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묻지마 범죄'를 묻고 따지다
과연 예방 가능한가?…제도 실효성 질문
서울 신림동에서 일면식도 없는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벌여 한 명을 살해하고, 3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난 26일 신상을 공개했는데도 누구나 갑작스럽게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불안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묻지마 범죄’를 예방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묻지마 범죄’ 관리 체계는 어떻게 돼 있을까요. 국제신문 뉴스레터 뭐라노가 알아봤습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2018년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2019년 진주 안인득 방화 사건’ ‘2020년 설악산 등산객 살인 사건’ 그리고 올해 ‘과외앱 또래살인 정유정 사건’까지. 매년 나타난 이 유형의 살인사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는 ‘묻지마 범죄’였다는 겁니다. ‘묻지마 범죄’는 통상 범행동기가 불분명하고, 불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행해지는 범죄 행위를 뜻합니다. 이런 유형의 범죄는 이유 없이 무작위로 범행 대상이 될 수 있어 시민을 불안하게 합니다.
한국범죄정보연구에 실린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고찰 및 성향 분석’을 보면 ‘묻지마 범죄’ 현상은 사회적 양극화 또는 사회적 박탈감 등의 특성들을 가지거나, 개인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공격성이 사회로 표출된 것이라고 합니다.
[함혜현 부경대 경찰범죄심리학교수] “이러한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회병리현상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익명성이 덜한 이웃 사람과 함께 인사 나누는 사회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사회적인 유대를 통해 범죄가 발생하는 데 있어 사회적인 통제 장치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원룸 등에 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그리고 그게 더 편한 사회가 됐습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줬지만 사람과 사람은 서로 소통하고 유대를 나누면서 살아야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런 스트레스를 풀기 어려운 조건으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경제적인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도 문제가 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화하는 현상도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요. 그렇다면 코로나19로 언택트 문화가 심화된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함혜현 부경대 경찰범죄심리학교수]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 속에서는 그렇지 않은 때보다 (범죄율이) 줄어든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실제로도 코로나19 때의 우리를 사회를 보면 범죄가 많이 줄어든 통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묻지마 범죄와 연관을 시켜본다면 코로나19 때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과정을 겪었죠. 대량 실직을 한다든가 취업률도 많이 떨어졌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방황을 하게 되고요. 재기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자기가 실패자라고 하는 낙인, 고립된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라고 하는 재난 상황과 묻지마 범죄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는 어렵지만 묻지마 범죄자들의 주요한 특징을 보면 범행 전에 공통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최근 부산에서 일면식도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림동에서 또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묻지마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2017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폭력범죄 엄정 대처를 위한 사건처리 기준 강화 방안’을 보면, 묻지마 범죄와 관련해 일반 범죄와 달리 초범이라도 가중처벌을 하고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도 따지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2020년 11월과 2021년 5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가중처벌을 내리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묻지마 범죄에 대한 별도의 형벌을 부과하는 법은 없는 상태입니다.
[함혜현 부경대 경찰범죄심리학 교수] “처벌 강도를 높이는 것도 예방적인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이 엄벌주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강력한 처벌과 통제 장치를 병행하면서 묻지마 범죄의 특성을 고려한 다각적이고 차별적인 사회 통제 장치 또는 사회적 예방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소 후 관리도 아직까지는 미흡한 실정입니다. 현재는 법무부의 보호관찰과 위치추적 전자감독제도가 유일하게 우리의 안전을 담보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력의 부족과 예산 부족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묻지마 범죄’는 범행동기가 불명확하고 범행대상이 특정되지 않아 다른 범죄에 비해 예측 가능성이 낮고 예방하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신림동 흉기난동을 벌인 조선은 전과 3건, 소년부 송치 14건이라는 형사절차를 거친 전과자였다는 점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함혜현 부경대 경찰범죄심리학 교수] “어떤 범죄가 발생했을 때 그 범죄자를 수사하고 어떻게 처벌하는지에만 급급했습니다. 그 사건이 다 종결되고 나면 시민과 사법기관의 관심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혀져 갔죠. 그렇기 때문에 수사와 처벌에 투입했던 에산을 이제는 예방·예측적 차원의 형사정책 그리고 그러한 특이 범죄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범죄자가 되기 이전에 전조 증상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전조 증상에 대해서도 연구를 강화해 예방하는 데 활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경찰 검찰 교정기관 따로 할 것이 아니라 킥스(KICS)라고 하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을 통해서 서로 공유하고 연구하면서 막연하게 범죄를 처벌하는 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근본을 따져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앞으로는 형사사법시스템의 획기적인 전환을 통해 묻지마 범죄를 수면 위에 올려놓고 고민해 봐야할 때가 됐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범죄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세상입니다. 묻지마 범죄를 단순한 정신이상자의 범죄로 치부하기보다 그 속에 어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고, 최선의 해결책이 무엇이며,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묻고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국제신문 뉴스레터 뭐라노가 전해드렸습니다.
“형사정책은 사회정책의 최후 수단이다.” -독일의 형법학자 프란츠 폰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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