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정사 서어나무숲에 윤종광을 묻었네
[기고]
[미디어오늘 김정훈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 대표]
세상 속에서 사람 일을 하다가 한 시대 한 사람과 한 역사를 통과시킨 이들이 우주를 만나는 곳,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귀정사. 몸과 마음에 새기거나 새겨진 상처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자신의 역사를 관조하며 쉼으로 보듬어 안는 길, 집, 숲. 가끔 나는 그 길, 집, 숲을 지나간다.
귀정사는 금남호남정맥 장수 팔공산의 지맥인 천황지맥(개동지맥)에 있는 만행산 천황봉 아래 있다. 남원 산동면 대상리 계곡에 숨은 듯이 깃든 절집이다. 나는 천황지맥에 있는 산마루들을 오래 전부터 걷다가 만행산 천황봉을 만났다. 그러다가 귀정사에서 오르는 길을 겨울눈을 밟고 봄 숨을 내쉬며 드나들었다. 여름 땀에 시원하게 젖어들거나 가을바람 색에 물든 길을 걸었다. 홀로 고요함이 포근했다. 전교조 위원장이던 2013년, '외롭고 높고 쓸쓸한(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이들의 쉼터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웠다.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그 쉼터의 인연이 간단치가 않게 되었다. 고 윤종광 동지의 숨 때문이다.
논산 사람 윤종광 동지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때 현대자동차 노조 결성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그 이듬해 현대중공업 연대투쟁으로 구속된 뒤 노동운동의 한복판에 온 삶을 맡겼다. 1995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으로 전입하고 2002년 제4대 현대자동차 전주지부장 일을 하고나서부터는 전북지역 노동운동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사실 현대자동차 안에서의 노조 일이나 금속노조 일을 지속하는 것이 노동운동에서 덜 힘든 일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역 노동운동을 선택했다. 막상 숫기가 없던 그에게, 지역 안에서 아는 사람결이 적은 그에게는 어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2010년 민주노총전북본부 수석부본부장으로 시작하여 2017년 12월 귀정사 서어나무 숲 소나무 아래 자리할 때까지 그는 정말 숨 가쁘게 살았다. 내가 전교조 위원장을 마치고 지역 연대활동을 하던 2015년 하반기에 윤종광 동지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산별 위원장을 했던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전북본부 수석을 맡아주면 어떻겠냐고. 두 번째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을 해야만 했던 동지의 간곡한 부탁이었지만 나는 여러 가지 사정을 말하며 그 부탁을 고사했다. 여러 고심이 있었을 동지의 부탁을 고사한 것이 지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 아래에까지 남는다.
가시오 잘 가시오 그대, 동지여
우렁찬 사자후 피 끓는 심장의 고동으로
논산, 서울, 울산, 완주, 전주 다 울리고 가시오
이십대 청춘을 바쳐 시작한 87년 노동자대투쟁 30년
저들의 핍박이 간악할수록 마다하지 않은 구속
잠시도 비켜서지 않았던 삭발단식, 농성, 삼보일배
그 투쟁의 길이 동지였으니
그 노동해방의 길이 동지였으니
세상 속 평화와 연대의 길이었으니
민주노총이, 진기승 열사가
여기 그대의 동지들이 함께 북소리 높이 울릴 것이니
몸의 투쟁 그 흔적 다 지우고
그대 숲처럼 살았고 큰 나무처럼 살았으니
가시오 잘 가시오 그대, 윤종광 민주노동열사여
- 「귀정사로 가는 길 - 윤종광 민주노동열사에게」 중에서, 2017년 12월12일 장례식 추모시
윤종광 동지가 전북본부 수석부본부장과 본부장으로 일할 때 전주의 버스노동자 투쟁은 빛나는 투쟁이자 승리의 기록이다. 당시 지역 투쟁에서 삼보일배는 시민에게 절박함을 호소하고 함께 하자는 일상적 방법이었다. 이때 그는 그 삼보일배를 삼보일배에 맞게 그대로 삼보일배 했다. 구호를 외치는 팔뚝질도 팔뚝질에 맞게 팔뚝질을 했다. 어찌 허리와 어깨가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2014년 10기 전북본부장 때 전주 신성여객 해고 노동자가 노동절 하루 전, 본인 해고 무효심판 하루 전에 목을 맸다. 진기승 열사다. 5개월의 투쟁이 이어지고 사측의 사과를 받아냈다. 윤종광 동지는 17일 간 단식을 하며 삼보일배를 했다. 전교조 위원장으로 연대투쟁 방문을 했을 때 그의 목은 쉬었고 몸은 초췌했으나 그 결연한 의지는 눈빛에 고스란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몸과 마음에 생채기도 있었던가 보다.
2014년 전주버스투쟁 후에 윤종광 동지는 사회연대쉼터 귀정사를 찾아 일주일을 보냈다. 가을 숲에서 숲길에서 홀로인 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노동자가 숨을 얻어간 것이다. 그후 동지들과의 갈등, 투쟁에서의 혼란으로 따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귀정사가 '참 좋았다' 했다. 그리고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투쟁과 함께 투병을 하다, 2017년 12월 폐암으로 그의 지구별 노동 이야기를 끝냈다. 혹시나 하여 자연산 약재를 보냈던 나에게 그는 막바지 투병 중에 오미자청을 정수기 통에 가득 담아 보냈다. 왈칵 눈물이 났다. 몇 해 동안 그 오미자에 손대지 못했다. 윤종광 동지는 병상에서 '참 좋았다'던 귀정사에 자신을 깃들게 해달라고 했다. 나는 가끔 귀정사의 햇살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윤종광 동지의 목소리가 출렁일 것만 같은 그 오미자청을 물병에 담아 귀정사로 가는 길을 준비한다.
