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발 밑엔 시체가 쌓여갔다···차별·억압이 키워낸 ‘여성 빌런’[책과 삶]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힘겨운 여름날, 습기와 더위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줄 스릴러 소설을 추천한다.
서미애는 한국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다. <잘자요 엄마>가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서미애는 총을 든 102살 할머니가 등장하는 소설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100년이 넘는 세월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폭력의 역사이자, 그 할머니가 총을 든 이유다.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는 서미애가 필자로 참여하기도 한 ‘여성 빌런’ 소재의 스릴러 소설집을 추천한다. 다양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스릴러’의 소재로 활용된다. 정보라는 대학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추천하며 자신이 소속돼 있는 한국비정규노조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는다.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소설가 이미상은 서로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진실이 경합하는 현실을 스릴러로 그려낸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추천한다.
세 작가가 추천한 소설들은 전쟁 성범죄, 가정폭력, 서로 다른 진실만을 믿는 사람들의 피 튀기는 갈등을 다룬다. 맙소사! 소설보다 더 무서운 것이 현실이다. 굳이 스릴러를 읽으며 이를 재확인해야 할까? 하지만 소설은 현실의 문제를 비틀어 다시 보게 해준다.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도 똑바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위협하지 말 것. 그리고 존중할 것.”
베르트의 102년 싸움
‘빵’ 시원한 총성 뒤
현실의 맛은 ‘씁쓸’
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장소미 옮김|위즈덤하우스|416쪽|1만4800원
100년 동안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것도 여자로 100년의 세월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22구경 장총을 경찰들에게 쏘아대며 등장하는 베르트 할머니는 1914년생, 102세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여러 번의 결혼을 거치면서 그녀의 발밑에는 시체가 쌓여간다. 이웃집 남자를 총으로 쏘고 경찰서에 끌려간 뒤, 자신을 취조하는 형사의 질문에 농을 던지고 호통을 치고 거침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다보면 슬슬 이 할머니의 지난 일생이 궁금해진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혼란과 좌절을 그려냈다면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지난 100년 동안 프랑스 여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분노를 그리고 있다. 전쟁통에 적군의 침략으로 짓밟히는 여성들, 그것이 어디 과거의 프랑스에서만 벌어진 일일까?
1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나 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은 베르트에게 세상은 어떤 보호막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자신을 겁탈하려는 나치군을 죽이고 루거 총을 얻는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을 지키는 일을 한결 수월하게 해낸다.
전쟁이 끝나도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경계와 긴장감의 연속이다. 아니, 여전히 목숨을 위협받고 적과 전쟁 중이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상당수가 여성이고 애석하게도 여성의 가장 큰 위협은 남편이나 애인이다. 베르트가 만난 남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존중하기보다 가부장적인 가치관으로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범죄를 저지른다. 작가는 죽어 마땅하게 무례하고 폭력적인 남편들을 열거하며 베르트가 왜 그들을 죽여야 했는지 보여준다.
소설은 비단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억압과 횡포만을 다루지 않는다. 아동학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 인종차별 등 우리 사회가 가진 다양한 폭력의 모습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총을 든 베르트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을 보면서 머리 한 편에서는 언젠가 읽었던 기사가 계속 생각났다. 2016년 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대한민국에서는 427명의 남성이 아내, 혹은 애인을 죽이고 재판을 받았다. 그들이 재판에서 밝힌 이유는 이런 것이다. ‘잔소리가 심해서’ ‘돈 벌어오라고 해서’ ‘게임 그만하라고 해서’ ‘말대꾸를 해서’ ‘그냥 기분이 나빠서’….
물론 베르트처럼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사건도 몇 건 있었다. 그녀들의 살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러다 맞아 죽을 것 같아서’ ‘아이들과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 책을 읽고 통쾌했다면 그건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주인공이 대신 해주기 때문이고 슬펐다면 그건 우리의 현실에서는 루거 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총을 든 베르트는 이렇게 경고한다. “두 가지만 기억해. 나를 위협하지 말 것. 그리고 존중할 것.”
살고 싶으면 꼭 기억하자.
차별·억압이 키워낸
1급 여성 빌런 5명
한국 사회를 해부하다
파괴자들의 밤
서미애·송시우·정해연·홍선주·이은영 지음|안전가옥|358쪽|1만6000원
<파괴자들의 밤>은 ‘여성 빌런’을 주제로 하여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단편집이다.
여성 빌런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서미애 작가는 ‘죽일 생각은 없었어’에서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저지를 듯 위협하며 즐기는 남성들을 처단하는 여성 안티히어로를 선보인다. 단순한 상상 속의 복수극으로 치부하기에는 서미애 작가가 드러내는 가부장제와 성폭력의 상관관계가 너무나 명확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찝쩍거리는” 남자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남성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여성은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어딜 가나 시달리며 마침내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관점에 물든 주변 사람들은 “찝쩍거림”이 지속적인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런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자 중 하나를 골라 결혼해서 남자의 부속품이 되면 다른 모든 남자들의 성폭력이 멈출 것처럼 암시한다. 성희롱, 성추행, 스토킹을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에 대한 폭력의 공범이다.
