반려인의 역할이겠거니 한다. 야생의 습성대로 똥을 마음껏 덮을 수 있게끔 화장실 안에 모래도 마련해준다. 고양이는 낑낑대며 모래를 파헤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도심의 땅 한 조각을 인간과 공유하는 고양이의 처지에 복잡한 심경이 든다.

지난해 녹색연합이 주최하는 야생동물 탐사에 따라가본 뒤로, 나는 어설프게나마 동물의 똥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산이나 섬으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전에는 무심코 밟고 지나갔던 흙길에서 동물의 흔적이 자꾸만 눈에 띈다. 산양이나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의 똥이 모여 있는 곳을 관찰하면 그들이 어디를 편안하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주로 등 뒤에 단단한 암벽이 서 있고 앞으로는 물길이 흐르거나 탁 트여 조망이 확보되는 공간이다.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배산임수 지세에다 터전을 짓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몸에 맞는 안전한 곳에서 눕고 먹고 싸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같은 것이다.

얼마 전 굴업도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굴업도는 천혜의 자연을 지녀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리지만 한때는 핵폐기장 후보지로, 대기업 골프장 예정지로, 또 최근에는 해상풍력 발전사업 추진으로 논란에 휩싸인 속 시끄러운 섬이다. 백패킹 성지로 유명한 개머리언덕은 듣던 대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려진 공간이 더 궁금해 섬의 반대편도 산책해보았다. 민박집을 나서 큰말해수욕장을 건너고 인적 없는 목기미 해안 뒤편으로 펼쳐진 모래밭을 넘어 섬의 가장 높은 지대로 올라가니, 아늑한 구릉에 사슴의 똥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굴업도의 명물 중 하나가 바로 언덕과 풀숲을 어슬렁거리는 수십 마리 사슴이다. 옛날 섬 주민들이 방목하던 사슴이 30여 년 전부터 야생 사슴이 되었다고 한다. 굴업도는 여러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사슴이 길을 내어 햇볕이 잘 든 초원에는 엉겅퀴같이 꿀 많은 식물이 자라고 덕분에 이 섬은 왕은점표범나비의 최대 서식지가 되었다. 애기뿔소똥구리는 사슴이 눈 똥을 먹고 산다. 사슴이 사라지면 이들도 모두 사라진다. 숲에는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을 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발전기를 돌리려고, 골프장을 지으려고, 함부로 숲을 깎고 파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날이 부쩍 더워졌다. 고양이가 집에서 가장 시원한 바닥을 찾아가 눕는다. 고양이가 일러준 자리에 나도 가서 나란히 눕는다. 낮잠을 청하며 고 권정생 아동문학가의 시 ‘밭 한 뙈기’를 떠올려본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이 시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누군가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누울 자리를 강제로 빼앗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김영글 (미술작가)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