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에서 모녀 사이가 되다 [새로 나온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은서란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다정하고 따뜻한 식구로.”
한집에 살며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의미를 지닌 ‘식구’는 가족의 속성을 참 다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동거 가족 ‘어리’가 만들어주는 김밥을 먹으면서 저자는 “애정의 표현”이자 “희생의 결과”를 떠올린다. 식구는 다양하고 일상적인데 법적 가족의 테두리는 여전히 좁다. 생활동반자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법정대리인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함께 사는 서로가 그 법적 울타리가 되어줄 순 없을까? 게다가 성인 입양은 입양신고서 한 장만 제출하면 바로 가족이 될 수 있다니. 그렇게 50개월 차이가 나는 엄마와 딸이 된 두 ‘친구 가족’이 법적 보호자이자 가족으로서, 또 식구로서 살아가는 삶을 담았다.
문명의 운명
마이클 허드슨 지음, 조행복 옮김, 아카넷 펴냄
“미국의 외교정책은 신자유주의적인 지대 수취자의 계획을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킨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금융자본주의 체제를 발본적으로 비판한, 매우 급진적 시각의 책이다. 저자는 서방국가들의 경제적 병폐가 ‘금융화한 독점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소수의 지대(렌트) 수취자들이 금융제도를 통해 경제 통제권을 장악하고 노동자와 산업 부문의 소득을 앗아가면서 극심한 양극화와 경제 동력 상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이 책은 서방 금융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중국식 산업자본주의를 내세운다. 금융자본의 착취를 극복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일당독재 권위주의 국가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하지만,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분석 자체는 꼼꼼하고 친절하며 흥미롭다.
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
황웃는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우리의 삶은 계속 흘러갈 테니까.”
작가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도 없었다. 왜? 도대체 왜? 그는 점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잘 가셨는지 궁금하다는 말에 마주 앉은 무당은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때로 용기가 없어 죽지를 못해요. 아버님은 본인의 존엄과 행복을 위해 가셨는지도 몰라요. 지금 편안히 잘 계시는 게 보이네요”라고 위로를 건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터널을 지나온 그는 이렇게 믿는다. “안전하다고 믿어온 한 사람의 세상이 부서지고 산산조각 날 때, 그들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다른 사람이다”라고. 작가가 2020년부터 연재해온 동명의 웹툰을 묶어 낸 책이다.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한채윤 지음, 은행나무 펴냄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당신의 사랑엔 잘못이 없다.”
점쟁이도 아들이라고 했고, 아빠도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분명 가랑이 사이에 뭔가 달려 있는 걸 봤지만 그는 딸이었다.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성교육 전문가, 섹슈얼리티와 젠더 연구자 등 수식하는 말은 많지만, 무엇보다 혐오와 편견에 맞서 ‘끈질기게 행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해온 사람” 한채윤의 첫 에세이는 그렇게 시작된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중심이자 최전선에 서 있었던 그는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다짐하고 소망한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더 오래도록 함께 춤추면서 싸워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그의 삶은 혐오로 혐오를 이길 수 없다는 명확한 사실을 거듭 확인해왔다. 그 시간의 기록이다.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
소니아 리빙스턴, 얼리샤 블럼-로스 지음, 박정은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미디어는 디지털 성장을 덜 전전긍긍하는 태도로 더 증거에 기반해 다뤄야 한다.”
아동의 ‘온라인 경험’을 두고 전 세계 여러 가정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들은 올바른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치고 싶지만 중독이 두렵다. 게임과 유튜브는 통제하면서 코딩과 온라인 강의는 권장하는 현실이 이를 대표한다. 아동의 디지털 미디어 경험을 연구해온 미디어 심리학자 소니아 리빙스턴과 인류학 관점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얼리샤 블럼-로스가 중독과 활용 사이 방황하는 양육자의 고민을 담았다. 책을 감수한 김아미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의 말대로 디지털 전환기에 벌어지는 가정 내 양육자의 분투와 가정마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양육 모습을 상세히 보여준다.
술래 바꾸기
김지승 지음, 낮은산 펴냄
“내게는 없었으므로 네게는 있어라, 하는 마음을 맨 앞에.”
큰 창과 하얀 벽은 모빌의 자리다. 바람과 햇빛을 거스르지 않는 유연한 움직임은 ‘좋겠다’의 세상에 도착한 딸들에게 환영 인사를 보낸다. 모빌에 얽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동안 우리 중 가장 ‘어린 딸’이 태어나는 시간을 상상해본다. 의자·모빌·수건·가위·단추·돌·비누…. 저자가 일상의 사물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는 아이와 노인의 시간을 잇는다. 그 시간의 마디마다 저자가 문장으로 지어 올린 '의자'가 놓여 있다. “엉키고 뒤죽박죽인” 이야기 사이를 헤매던 독자는 그가 내어놓은 자리에 슬그머니 앉아버리고 만다. “같이 괜찮지 않으려고” 오래 서성인 문장들이 서늘하고 아름답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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