송시우 작가는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만난 두 여성이 함께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며 비틀린 관계를 펼쳐나가는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여기에 ‘여자의 적은 여자’ 같은 납작한 가부장제 관점을 들이대는 것은 아주 얕은 해석이다. 여성도 사람이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기괴하고 음습하고 다층적인 깊이를 가질 수 있다. 만약 SNS에 익숙하고 ‘커뮤’를 경험해보신 분이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해연 작가는 ‘좋아서가 아냐’에서 전형적인 ‘미친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포일러는 하고 싶지 않으니 궁금한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자세히 말하다가는 결정적인 부분을 노출해 버릴 것 같아서,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이쯤에서 말을 줄이겠다.
홍선주 작가의 ‘나뭇가지가 있었어’는 대학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많이 갔고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에게 참고 살지 마시고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 가입하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교수 한 명 죽여봤자 권력의 구조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 구조는 데모해서 바꿔야 한다. 우리에게도 노조가 있고 동지가 있다. 투쟁.
이은영 작가의 ‘사일런트 디스코’는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환상성이 강한 마술적인 호러 스릴러였다. 가정폭력을 소재로 하여 죽어도 죽지 못하는, 살아 있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삶을 독특한 분위기에서 몽환적으로 묘사했다. 기묘하게 시적인 작품이었고, 무섭다기보다 슬펐다.
<파괴자들의 밤>의 다섯 작품은 짧지만 가볍지 않다.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칼날을 들이대는 서늘한 작품들이다. 그러면서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범죄극을 보듯 정신없이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마일즈가 묻습니다
당신의 ‘진실’ 판단
정말로 확신하는지
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김희숙 옮김|푸른숲|96쪽|1만1000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선 제목부터 따져 보자. <나는 언제나 옳다>의 원제는 ‘어른(<The Grownup>)’으로,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대체 누가 한국어판 제목을 원제와 저토록 다르게 지었는지 궁금했다. 어떤 귀인이시기에 ‘어른’이라는 밋밋한 제목을 저토록 멋지고 다의적인 제목으로 바꾸었는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새삼 제목이 절묘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그저 언제나 합리화할 뿐이다.
이것을 잘 나타내는 대사가 있다. 고양이의 꼬리를 자르고, 보모를 계단에서 밀고, 멀쩡한 사람을 유괴범으로 만들고, 가족을 공포로 몰아넣었다고 ‘추정되는’ 청소년 소시오패스 마일즈가 주인공인 ‘나’에게 말한다.
“어느 쪽을 믿을 건지는 아줌마가 결정해야 한다고 봐요. 수전(마일즈의 새어머니다)이 또라이라고 믿고 싶으세요, 내가 또라이라고 믿고 싶으세요? 어느 쪽을 믿는 편이 좀 더 마음 편한가요?”
소설에서 여러 버전의 진실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것은, 작가의 전작이자 공전의 히트작인 <나를 찾아줘>에서도 반복된다. 길리언 플린은 무엇이 ‘진짜’ 진실인지에 관심이 없다. 인물들이 어떤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을 것인가, 어떤 과거와 욕망이 그들에게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가가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 갈등의 주체는 때로 인물이 아니라 서사다. 사람과 사람도 싸우지만 이야기와 이야기도 맞붙는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나 옳다>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경합하는가. 줄거리를 살펴보자. 전직 성노동자이자 현직 점쟁이인 ‘나’는, 집에 귀신이 들렸다고 주장하는 수전 버크를 만난다. 수전에 따르면 실내는 현대식으로 싹 고쳤으되 외관은 빅토리아 시대 때 지어진 그대로인 자신의 저택에 불길한 기운이 돈다. 그리고 그 기운 탓인지 원래도 음침했던 의붓아들이 이제는 아예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안 그래도 ‘집 기운 정화 사업’(“의뢰받은 집 주변을 돌면서 산 쑥을 태우고 소금을 뿌리고 중얼중얼 주문을 읊는다”)으로 한몫 잡으려던 ‘나’는 저택에 방문하고, 거기서 문제의 아들 마일즈를 만난다.
이제 마일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일즈에 따르면 자기가 새어머니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새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심지어 자신뿐 아니라 당신도 죽이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 같이 도망가자. 여기 있다가는 당신도 나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니 어서, 어서…. 완전히 반대되는 두 이야기가 주인공의 팔다리를 양쪽에서 세차게 잡아당긴다. 그 사지를 찢을 듯 격렬히 분화하는 진실 앞에서 ‘나’는 하나를 고른다.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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