사회연대쉼터 귀정사가 10년의 숨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간 윤종광 동지처럼 잠깐의 쉼이 필요한 동지들, 지치거나 아프거나 다른 모색이 필요해 길게 쉬어야 하는 사회 각 부문의 활동가들을 위한 무료연대쉼터로 참 소중한 역할을 해왔다.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어서 누군가 아프거나 쉬고 싶다면 누구나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가서 쉬어”라고 내 집이나 별장이라도 된 것처럼 말해 왔던 희한한 곳이다.
중간엔 그 운영 관련해서 제안을 받기도 했다. 모든 사람과 장소에 이것 저것 상관하기를 좋아하는 송경동 시인. 송 시인이 몇 년 전 내가 남원의 학교에 있을 때 찾아왔다. “선배 쉼터 운영위원 좀 해줘!” 여러 사정을 들어 거절했다. 먼저 간 윤종광 동지가 걸렸으나 뜬금없이 '내가 무슨 주제에'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마음에 남는다. 송 시인을 전주 '진버들 막걸리'로 데리고 와서 막걸리 몇 주전자를 샀다. 그날 술자리 친구 몇몇에게 쉼터 후원회원을 함께 하는 것으로 가름했다. 나도 막상에는 숫기가 없어 쉼터를 지날 때 기웃거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윤종광 동지가 귀정사 소나무 아래에서 숨으로 남아있음으로 해서, 귀정사 쉼터는 나에게도 홀연히 포근한 곳이다. 서로의 숨을 느끼는 곳이다.
그곳에서 음유시인 정태춘 님이 쉼터 10주년 후원 콘서트를 열어준단다. 나도 선후배들, 친구 놈들 몰고 꼭 가봐야지. 윤종광 동지도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저 서어나무숲 한 켠에서 오랜만에 보는 벗들, 동지들 보며 반갑고 흐뭇해하겠지.
윤종광 동지가 귀정사 소나무의 바람소리를 낸지 한 해 뒤에 쓴 추모시를 한 편 더 붙인다.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에서 모든 지친 이들이 편히 쉬며 또 다른 해방을 맞이하길 빈다.
겨울눈 소담하게
그대 동지가 먼저 간 길
가기도 쉽지 않은 그 길
세상사 곡절 다시 쓰고 쌓이는데
이 겨울도 지나면 봄꽃은 다시 필 것이나
그대 육신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지난 봄 여름 가을에 찾아
붉은 단풍 입에 적시고
청송 아래 그대 선연한 자취를 부르다
부르다가 부르다가 귀정사로 가는 길
금속노동자, 해방의 꿈길을 걸은 전사 윤종광 동지여
동학땅 관통로 팔달로 봉동공단 그 어디라도
해를 이고 땀과 땀에 절어 가르던 삼보일배 길
滿月을 어깨에 걸고 가뿐 숨으로 돌아가던 그대 귀가 길
그대와 함께 만들고 보았던
혁명의 촛불이 사위어 갈지라도
꿈길을 타는데
꿈길을 타는데
동학년 이래 해방절 이래
혁명, 그 미완의 광야에 다시 놓는 해방의 꿈길
저 골짜기에 산비둘기 구구 구구구구 토해내고
이 골짜기에 소쩍새 소쩍다 소쩍다 타들어가는
그대가 보러 오늘 오시오
살붙이게 다정하게 피붙이에게 부드럽게
그대의 그대에게 강건하게
해방의 꿈길 타고
오늘은 그대가 보러 오시오
버거운 술 한 잔도 동지와 함께 즐거웠던
그대 윤종광 동지를 위하여
한 잔 올리고 한 잔 먹고 또 한 잔 마실 것이니
그대의 심장을 품은 동지들의 가슴에서 한 잔, 단결투쟁!
터져나오라 어깨를 걸고 목구멍에서 한 잔, 연대를 위하여!
온몸 쩌릿하게 실핏줄까지 부활하는 한 잔, 노동해방!
살아서 혁명 죽어서 해방일지라도
논티에서 완산벌까지
그대 오늘 다 보러 오시오
저 골짜기에 산비둘기 구구 구구구구
이 골짜기에 소쩍새 소쩍다 소쩍다
애오라지 애오라지 신음 소리는
그대가 남긴 그대에게 맡기고
귀정사 깃든 만행산에 올라
지리 덕유 한껏 안아서
청솔가지에 걸린 해도 달도 별도 그대리니
그대는 오늘 해방의 꿈길 타고 와서
고운 해방의 꿈길 타고 가시오
그대인 우리는 살아서 혁명 살아서 해방의 길로
느릿느릿 동지가 놓은 해방의 꿈길 걸을 터이니
귀정사로 가는 길, 마음 놓으시오 그대
언제라도 보고 있을 것이니 마음 놓으시오 그대
윤종광 동지여-
- 「귀정사로 가는 길·꿈길 - 고 윤종광 동지 떠난 뒤 1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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