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최초, '차관 통치'에 이은 대통령의 '사무 통치'

2023. 7. 2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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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선관위 사무총장에 대통령 대학 동기…스스로 '공정성 시비' 빌미 자초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에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 법대 79학번 동기가 임명됐다. 선관위 특혜 채용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외부 인사를 들여 왔다고 한다. 김용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무위원(장관)급의 보수를 받으며 선거 사무와 관련된 실무를 총괄하고 선관위 소속 공무원들을 지휘·감독한다. 외부 인사 임명은 역대 첫 사례인데, 하필 그가 대통령의 친구라니 참으로 공교롭다. 사무총장은 청문회도 필요 없다.

선관위는 선거에 있어서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구다. 그런데 총선을 9개월 여 남기고 대통령 대학 동기가 선관위 사무총장에 '35년만에 최초 사례'를 갱신하며 임명된 것을 곱게 볼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선거 중립성'을 의심받는 빌미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말들만 무성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아랑곳없다.

얼마전 윤 대통령은 '차관 통치'(혹은 차관 정치)로 회자된 바 있다. 유사하게 '사무 통치(혹은 사무 정치)'란 말이 떠오른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비서관을 지낸 5명의 "국정철학을 몸에 익힌 참모들"을 주요 부처 차관 자리에 줄줄이 임명했다. 따로 밥을 먹으며 '미션'도 줬다고 한다. '국정 철학'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는 바는 없고, '차관 정치'라는 말이 '비판'인 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나, 대통령실은 이를 '개혁을 위한 전략'으로 포장해 눈 멀쩡히 뜨고 있는 장관들을 농락했다. '용산 직할 체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청와대 정부란 말은 들어봤어도 차관 정부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이번엔 각종 사무처다. 선관위 사무총장에 대통령 대학 동기가 임명되기 전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가장 유명했다. 감사원은 헌법상 독립기구고, 합의제 기구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는 논란의 중심은 사무총장이다. 전 정권에 대한 전방위적 '호랑이 감사'를 사무총장이 주도하고 있다. 주객전도다. 얼마 전엔 감사위원과 사무총장이 '월권' 논란으로 낮뜨거운 백주의 혈투를 벌였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국회에 출석해 "초기에는 전 정부가 감사 대상"이라며 "현 정부도 중반부 되면 감사받는다"고 기염을 토했다. '정권 감사'를 스스로 실토한 꼴이었다. 그가 '용산 바라기'라는 걸 현 정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지금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대통령이 의장이고 장관급 수석부의장을 둔다. 그리고 그 밑에 사무처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이 있다. 이 기구는 대통령의 서울법대 동기이자 검사 출신 40년지기 석동현 사무처장이 들어 앉아 있다. 전광훈 목사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11월, 워싱턴DC에서 열린 '2022, 코리아 피스 컨퍼런스' 행사를 주최하고 미주지역 평통 자문위원들에게 참여를 권유했다는 이유로 최광철 평통 미주 부의장을 직무정지시켰다. 사무처장이 부의장에 대해 인사조치를 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석동현 총장은 취임사에서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을 재편"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의 '미션'이 무엇인지는 대강 알겠다. 대통령의 의지가 뒷배에 어른거린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지난 1월 27일 임명된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임명된 후 곧바로 선관위 사무처 특혜 채용 의혹 조사를 담당했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출마한 이력도 있고, 윤석열 캠프에도 참여했는데 다시 윤석열 후보의 사법개혁 공약집에 '오또케'라는 여성 혐오 표현을 썼다가 선대본에서 해촉됐던 분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에 버젓이 참여하면서 부활한다. 후보 시절 대통령을 보좌하던 그는 국민권익위 사무처를 총괄한다. 현재 권익위원장은 대통령의 '검사 선배'이자 'BBK 무혐의'로 유명한 김홍일 전 검사장이다.

방송 장악 논란으로 국회 '혈전'을 예고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에도 특별한 사무처장이 있다. 지난 6월 1일 임명된 조성은 사무처장은 감사원 출신인데, '방통위 사무처장은 내부승진 한다'는 관례를 깨고 전격 발탁돼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방송이나 통신 분야에서 전문성이 전혀 없다. 대신 '감사' 전문성은 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바 있다. 배종호 세한대 교수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을 사실상 방통위원장으로 앉히기 위해서 미리 보낸 인선"이라고 평했다. 당장 방통위의 '감사 기능'은 강화될 전망이고, 감사 기능이 강화된다는 것은 '사람'을 솎아낸다는 걸 의미한다. 윤 대통령은 28일 방통위원장에 '자녀 학교폭력' 논란의 이동관을 지명했다. 이 모든 게 공교롭다고 치기엔 너무 이상하다.

이 모든 인사들은 '청문회'가 필요 없다. 기관의 '장'도 아니다. 모두 합의제 행정기구의 사무를 총괄하는 실무급 인사들이다. 그러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건 이 정부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합의제 행정 기구를 두는 목적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분야의 행정 독립성과 공정성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장관을 최종 결정권자로, 수직적 구조를 통해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반 부처(독임제 행정 기구)와 그 목적이나 취지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 방송, 통신과 같은 특수한 산업이나, 공무원 사정을 담당하는 감사 기능을 주로 합의제 기구로 두는 것은 불편부당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장관을 건너 뛴 차관 통치의 이론을 세운 이 정부는 이제 합의제 행정기구를 우회할 방법을 찾아냈다.

카르텔 타파를 외치던 윤석열 대통령은 '차관 카르텔'과 '사무처 카르텔'을 창조해 냈다. 역시 "건국 이래 처음"(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관 정치를 두고 한 비판) 보는 풍경일 듯 하다.

마지막으로 결은 다르지만 국민의힘 이야기다. '찐핵관'으로 불리는 이철규 사무총장이 있다. 집권당의 사무총장 인선은 청와대(대통령실) 몫이다. 암암리에 형성된 오래된 관행이다. 본인은 '5인회'의 존재를 강력 부인하지만,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의 입에서 촉발된 '5인회 파동' 때 제일 먼저 거론됐던 인물 중 하나다. 관행 부수기에 열을 올리는 윤석열 대통령은 유일하게도 정당 사무처장을 대통령 측근으로 두는 여의도 관행을 자연스럽게 묵인한다. 특히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총장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아마 내년 공천도, 선거도, 꽤 볼만할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장어를 직접 손으로 잡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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